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뭐라고

드라마 <런 온> 13~15회를 보고

by Journey


눈이 부시게 푸르른 오월.

오월은 가정의 달에 걸맞게 가족 행사가 많은 달이지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그리고 저의 생일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주셨기에 연초부터 올해 생일은 언제인가 달력을 펼쳐놓고 날짜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래야 친구들에게 생일을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음력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친구들이 늘 제 생일을 헷갈려했거든요.


친한 친구들은 연초면 올해 네 생일은 언제냐고 묻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날짜를 알려주면서도 친구들에게 생일을 잊지 말고 챙겨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 집은 음력 생일을 해서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나 싶었어요.


이런 고민이 있었음에도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생일만큼은 부모님께 당당하게 선물을 받을 수 있고 나이 수대로 초를 꽂은 달달한 케이크도 먹고, 생일이라고 다들 축하해 주니 뭔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았거든요. 저에게 생일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생일은 정말 특별한 날일까요?



몇 년 전에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말로 모건이 전해주는 생일 파티 때 나이 수대로 케이크에 초를 꽂고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참사람 부족원들은 말합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아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먹는 거라서 축하하지 않는다고요. 그들에게 생일은 그저 1년 365일 중 태어난 날일 뿐이었습니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지요."

-말로 모건 저, '무탄트 메시지'중에서-


그때는 한창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터라 저도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고 나아지는 걸 축하는 생일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 후 생일이 되면 늘 생각했습니다.

'지난 1년간 나는 지혜로워지고 성장했는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서 매일 의식하고 공부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조금이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껐습니다.


몇 달 뒤면 생일이 돌아옵니다.

'올해 나는 작년보다 나아졌나?'

다시 또 생각해 봅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런저런 도전도 하고 책도 읽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만 얼마나 나아지고 지혜로워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게 단아와 영화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단아 : 그 이슈, 더는 얘기 마.
생일이 뭐라고 선약까지 해서 챙겨?

영화 : 대표님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니까.
태어난 거 자체가 감동인데, 건강하게 자라서
나랑 만나고 있으니까.


괜스레 영화의 대사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보통은 생일이 되면 나이 수대로 초를 꽂고 축하를 합니다. 문득 그게 정말 나이 먹는 걸 축하는 걸까? 의문이 듭니다.

태어나서 오늘 이날까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을 축하하는 아닐까요?

아침에 눈을 떠 주어진 하루를 잘 보내고 다시 또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 이 하루가 사실은 선물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주어지는 선물 말입니다.

그 하루를 우리가 잘 살아내는 것,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지요.


참사람 부족은 이미 그걸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아지는 걸 축하하는 것 같아요. 나아진다는 건 눈으로 확인 가능한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알면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성장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게 됩니다. 성장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이 아니니까요. 굳이 애써 작년보다 성장하기 위해 의식해가며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거죠. 어제의 나, 작년의 나와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오늘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정성껏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저에게 생일은 특별한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선물 같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는 걸 축하하는 날로 말이지요.

또한 제가 아는 모든 사람의 생일에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축하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거 자체가 감동이니까요.





표지 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