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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Aug 12. 2022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찰싹"


아이가 말을 하다가 답답한지 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쳤다.

한 번씩 그럴 때면 자기 몸을 함부로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감정이 한껏 올라간 나는

"그래서 되겠어!? 엄마가 때려줄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왜 때려??

내 몸이잖아, 내가 안 아프면 됐잖아!!!

나 5살에 엄마가 화 많이 내고 때렸잖아!!!!

나는! 슬프고 화나는데 계속 참았다고!!!!

나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서 엄마한테 안 찾아올 거야!!

엄마는 나 보고 싶었다면서, 기다렸다면서!!

나도 엄마 보고 싶어서 엄마한테 온 건데!!

엄마가 나 안 좋아하는 거 같아!!!"​

아이는 그동안 쌓인 걸 토해내듯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옛 이야기하듯 말했다. 네가 하늘나라에서 어느 가족에게 갈까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엄마에게 왔다고. 엄마는 너를 기다렸고 네가 무척 보고 싶었는데 네가 엄마에게 와줘서 행복하다고. 그 이야기들을 행복하게 들었던 아이가 모든 걸 부정하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가 4, 5살 때 아이에게 화를 많이 냈다. 소리 지르고 노려보고, 어느 날은 엉덩이를 팡팡 때리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를 하고,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아이를 때린 건 나 스스로도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이 두 번, 세 번이 되는 건 쉬웠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생각에 아무리 화가 나도 이후로는 아이를 때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때렸던 걸 잊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의 맞았던 기억도 사라지지 않았다.


변명의 여지없이 그때 나는 아이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대했다.

아이에 대한 답답함, 불안, 두려움.. 부정의 감정을 소리치고 짜증 내는 거 말고 건강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그걸 아이가 고스란히 배웠다.

이즈음 아이가 나에게 짜증내고 소리치는 일이 잦았다. 내 관점에서 보면 맥락 없이 그럴 때가 있다.

왜 그렇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는지 물었더니 아이가 그런다. 답답하고 화가 나면 소리 지르고 싶어 진다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애교를 부린다.

아이도 안다. 나한테 소리치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그런데 이 패턴이 반복되니까 언제 아이가 다시 짜증을 낼지 몰라서 불안해질 때가 있다.


아....... 이게 바로 내 모습이었다.

내가 아이 5살 때 저랬다. 그러니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내가 화를 내면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만 생각했지, 내가 화내지 않을 때도 아이는 엄마가 언제 화낼지 몰라 불안할 수도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불안과 억울함, 슬픔이 아이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풀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그때 엄마가 그랬어. 그래서 사과도 했잖아. 엄마도 그때 널 때린 거 엄청 후회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런데 그 일은 이미 일어났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아무리 후회해도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고...

엄마가 어떻게 할까? 무릎 꿇고 너한테 다시 사과할까? 엄마가 어떻게 하면 네 안의 슬픔이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엄마가 널 좋아한다고 느낄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에 아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참 후에 아이가 말했다.


"안아줘. 내가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안아줘."​

"알겠어. 그렇게 할게. 엄마가 아프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이를 꼭 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이 일이 일어난 건 2020년 5월, 아이가 8살 때였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잠이 깰 때까지 안아달라고 했다.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 등교가 시작된 다음에는 집에 오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안아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던 걸 다 내려놓고 30분이고 1시간이고 아이가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안아주었다. 나에게 안긴 채로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남편이 아이가 한 말을 전해주었다.


"아빠 오늘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어. 근데 오늘 엄마가 화 엄청 많이 냈다."​


남편은 아이가 엄마가 화를 낸 것과 자기감정을 분리하고 있다며 기뻐했다. 엄마가 화를 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나.

생각해보니 확실히 예전에는 내가 화를 낸 날은 아이도 굉장히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냈다. 조금만 내 목소리가 커져도 상처받은 눈빛을 하고 불안해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그런다. 엄마가 나한테 화를 낼 때가 있지만 그래도 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다고.

그 일은 이미 일어났고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한 아이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확실히 느껴진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전에는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모른다고 많이 했는데 지금은 조곤조곤 학교생활을 얘기한다. 감정표현도 늘었다. 말도 못 하고 상처받은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는 이제 엄마가 그러면 서운하다던가, 슬프다던가, 오늘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는 말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모두 표현하는 게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이 인생에 부모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부모가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것,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얼마나 아이를 안정되게 하는지 요즘 많이 느끼고 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방식은 스킨십이었다. 손잡기, 안아주기, 쓰다듬기.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원하는 방식이라는 것.


지금도 때때로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큰소리 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아이에게 사랑 표현을 한다. 아이를 보면 이상하게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그럴 때마다 그냥 말하는 거다.

아이도 안다.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덕분에 완벽한 부모,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게 되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 집중할 뿐이다.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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