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리터(L)의 물을 마신다. 심지어 우리 몸의 가장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것도 '물'이 아니던가. 우리 몸과 삶에 무수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이지만 '무수무생(無水無生)': 물이 없이는 삶도 없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더욱이 운동을 하거나 광나는 꿀피부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어떤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는 중요하다. 그런데 지구촌 시대, 물을 마시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마실 수 있는 물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것.
아직도 유학 첫날 밤늦게 공항에서 기숙사 방에 도착해 심한 갈증에 시달렸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입국장을 나왔을 때부터 굉장히 목이 말라 공항 편의점에 물을 사러 갔는데 물 값에 한 번 놀라고, 물 종류에 한 번 더 놀랐었다. 물 한 병에 3 ~4천 원 하는 것과 심지어 우리가 보통 마시는 물이 아닌 대부분 물이 과일향과 맛이 나는 물이었다. 공항 편의점이라 더 비쌌다는 사실을 나중에 돼서야 알었지만 그 당시에는 살인적인 북유럽 물가에 너무 놀라 갈증을 참고 '기숙사에 정수기가 있겠지..' 기대하며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밤늦게 기숙사에 도착해보니 한국 기숙사에서 흔하게 보이는 정수기는 찾을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밤이 늦어 마트도 문을 다 닫아 물을 사러 가지도 못하고, 기숙사에 함께 사는 친구들도 한 명도 볼 수 없어 물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내가 있었던 곳은 사막이 아니라 스웨덴 기숙사 한가운데였는데... 정말 너무 목이 말랐지만 어쩔 수 없이 침만 연신 삼키며 아침까지 간신히 버텼다.
다음 날 간신히 목마름을 부여잡고 학교에 갔는데, 학교 직원이 '화장실에 가서 받아 마셔'라고 웃으면 말한다. '화장..실..?' 나도 모르게 역겨움이 잠시 밀려왔지만, 스웨덴에서는 수돗물을 마신다고 하니, 화장실로 직행해서 텀블러에 시원한 물을 가~득 채워 벌컥벌컥 마셨다. 목마름 앞에서는 역겨움도 장사 없었다. 다행히, 학교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가 따로 분리되어 있어 안심하고 마셨다! 살면서 가장 목말랐던 하루간의 갈증을 수돗물이 날려준 셈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거나 정수기를 설치해 정수물을 마시지만, 스웨덴에서는 수돗물을 마신다. 스웨덴에서는 수돗물을 마시는 것보다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사 먹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다. 스웨덴에서는 플라스틱을 살 때마다 병 값을 지불하는 Pant(판트) 시스템 때문에 물병을 사는 만큼 쓸데없는 지출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물을 사 먹는 것이 쓸데없이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스웨덴에는 탄산수나 과일 맛이 나는 물을 팔기도 하는데, 생수를 못 사 먹어서가 아니라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설탕이 가득한 탄산 대신 칼로리 없이 청량감 넘치는 음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의 수돗물을 따라올 음료는 없었다.
인간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살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2~3일 이상 못 산다고 한다. 물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웨덴의 수돗물 소비에 내재된 가치인 것 같았다. 스웨덴 정부에서는 농업/공업용수와 마실 수 있는 물을 분리해 관리하고 있는데, 지하수에 펌프를 설치해서 물을 끌어올려 여러 정화 단계를 거쳐 각 가정에 공급하고 있다. 수원지에서 가정까지 물이 공급되는데 스웨덴 정부, 시 차원의 4~ 5개 정도의 기관들이 협력해서 수질을 관리하고 있는데, 가정으로 가기 직전에는 시 단위의 공동체(Kommun)에서 물을 저장한 후 공급하고 있다. 서울의 아리수와 똑같은 소독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UN이 정한 수돗물 안전성 서울 8위, 스톡홀름 9위. 서울 수돗물 음용률 약 5%, 스톡홀름 85%. 왜 우리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걸까?
한창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온 사고로 전국이 수돗물 공포에 휩싸인 적이 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도 가끔 수도관 누수나 홍수 문제 등으로 수원지가 오염되어 수돗물을 마시고 병에 걸린 사람들도 몇몇 지역에서 발생한 적이 있지만, 그 비율이 굉장히 낮고 여전히 국가/ 시 차원에서 수질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은 수돗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다. 뛰어난 자연환경에 물 맛 또한 사 먹는 물보다 훨씬 좋다고 자부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문제가 발생할 시 문제 원인부터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시민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취해야 할 지침을 재빠르게 알린다.
