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고뇌
꿈꾸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건 괴롭다.
아영은 장문의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어쩌면 붙잡아 달라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 번 그런 적도 있었고. 하지만 이젠 붙잡지 않았다. 더 잘해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너는 항상 틀리지 않잖아."
그녀의 말은 비수가 되어 나를 헤집어 놓았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저 한 마디가 여태껏 나의 그런 행동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것 같았다. '그저 한심한 변명'이라고. 사람이 그렇게 모든 일에 이유를 댈 순 없고, 모든 행동들이 맞아떨어질 순 없다고.
언제나 앞뒤가 맞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증명이 될 줄 알았다. 그게 끼워 맞춘 변명으로 보일 줄은 몰랐다. 나에겐 해명이었는데, 그녀에겐 잘 끼워 맞춘 변명들에 불과했다.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랬나? 내가 말을 지어냈나?
'...'
아니, 의미 없는 고민은 그만하자. 어쨌든 그녀와는 이제 끝났다. 그러니 고민할 지점은 거기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내가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이제 전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녀의 이별 통보를 보고, 어떻게 달라져야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앞으로 나라는 인간을 만날 사람들에게 같은 지적은 받지 않도록 하자.
그래, 우선은 말을 줄이자. 내 사정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사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의도를 깊게 읽어보려 하지 말자. 난 아무래도 사람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녀는 나와 사귀는 동안 외로웠다고 한다. 그렇구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꿈틀거렸다.
'휴대전화나 유선 전화가 발전하기 전의 사람들은 연락 없이 잘만 사귀었을 텐데 그걸 왜 못 참는 거지.'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래, 전화도 없던 시절이면 애초에 이렇게 장거리 연애를 안 했겠구나. 전화가 있었기에 성립한 관계에서 내가 불리할 때만 전화를 빼버리는 건 너무 편의적인 생각이다.
그녀의 이별 통보라는 이름의 리뷰에는 그 밖에도 나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적혀있었다. 글의 마무리는 앞으로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축복의 말로 끝맺었지만, 이건 습관적 인사치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별점 1점짜리 리뷰를 다 읽고, 나도 그녀의 축복을 빌어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메시지를 끝으로 메신저 어플을 닫았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조금 지나면 금방 중간고사 기간이 되겠지.'
시험 자체는 싫지 않다. 하지만 시험이 계속 다가오는 게 싫다. 중간고사를 치고 기말고사를 치고, 학기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런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 게 싫다.
강의실에 교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다지 귀에 꽂히지는 않는다. 교수가 띄워놓은 ppt에는 알 수 없는 수식이 나열되어 있고, 그걸 그대로 읽고 있다. 대학 학비가 아깝다고 생각할 때쯤, ppt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ppt에는 교수가 웬 아저씨들과 얼큰하게 취한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교수가 갑자기 사담을 시작했다. 최근에 일본 출장 가서 동기들과 한 잔 마신 사진이라고 한다.
술. 나도 술을 좋아한다. 그녀도 술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아영과 만나면서 그녀 때문에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 아닌가? 하지만 이런 내 답변을 그녀가 들으면, '그런 철학적인 얘기가 아니라, 진짜 옆구리가 시리다고'라며 째려보겠지. 사귀던 때에는, 그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외롭다는 게 뭘까. 장난스럽게 넘기긴 했지만, 나는 저 두 외로움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녀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르다는 게 싫진 않았다. 그 다름을 이해해 나가는 게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습관처럼 그녀의 말을 이해해 보려 머리를 짜내고 있다.
그녀는 그냥 외로웠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있어서 외로웠다고 했다. 내가 없었다면 덜 외로웠다는 말이겠지. 내 머릿속에서 가장 비슷하게 떠오른 말은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 허허벌판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자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떠오른 외로움의 감정이 더 강한 것처럼 그녀도 그랬다는 걸까.
이제 그녀를 앉혀놓고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으니, 내 안에서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그래, 그런 얘기였겠지.
'아영과 헤어진 걸 한봄에게 말해야 하나'
아영과 나는 한봄의 소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이였다. 사귀고 나서 그 소식을 알렸었으니, 헤어진 것도 말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교수는 사담을 멈추고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휴대폰을 열었다. 메신저 어플에 들어가서 한봄을 찾았다.
'...'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그만뒀다. 나보다는 아영이 한봄에게 이야기하도록 놔두는 게 맞지 않을까. 동성끼리 이야기하는 게 더 자세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겠지.
