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살 무렵까지 아이는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나는 아이가 말이 정말 많은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다섯 살에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원 하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얘기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었다.
물어봐도 제대로 말을 안 했다.
혹시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아이가 갑자기 말수가 줄어드니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말을 잘 안 하니
유치원에서의 생활을 알 수가 없었다.
잘 모르는 나를 보고
주변 엄마들은 '아들 같은 딸'을 뒀다고 했다.
그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내가 초등 5학년 때
함께 놀던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무리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모두 한 번씩
따돌림을 당했고 내 차례가 된 거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제 같이 밥을 먹고 놀았던 친구를 따돌리는 것도
그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그 상황을 버텼다.
내 아이가 나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조차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릴까 봐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말이 없는 아이를 닦달했다.
그럴수록 아이는 말이 없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원래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려서 말을 배우는 시기라 말을 많이 한 것뿐인데
그걸 몰랐다.
엄마라고 아이에 대해 다 아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아니다.
그걸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는 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싶으면
아이가 말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세심하게 아이를 관찰하고
더 사랑 표현을 많이 한다.
아이가 말할 때 눈 맞추며 귀 기울여 들으려고 애쓴다.
아이를 바꿀 수 없으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홉 살인 지금도 아이는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만 학교나 친구 얘기를 한다.
여전히 주변에서 '아들 같은 딸'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따갑지 않다.
아들 같은 딸이 아니라
생각이 많고 말이 적은 게 원래 딸의 모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