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 (1/2)

소설 - 어리석은 자의 고뇌 2

by 유기력한 유기체

W는 장문의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어쩌면 붙잡아 달라는 얘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한 번 그랬던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붙잡지 않았다. 더 잘해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너는 항상 틀리지 않잖아."

그녀의 말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녀의 저 한 문장이, 여태껏 그녀가 나의 설명을 어떻게 느껴왔는지 알게 해 줬다.

그저 한심한 변명.

언제나 앞뒤가 맞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증명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가리켜, 끼워 맞춘 변명이라고 했다. 사람이 항상 그렇게 맞을 순 없다는 것이다. 나에겐 해명이었는데, 그녀에겐 잘 끼워 맞춘 변명이었다.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랬나? 내가 말을 지어냈나?


아니. 내 고민이 향할 곳은 거기가 아니다. 어쨌든 그녀와는 이제 끝났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내가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이제 전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녀의 이별 통보를, 그 누구보다 최근에 나를 써본 리뷰로써 읽고 또 읽자. 그리고 앞으로 나라는 인간을 만날 사람에게 같은 지적은 받지 않도록 하자.


그래, 우선은 말을 줄이자. 내 사정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사죄를 반복하자.

의도를 깊게 읽어보려 하지 말자. 나는 아무래도 사람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랑 사귀는 동안 외로웠다고 한다. 그렇구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꿈틀거렸다.

'휴대전화나 전화가 발전하기 전에 사람들은 연락 없이 잘만 사귀었을 텐데 그걸 왜 못 참는 거지.'

하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래, 전화도 없던 시절이면 애초에 이렇게 장거리 연애를 안 했겠구나. 전화가 있기에 성립할 수 있는 관계에서 내가 불리할 때만 전화를 빼버리는 건 너무 편의적인 생각이다.


그녀의 리뷰에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말들이 적혀있었다. 그나마 글의 끝에 앞으로 잘 되길 바란다는 축복의 말이 적혀있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별점 5점은 못 받을 것 같다.

나도 그녀의 축복을 빌어주는 메시지 보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끝으로 메신저 어플을 닫았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조금 지나면 금방 중간고사 기간이 되겠지.'

시험 자체는 싫지 않다. 하지만 시험이 계속 다가오는 게 싫다. 중간고사를 치고 기말고사를 치고, 학기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런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 게 싫다.

강의실에는 교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귀에 그다지 들어오진 않는다.

ppt에는 교수가 얼큰하게 취한 사진이 띄워져 있다. 일본 출장 가서 동기들과 한 잔 마신 사진이라고 한다.

나도 술은 좋아한다. 그녀도 술은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W와 만나면서 그녀 때문에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내 말을 들으면, '그런 철학적인 입장에서의 외로움을 말한 게 아니라, 진짜로 옆구리가 시리다는 의미의 외로움을 말한 거야'라고 하겠지.

두 외로움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나는 처음부터 그녀와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냥 외로웠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있어서 외로웠다고 했다. 그건, 내가 없었다면 덜 외로웠을 거라는 말이었다. 연인이 있는 사람이 느낀 외로움이 연인이 아예 없는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보다 클 수가 있나.

이제 그녀를 앉혀놓고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으니, 내 마음대로 추측해 봤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느낌으로 말한 걸까. 군중 속의 고독은 그냥 고독보다 더 외로운 느낌이 든다.

그래, 그런 얘기였겠지.


'W 헤어진 걸 H에게 말해야 하나'

H는 W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의 초등학교 친구였다. 원래 셋이서 놀다가 내가 W와 사귀게 되었었다. 사귀게 된 것도 알렸었으니까, 헤어진 것도 말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교수가 잡담을 멈추고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휴대폰을 열었다. 메신저 어플을 열어서 H를 찾았다.

'...'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그만뒀다.

나보다는 W가 H에게 얘기하도록 놔두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이야기를 전하는 것보다는 여자끼리 얘기하는 게 더 자세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연락하면 W의 푸념을 들어줄 상대를 빼앗는 꼴이 될 것 같.'

W에게 이야기를 먼저 들은 H가 나에게 연락해 오면, 그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헤어 게 맞다고 전하자. H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W에게 나를 소개한 꼴이 되었는데 그런 내가 W을 힘들게 해서 헤어졌으니, H의 입장이 난처해졌을지도 모른다. H에게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형! 오늘은 수업 오셨네요?!"

옆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같은 학과의 아는 동생이었다. 그는 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어느새 강의는 끝났고, 강의실은 쉬는 시간 특유의 복작복작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하,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출석 안 하는 줄 알겠다."

웃으며 받아쳤지만, 누군가 그렇게 생각해도 그다지 오해는 아니다. 실제로 오랜만에 왔다.

"형, 수업 좀 와요. 얼굴 보기 힘드네 진짜. 이제 계속 오실 거죠?"

"사실 아직 쿠폰이 좀 남아서, 조만간 또 쓰려고."

내가 미소 지으며 언급한 쿠폰이라는 건, F를 받지 않는 선에서 결석 가능한 횟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석 8번부터 F이므로, 7번까지 가능하다. 물론 나 같은 베테랑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1회 정도 여유를 두고 6번까지만 결석한다.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쿠폰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성실함의 화신인 그가 듣기에 불성실함의 극치인 내 표현은 낯설었을 것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그는 쿠폰의 의미를 이해하곤 호방하게 웃었다.

그 뒤로도 큰 의미 없는 잡담을 이어갔지만, 내 머릿속은 W와 H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W 전문대를 졸업하고 예술 계통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론, 그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이후의 일, 이를테면 다음 직업을 위해 일본어도 공부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척'의 전문가인 나는, 그렇게 진지하게 무언가를 공부하는 사람이 신기했다.

'아니, 대단하다고 해야겠지.'

그래, 그녀는 대단했다. 정말 뭘 하든 잘할 거 같았다.

그렇게 현실적인 노력을 거듭하는 그녀는 한편으론 이상적이기도 했다. 나의 이상형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딘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장래에 대해서도, 일상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