환경 보호를 위해 수돗물을 선호하는 사람들
<스웨덴의 플라스틱 재활용/ Imagebank.sweden.se, ⓒfredrik_nyman>
수질에 대한 믿음과 자부 외에도 스웨덴 사람들은 환경보호를 위해 수돗물을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스웨덴의 슈퍼마켓에도 유럽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탄산수를 팔지만, 대부분 플라스틱 병에 들어있기 때문에 물 한 병을 사게 되면 그만큼의 플라스틱을 소비하게 되는 거니까. 또한 우리가 물을 사 먹는 만큼 그에 비례한 플라스틱이 소비되는 것과 더불어 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했던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이기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양의 물들이 스웨덴에서도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에서는 음료 소비를 통해 낭비되는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하기 위해 PANT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소비자는 모든 음료를 살 때 음료 값 외에 병 값으로 1 크로나(작은 병), 또는 2 크로나(큰 병)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데 음료를 다 마신 후 빈 병을 근처 슈퍼마켓의 재활용 기계에 넣으면 지불한 PANT 값을 다시 현금이나 슈퍼에서 쓸 수 있는 쿠폰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독일, 덴마크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하루하루 개개인의 작은 소비가 전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소비하는 사람들. 수돗물을 마신다는 팩트 뒤에는 스웨덴 사람들의 자연환경에 대한 애정과 인간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잘 보존하여 깨끗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지속가능성이 내재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먹는 스웨덴 사람들을 보고 놀라지 마시라!
한국에 2년 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스웨덴 친구 T가 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지 조사해보니, 수돗물이 깨끗하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수돗물이 마실 수 있는 만큼 깨끗하다는 것이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수돗물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다는 걸깨닫기까지는몇 주가 걸렸다. T의 한국 친구들은 그녀가 수돗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진짜 수돗물을 마셨다고?? 샤워기에서 나오는 그 물을??"
물론 T는 주방 수도꼭지에서만 물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을 보자마자 오히려 겁에 질리고 말았다. '정말 내가 그동안 마신 물이 깨끗하지 않았나? 지난 몇 주 동안 내 몸에 독극물을 서서히 넣은 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단다. 친구가 고백하건대, 사실 서울에서의 수돗물이 스웨덴에서 물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친구에겐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한 번도 의구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 안전하다고도 확인했으니 뭐가 문제인가! 그럼에도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에게 생수를 몇 병 사다가 냉장고에 재워놓도록 했다. '수돗물을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너무 슬퍼 보였나? 별로였나? 아니면 단지 그 사실 자체가 잘 못 되었던가?'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잘 모르는 친구는 결국 생수를 사 먹기 시작했고, 사실 한국에 사는 내내 수돗물 마시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수돗물을 마시는 스웨덴! 수돗물을 마실 수 있음에도 생수를 사 마시는 서울 사람들. 나 역시 평생 생수와 정수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따라 마시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검증되었고 언제 어딜 가든 컵이나 텀블러만 있으면 물을 마실 수 있어, 물이 떨어질 걱정을 하거나 슈퍼에 가서 생수를 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정말 편했다. 특히, 돈 내고 물을 사 먹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물 값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생수 생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도 아낄 수 있으니 1석 2조였다!
단순히 물을 소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물을 소비함으로써 인간이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들까지 들여다보는 스웨덴 사람들을 보면서 일회성 소비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에너지, 환경 문제 등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이후 전기포트와 빈 물병을 구매했다. 스톡홀름만큼 물맛이 뛰어난 아리수를 받아 끓여 두었다. 미리 끓여서 스테인리스 물병에 식혀둬야하는 수고가 있지만, 큰 수고도 아닐뿐더러 더이상 나오지 않는 플라스틱을 보는 것만으로 속이 다 시원하다. 더군다나 물 값까지 아끼니 텅장이 약간은 두둑해진 기분이다. 불편한 삶이 더 유익한 삶일 때가 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는 삶, 수돗물이 알려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