'그리고 내가 연락하면 아영의 푸념 들어줄 상대를 빼앗는 꼴이 될 것 같아.'
아영에게 이야기를 먼저들은 한봄이 나에게 연락해 오면, 그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헤어진 거 맞다고 전하면 되겠지. 그래, 그러자. 한봄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우리들이 사귀도록 그녀가 연결해 준 셈이 되었는데 내가 아영을 힘들게 해서 헤어졌으니 한봄의 입장이 난처해졌을지도 모른다. 한봄에게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형! 오늘은 수업 오셨네요!?"
옆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같은 학과의 아는 동생이다. 그는 내 옆자리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의는 어느새 끝났고, 강의실은 다음 강의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어수선했다.
"하하,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결석하는 줄 알겠다."
웃으며 받아쳤지만, 누군가 그렇게 생각해도 오해는 아니다. 실제로 오랜만에 등교했으니.
"형, 수업 좀 와요. 얼굴 보기 힘드네 진짜. 이제 계속 오실 거죠?"
"사실 쿠폰이 조금 남아서, 조만간 또 써야지."
내가 미소 지으며 언급한 쿠폰이라는 건, F를 받지 않는 선에서 결석 가능한 횟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석 8번부터 F를 받으므로, 7번까지는 괜찮다는 계산이 들어가 있다. 물론 나 같은 상습범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프로 정신으로 1회 정도의 여유를 남겨두는 편이다. 즉, 처음에 6개의 쿠폰을 가진 셈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쿠폰이라고 표현했지만, 성실함의 화신인 눈앞의 사내에게 불성실함의 표본인 나의 비유는 낯설었던 모양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그는 쿠폰의 의미를 깨닫고 호방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도 의미 없는 잡담은 이어졌지만, 전혀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아영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예술 계통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장래의 일, 이를테면 다음 직업을 위한 일본어 공부도 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척'의 전문가인 나에게 정말 진지하게 공부하는 그녀의 모습은 신기하게 다가왔다.
'아니, 대단하다고 해야겠지.'
그래. 그녀는 대단했다. 정말 뭘 하든 잘해 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분명 현실적인 노력을 거듭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론 이상적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딘가의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선 그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장래에 대해서도, 일상에 대해서도.
한봄이 나와 아영을 소개해줬다곤 했지만, 남녀 관계로 소개해준 건 아니었다. 내가 새로 대학에 들어간 뒤에 한봄과 자주 어울렸는데, 그때 한봄이 나와 아영을 소개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가 20대 초반에 나의 지인들을 서로 소개해주는 재미에 빠져 한봄과 대범을 서로에게 소개해줬듯이, 한봄도 자신의 지인들을 서로 소개해주는 재미에 빠진 것 같았다. 내가 그 짓을 그만둔 이유가 분명히 있었지만, 굳이 그녀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며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순순히 그녀의 주선에 응하여 셋이서 자주 놀았다.
그 뒤에 나와 아영이 사귀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뭐, 흔히들 겪었을 그런 흐름이다.
"우리 이제 무슨 사이야?"
흐릿한 달빛 속에서도 그녀의 질문은 흩어지지 않고 선명하게 나의 고막을 때렸다. 나는 당황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최대한 차분한 척 미소를 지었다. 단 몇 초의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당연히 이제 사귀는 사이지."
다행히도 내 대답은 그녀가 낸 주관식 문제의 모범 답안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아영은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그래, 이럼 된 거야.'
나는 눈을 감았지만 꿈은 꾸지 못했다.
나는 아영을 잘 알지 못했다. 아마 그녀도 나를 잘 몰랐겠지. 서로 잘 모르는 채 만났고, 잘 안 맞아서 헤어졌다. 그것뿐인 이야기다.
개강하기 4개월 전, 아영이 한봄과 대범의 소식을 들었냐며 말을 꺼냈다. 나는 한봄과 대범을 둘 다 알지만, 아영은 한봄과만 아는 사이였으니, 아마도 한봄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특별히 들은 소식이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아영이 신나서 그 둘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그들이 다시 사귄다는 얘기였다.
'또 시작인가.'
