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은 예상한 만큼 오는 법이 없다.
궂은날 오히려 장사가 잘 되네 싶으면 그렇지 않은 궂은날이 생기고, 볕이 환한 날에 '걷기 좋으니 많이 나오시겠지' 하면 가게가 텅 비기도 한다. 근처 공방에 가서 수다 떨다 와야지 마음먹으면 갑자기 손님이 북적거려 30분의 짬도 내기 힘들고, 별다른 기대 없이 출근한 연휴에 손님이 몰려와 뿌듯했던 적도 있다. 요즘은 오픈런 손님이 늘면서 더 일찍 출근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찍 빵을 만들고 길게 일한다고 매출이 느는 건 아니어서 진열 시간을 조정하는 편이 무리없을 것 같다.
오늘 내가 바라는 방향의 하루가 꾸려질지 아닐지 매일의 상황에 부딪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오전에 빵을 만들 때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추어 모두 전시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이 많았는데 이를 버리고 1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두기로 했다. 즉 11시에 오픈이면 12시까지 빵을 조금씩 빵을 진열한다.
어제는 성형까지 모두 마친 베이글을 물에 데치는 순간 이스트를 넣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발효되지 않은 베이글은 물에 뜨지 않으니까. 그 많은 베이글이 버려질 생각, 오전 동안 애써 만든 4종류의 품목이 날아가는 것이 아찔해 순간 혀를 차며 행동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곧 베이글을 망친 것보다 이런 행동이 더 후회스러웠다. 어떤 사건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거기에 일일이 저항하며 괴로워하지 않는 나를 만드는 것이 베이글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스에는 에포케(epoche)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쓰던 용어로 원래는 ‘멈춤’ 또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둠’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판단 중지’라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판단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의 입장과 상태 ·조건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일률적으로 좋다, 나쁘다, 또는 있다, 없다고 판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사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하는’ 수밖에 없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
생활 속에서도 에포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인과적인 것은 아니다. 이스트를 넣으려고 할 때 운동하러 나갔다 온 남편이 들어와 활기차게 말을 걸었고, 새로 시도하는 베이글의 레시피 계산에 빠져 있던 나는 남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이따 이야기해"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베이글에 이스트 넣는 것을 잊었을 것이다. 누구 탓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트북을 한참 노려봐도 무엇을 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의식이 흐르는 대로 자유롭게 내달리듯 글을 쓰면(5분 정도의 정해진 시간 내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소설가 베르나르베르베르는 말한다.
며칠 전부터 잠재의식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자기 전 몇 시에 일어나자고 진지하게 몇 번씩 속으로 말하면 알람 없이도 그 시각에 눈이 떠지는데, 오늘로 4일째다(4일 모두 성공!). 꼭 시간 단위일 필요도 없다. 일어나서 비몽사몽 할 때 원하는 오늘 하루의 모습과 궁극적으로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며 잠재의식에 새긴다. 실제처럼 느껴질 때까지 즐겁게 시각화하다 보면 어느 날 거울을 봤을 때 잠재의식에 그린 내가 눈앞에 서 있는 날이 오겠지?
올해에는 한 달에 최소 몇 편의 글을 쓰자는 목표를 세웠다. 아직까진 수세에 몰린 2월. 잠에서 막 깨었을 때는 이완되어 주저 없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일어나면 글을 쓰자고 잠재의식에게 주문했더니 자연스럽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글은 어젯밤에 올려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올리고, 아침 명상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