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나 먼저

드라마 <런 온> 10~12회를 보고

by Journey


이십 대 후반, 제가 너무 좋아 결혼하고 싶다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사람과 별로 연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0분만 만나도 좋다며, 야근하는 저를 2시간 넘게 기다렸다 집에 데려다 주기를 한 달 가까이하면서도 그저 행복하다고 하는 모습에 결국 연애를 하게 됐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사람과의 연애는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람은 점점 변해갔습니다. 만나는 곳, 시간, 음식 등등 모든 것을 자기 편한 대로만 하려고 하고 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에 지쳐갔습니다. 저를 무시하는 태도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자존감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채였지만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못해 이별을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말이지만 풀타임 근무를 하고 있는데 집에서 쉬고 있던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근무가 끝나고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자기는 멀리 나가기 귀찮으니 자기네 동네에서 만나자는 거였습니다.

회사에서 거기까지는 1시간 반이 넘게 걸리고 다시 집에 돌아갈 때도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다음날 다시 출근해야 했던 저는 결국 그날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애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는 귀한 자식이라고! 내가 어디가 어때서 이렇게 끌려다니고 있는 거야.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런 연애, 끝내자!'




​내가 훼손되면서까지 연애를 해야 되나?
나는 그래도 남들처럼,
남들만큼은 하고 싶었는데.
왜 자꾸 나는 맞지도 않는 신발에 발을 구겨 넣고 있는 거 같지?
나는 그냥,
그냥 내가 어때서.
나 나름 잘 살아왔는데.
내가 어때서.
나는 내가 더 소중해서 그냥 포기할래요.
해도 된다면서요, 실수.



드라마 <런 온>에서 오미주는 기선겸의 아버지, 기정도가 갑자기 찾아와 막말을 하고 간 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온 기선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미주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볼 줄 아는 사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미주처럼 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끌려다니는 연애를 하지 않았을 텐데 저는 그걸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상처를 받은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제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요.

연애가 끝나고 나서 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면서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워나갔습니다.

결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 절대 혼자 살 수 없을 테니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보니 제가 하던 연애 방식의 문제점이 보이더라고요.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채서 내가 원하는 걸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상대방에게 사랑받을 때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없었던 거죠.


또 어떤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지를 적어보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나를 더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그렇게 적고 보니 저도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습니다.




이런 저의 노력은 몇 년 후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기선겸처럼 직역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요. 번역가인 오미주처럼 저 역시 다른 사람의 말을 의역하는 편이었기에 남편과 오해 없이 소통을 하려면 돌려 말하거나 떠보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길 것 같거나 궁금한 것, 부탁할 것이 있을 때마다 바로 남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덕분에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기선겸에게 "내가 잘할게. 내가 진짜 호강시켜준다."라고 큰소리치는 오미주처럼 저 역시 주도적인 연애를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아버지가 틀렸어요,
그 사람 제 약점 아니고 강점이에요.



아버지에게 오미주가 자신의 강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기선겸처럼 서로에게 강점이 되는 관계.

제가 간절한 마음으로 적었던 것처럼 제가 저를 더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는 사람으로 남편과 저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표지 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