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소원

드라마 <런온> 4~6회를 보고

by Journey
언제는 제 인생이 제 것이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축구도 국가대표도 제 꿈 아니었습니다.


기선겸이 전지훈련 중에 '달릴 수가 없다. 동료 선수를 폭행했다'라는 말을 폭탄 터트리듯 던지고 나서 아버지, 기정도 의원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그림책 <진짜 내 소원>이 떠올랐어요.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소원 3개를 들어준다는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는 소년. 첫 번째 소원은 '공부를 잘하게 해 줘' 그랬더니 엄마가 1등을 합니다. 다시 두 번째 소원 '돈을 많이 벌게 해 줘' 했는데 이번에는 아빠에게 새 차가 생겨요. 이것들은 모두 소년의 소원이 아니었던 거죠.

진짜 네 소원이 뭔지 잘 생각해 보라는 지니의 말에 소년은 당황합니다. 진짜 내 소원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냐고 지니에게 물어보자 지니가 얘기합니다.


꽃을 좋아하니? 그렇다면 어떤 꽃이 제일 좋아?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뭐야?
너를 기분 좋게 하는 음악은 찾았니?
때론 네가 싫어하는 그 무엇을 아는 것도 중요해.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소년은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세 번째 소원은 1년 뒤에 말하겠다고 하죠.

약속한 1년이 지나고 이제 세 번째 소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소년이 지니를 부릅니다. 그런데 '1년 뒤에 소원을 말하겠다고 한 것이 너의 세 번째 소원'이라며 지니는 나오지 않습니다. 소년은 말합니다. 백 가지 정도는 들어줘야지 왜 소원은 세 가지만 들어주는 거냐고요. 그러고는 종이에 100가지 소원을 적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자신을 잘 알게 된 소년은 이제 더 이상 지니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 소원을 이루어낼 만큼 힘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기선겸에게도 이 그림책의 지니 같은 사람이 다가옵니다.


"안 무서워요?"

"왜 남일처럼 얘기해요?"

"아무렇지 않아요? 다시 못 뛰는 거?"

"난 당신 얘기가 제일 중요한데!"

"본인 좀 소중하게 좀 여겨주세요."

"고통에 익숙한 사람, 잘 견디는 게 디폴트인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혹시 하고 있다면."


기선겸에게 자꾸 질문을 던지는 사람, 오미주.

진짜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오미주가 아니었다면 기선겸이 '내가 사랑한 것 중에 왜 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일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늘 그래 왔듯이 견디고 감내하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달리기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 스스로 했던 선택이었다'와 같은 각성도 없었겠죠. 국회의원과 탑 배우의 아들, 골프 여제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 옆에는 그런 기선겸을 응원하고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오미주가 있죠.


저는 어릴 때 사람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늘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계기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초등학교 때 그렇게 말한 이후로 열정적인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마다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될 거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자기 반 학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회식과 대학 진학률에만 관심을 쏟는 몇몇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존경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과연 존경받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러면 선생님이 되는 건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마음에 제자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선생님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때는 생각의 폭이 좁아 이거 아니면 끝이라는 흑백논리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십 년 가까이 품었던 꿈을 포기하고 나니 막막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목표 없이 이것저것 들춰보다 어영부영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고요.


그때 나에게 지니 같은, 오미주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 없어하는 제게 '너는 분명 학생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확신을 갖게 하거나 학교 선생님 말고 다른 꿈이나 목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있었다면요. 그랬다면 적어도 존경받는 선생님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흑백논리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저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습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를 찾아가도록 질문을 던져주고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요. 덕분에 제 속도대로 나를 알아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백 가지는 아니지만 저도 지금은 '진짜 내 소원'이 뭔지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생기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아이가, 남편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만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그들이 저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그래도 꼭 이루고 싶은 소원입니다.




표지사진 출처 : JTBC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