그들의 사귄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건, 내가 전역한 후 첫 수능을 치른 날이었다. 한봄의 말에 따르면, 사실 내가 전역하고 바로 알려주려고 했지만, 내가 수능을 다시 준비한다는 말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땐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애를 축하해 줬다. 나 덕분에 알게 된 사이니까 술이나 한 번 쏘라고, 그런 장난스런 말도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술을 사주기 싫었던 건지, 그 둘은 금방 헤어졌다. 한봄의 연락이 와서 나가보니, 미련이 절절하게 묻은 목소리로 대범의 근황을 묻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며칠 뒤에 대범의 연락이 와서 나가보니, 한봄의 집착 증세를 상세하게 보고해 주는 것이 아닌가. 양쪽의 이야기가 전부, 각자에겐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둘이 다시 사귄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또 몇 달 뒤에 헤어졌다. 그런 일들을 두어 번 더 반복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재결합을 반복하며 그 사이에 끼인 나는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전역 직후 치른 저 수능이 내가 진지하게 치른 마지막 수능이었다. 그 뒤로 어영부영 수능을 붙잡고 있긴 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수능을 붙잡고 어영부영 보낸 몇 년간, 저 두 사람은 서로를 붙잡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관계를 2, 3년간 이어가다가 이번에야말로 드디어 완전히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한봄은 다른 남자와 사귀고, 대범은 다른 여자와 사귀었다. 신기하게도 그즈음 나의 수능 방황 또한 끝이 났고, 성적에 맞춰서 아무 대학이나 들어왔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지금, 아영에게 그들의 재결합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두 사람 어딘가 운명 같지 않아?!"
신나서 얘기하는 아영의 말을 나는 떨떠름하게 들었다. 아영이 마치 옛날 동화의 공주님을 부러워하는 미취학 아동처럼 들떠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체 무슨 포인트에서 운명이라고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운명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나는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좋게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지 않은가. 아영은 저 이야기를 한봄을 통해 전해 들었을 것이고, 아영이 신나서 이야기한다는 건 한봄도 신나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아영이 신난 것도 한봄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영향을 받은 거겠지. 간접적으로나마 친구의 행복을 전해 들은 셈이니 잘 된 일이 아닌가.
'이번에는 헤어지고 어쩌고 하는 일 없겠지.'
'...'
나는 그제서야 내가 아영을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놓인 상황이 불쾌했다. 아니, 이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이 불쾌했다.
나와 아영은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면 애정표현을 많이 했었다. 나는 그저 만나는 순간에 충실하면 되고, 그 외의 시간은 각자 할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그녀는 일을 하다가도 내가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서 일에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상대가 연락을 기다릴 거라는 강박 때문에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는 게 더 불안한 일 아니냐고 되묻곤 했다.
애초에 대화가 성립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공감을 하려 다가갈 수 있겠는가.
장래의 일이고, 일상에서의 일이고, 그녀는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일상 속 꿈을 이루어주지 못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녀의 장래의 꿈까지 좀먹고 있었다. 동화 같은 관계를 꿈꾸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런 동화를 보여줄 수 없다. 능력적으로도 그렇고, 심정적으로도 그랬다.
그동안 연인의 말에 열심히 해명을 펼쳤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에 아무런 애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걸 듣는 사람에게 상대의 말은 자신과의 문제 해결을 위한 해명으로 들릴 수 없었다. 그건 그저 사무적인 설명이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애정 없는 해명의 정합성은 해명의 신뢰를 올리기보단, 그 해명을 진부한 설명들의 나열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합성을 위해 길어져버린 그 설명들은 점점 변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딱 맞아떨어지는 변명만큼 의심스러운 것이 있을까. 결국 변명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 그 설명의 정합성은 의미를 잃었다.
이제 모든 일이 맞아떨어진다. 그래, 그랬던 거구나.
끝끝내 나는 스스로의 머릿속에서조차 상황의 정합성을 맞추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연인을 대상으로 하던 끼워 맞추기를 이젠 자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와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의 상황을 하나의 궤를 따라 정리하고 나서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아영과 한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아영과 헤어진 당시의 나는 알게 모르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려던 시도는 그녀와의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이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아무런 뉘우침도 얻지 못했다.
대화하지 않고 사죄하며 넘어가는 법을 익혔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걸 사귀기 전에 미리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나마 만나서라도 하던 애정표현은 스스로 연기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무언가를 배워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변명 하나는 기깔나게 하던 비겁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다.
나는 스스로 눈을 가린 채 꽃밭을 그려나갔다. 헤어지고 나서 눈을 가린 건지, 헤어지기 전부터 눈을 가리고 살아온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현실에 놓인 관계를 보지 않고, 머릿속의 무언가를 끼워 맞추며 꿈이나 꾸던 내 옆에서 그녀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 더 끔찍한 인간이 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