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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pr 15. 2017

우메오의 계절 악보를 그려보았다

스타카토의 봄, 가을 그리고 레가토의 겨울, 여름 그리고 도돌이표

지난 8월 스웨덴 우메오에서 생애 내 생애 가장 북쪽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8월 말 도착했던 스웨덴 우메오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간간이 불어오는 가을바람 덕에 여름 내내 한국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 했던 나는 콧노래를 부르기 일쑤였다. 매일 아침 푸른 하늘 아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며 가을을 감상하던 그 기분이란! 나의 유학생활의 시작을 너무나도 좋은 날씨가 축복해주는 듯했다.  들뜬 마음으로 우리나라처럼 11월까지는 아니더라도 10월까지는 이런 날씨가 이어지지 않을까 나름 기대했는데 학기가 시작한 지 2 ~ 3주가 지났을까, 9월 온 세상이 빨갛고 노랗게 물든 지 얼마도 안돼서 낙엽이 순식간에 지기 시작하더니 하늘은 이내 흐려지며 가을비를 동반했다. 10월 등굣길 첫서리를 본 그 날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나는 가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11월 1일 우메오에서 첫 함박눈을 맞이했다.




레가토, 겨울의 시작

    11월의 첫날 11월 1일, 거짓말처럼 첫눈이 왔다. 그것도 펑펑. 동화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우메오에 눈은 거의 매일 내렸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던 날이 있기도 했고, 가끔은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치는 것만 같은 날도 있었고, 눈이 정말 눈에 보일 정도로 '펑펑' 내리던 날도 있었다. 11월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눈에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며 우메오를 겨울왕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사이 나는 시나몬 향이 가득한 애플파이를 구워 먹으며 11월의 첫눈을 품었다. 12월이 되었고 산타클로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모든 이의 마음을 알았던지 우리에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 해가 가장 짧았던 12월 집집마다 창가에 켜진 초들이 어둠을 밝혀줄 때, 눈은 온 세상을 밝혀주었다. 어둠이 긴 우메오에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알았던 걸까. 그렇게 우메오는 1년의 3분의 1을 새하얀 눈과 함께 보냈다.

첫 눈이 내린 그 다음 날


    새해가 밝았다. 새해였지만 날씨는 결코 새롭지 않았고 1월에도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내 평생 겨우내 이 만큼의 눈을 본 적이 없기에 눈과 함께하는 우메오의 겨울은 사실 매일 아름다웠다. 하늘을 찌를듯하게 쭉쭉 뻗은 침엽수들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흔들려 눈이 흩어져 뿌려질 때면 크리스털이 하늘에서 부서져 내리는 것만 같이 눈이 부셨다. 11월, 12월, 1월내내 눈은 우메오를 품었고, 나는 매일매일 내 눈에 눈을 담으며 봄이 시작될 2월을 기다렸다. 하지만 2월에도 여전히 우메오에는 펑펑 눈이 내렸다. 2월에 봄을 꿈꾸던 나의 기대가 봄이 오는 속도보다 조금 많이 빨랐다. 나의 현재는 북반구 우메오에 존재했지만, 무의식 속의 계절 시계는 여전히 한국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1년의 반이 겨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다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2월에도 눈이 쌓이고, 추위가 찾아오고, 땅은 꽁꽁 어는 사이클이 반복되던 우메오에는 여전히 봄소식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생명이 움트며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계절 3월, 이 곳 우메오는 여전히 눈으로 덮여있었다.



    3월 , 겨우내 흐렸던 하늘이 중순에 들어서자 구름을 거두고 아끼고 아껴두었던 푸른 가슴을 뽐내기 시작했다. 기온도 한층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해가 비치는 시간도 급속도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눈부신 해와 푸른 하늘이 자주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눈이 녹기 시작했다. 겨우내 수 만 겹 이상 쌓인 눈이 녹는 바람에 길이 매우 질척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와, 드디어, 생명의 땅을 보는구나!'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눈을 보며 이 곳의 날씨의 기이함에 감탄하며 4월을 맞이했다. 4월, 어김없이 매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온 나라에 울려 퍼지는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에, 그런데 나는 우메오에서 벚꽃 대신 눈꽃을 다시금 맞이했다. 4월의 함박눈.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에 보내는 사람들의 감탄을 질투한 듯 구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눈구름을 몰고 와 버렸다. 오전 내내 쨍쨍하던 하늘은 순식간에 눈으로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여 버리는가 하면, 오전부터 함박눈을 쏟아 내리다 오후 어느새 파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겨울에 다시 젖었다. 맑고 푸른 하늘에 감동받아 버스를 포기하고 집으로 걸어오던 중... 4월의 눈이 새롭지만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인내하고 우메오의 계절 시간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차분히 봄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4월, 눈 오던 오전 그리고 오후
4월, 겨울과 봄 사이




스타카토의 봄, 가을 그리고 레가토의 겨울, 여름 그리고 도돌이표

25년여 동안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4분의 1박씩 연주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나는 '우메오 악보'를 새로 이 들었다. 지난 8, 9월 스타카토의 짧은 가을을 연주했고, 현재 나는 11월부터 4월까지 레가토로 연주되는 한 겨울을 연주하고 있다. 다음 악보인 5월, 스타카토의 짧은 봄이 울려 퍼진 후엔 1년 중 가장 해가 길고 날씨가 아름다운 레가토로 연주될 6, 7, 8월 한 여름이 오겠지. 그리고 다시 도돌이표를 만나 가을과 긴 겨울이 돌아올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우메오의 계절 연주를 감상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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