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만 머리를 감은 지 어느새 1년 5개월이 지났다. 물론 몸도, 머리와 마찬가지로 물로만 씻는데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No-Bodywash니까 노쉬?
노푸 10개월 차에 글을 쓸 때만 해도 머리를 감고 4일쯤 지나면 끈적임과 냄새가 느껴졌다. 지금은 그보다 감는 주기가 더 길어도 괜찮다. 5일이 지나도 쾌적하고 스스로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수고로운 일의 주기가 하루 더 길어진 만큼 생활이 단순해져서 기쁘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머리 감는 방법을 조금 바꾸긴 했다.
1. 전에는 전체적으로 빠르게 감으려고만 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시간이 들더라도 뭉툭한 손끝으로 구석구석 세심하고 꼼꼼하게 두피를 문질러 씻는다.
2. 아침에 감는다. 아침에 머리를 감으면 드라이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자연 건조가 가능하다. 게다가 밤에 덜 마른 머리로 잠들어서 두피에 세균이 증식하거나 모발이 손상될 일도 없다. 아무리 빠르게 말려도 5분 이상 걸리던 드라잉을 1분 정도로 단축시켜서 목 뒤와 정수리만 말린 후 출근하니, 비듬도 말끔히 사라졌다.
지난달부터는 약간 펑키한 스타일의 펌(일반펌)을 해서 유지하고 있다. 반곱슬머리를 억지로 꾹꾹 다려 펴는 매직보다 스스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맘에 든다. 그런데 겪어보니, 디지털펌이나 세팅펌이 아닌 일반펌의 단점은 머리를 욕심내어 많이 말리는 순간 컬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컬이 사라진 모습은 봐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침에 머리를 감고 드라이는 거의 하지 않는 루틴을 만들었다.
그래도 미용실에 갈 때는 혹시 디자이너분이 불편하실까 봐 샴푸를 쓰다가 어제는 물로만 머리를 감고 방문했다. 내가 노푸임을 익히 아는 원장님은 평소와 특별히 다르게 여기지 않으셨는지 별말씀이 없었고, 머리 하는 동안 늘 그랬듯 자영업자끼리 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웃었다. 일주일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원장님의 건강이 염려될 때도 있지만, 덕분에 우리 가게 휴무일에 머리를 다듬을 수 있으니 쉬시면 안... 되나? 다음에는 비건 쿠키라도 챙겨가야지.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것이 좋아서 종종 찾아보는 법륜 스님의 해외순회강연. 그중 언젠가, "남편이 자주 씻지 않아서 힘들다"는 한 질문자의 말에 스님은 이렇게 답변한다.
“그건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남편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세요. 기후 위기 시대에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죠. 매일 씻게 되면, 물도 많이 낭비하고, 비누도 많이 낭비하고, 에너지도 많이 낭비하게 돼요. (중략) 방을 쓸어 보면 가장 많은 먼지가 각질입니다. 이렇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피부 각질은 저절로 떨어집니다.
동물은 씻지 않아도 깔끔합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몸에서 기름기가 나오기 때문에 때가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네팔이나 티베트에 가보세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자든 남자든 거의 씻지 않습니다. 대신 몸에 기름을 바릅니다. 그러면 피부에 막이 형성되어서 여름 햇살에 노출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안 씻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동물이 씻지 않습니다. 더위를 피해서 물에 들어갈 때가 가끔 있지만 씻지는 않습니다. 저절로 몸이 적응하게 되어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씻지 않는 남편이 질문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중략)
비누 없이 물로만 씻어도 처음에는 끈적끈적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을 합니다. 피부 각질층이 저절로 떨어지면서 피부가 전혀 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를 샴푸로 안 감고 그냥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주 안 씻는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 측면에서 보면, 태생적으로 지구를 살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집에 성인이 났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세요.”
사람의 건강은 물론 환경까지 살리는 행복한 노푸. 위 강연의 원문은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27?p%3D31%26k%3D 를 참고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