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이 낳는 것
모임은 번거롭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껍다. 한 사람 속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 그의 사고방식과 성향과 개성적인 면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3인을 초과하는 모임은 결국 사회 전체보다 그들 단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임이 된다고 생각해서(가족도 그런 대표적인 집단 중 하나) 1:1이나 2:1, 1:1:1의 만남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런 관념에 파문을 일으키는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최근 어떤 공모전 설명회에 참석했다. 평택시문화재단에서 오신 분들이 행사에 쓸 빵과 콜드브루 여러 병을 예약하며 관심 있으면 오라고 책자를 주신 행사다. '생활문화활성화 지원사업' - 문화라는 단어는 흔하지만 그 자체를 주어로 듣는 일은 오랜만이어서 내용은 잘 몰라도 설렜다.
편한 호흡, 낮은 어깨로 살고 싶은 욕망과 복잡한 상황으로 평택에 온 지 32개월. 이사 당시 팬데믹은 극심했고 새 매장과 낯선 동네의 매일은 혹독했다. 둘째 해부터는 쌓인 부채에 깔려 문화적이라 여길 수 있는 행위를 잊고 지냈다. 문화란 이상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을 아우르는 말이고, 삶에 여백이나 여유가 있는 상태 혹은 그 상태를 만드는 활동 모두일 텐데, 연말이나 기념일쯤 돼야 떠올랐다 사라지는 단어가 된 것이다.
설명회장에 도착하니 내가 만든 빵들을 접시에 담는 사람들이 보인다. 앉아서 프레젠테이션을 듣나 싶었는데 종이를 나눠주며 써달라고 하신다.
01. 사소하지만 실천하고 싶은 나와의 약속(올해 기준)
02.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것
03. 망설임 없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는 일 또는 하고 싶은 일
스무 명쯤 되는 참석자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둥글게 마주 놓은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작성한 종이는 모두 걷혔다가 다시 무작위로 배부. 다른 사람이 쓴 페이퍼에서 인상 깊은 부분과 함께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평소 하지 않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려운 일을 좋아하고 한계 없애는 일을 좋아해요. 평택에 이사와서 힘들었지만 요즘은 찾아오는 분들이 생겼고, 사회에 도움될 일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이런 자리에 오게 되어 얼떨떨하고 반갑습니다."
살면서 적극 추구한 일들 대부분은 내 한계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우주의 티끌 같은 나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타인의 소우주를 밀도 있게 궁금해하듯 스스로를 최대한 알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한계를 아는 것보다 허무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한계를 없애거나 확장하려면 외부 세계와 부딪쳐야 한다. 좋은 그림과 글은 거울 같아서 감상자의 모습을 비추고, 대화를 끌어내 사고를 발달시킨다.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신의 예술품인 우리는 의도하지 않아도 대화로 서로를 일깨우거나 새로운 인식을 선물할 수 있다. 존재들 간의 상호작용은 창조를 낳는다. 그렇다면 둘이나 셋보다는 여러 사람을 만날 때 더욱 빈번한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활문화 지원사업은 소소하고 일상적일 수 있는 활동들(ex. 고민 들어주는 실버히어로, 조금 다른 소리 산책, 정을 나누는 요리배달, 아파트 베란다는 전시 중, 나무 밑 할아버지 장기대회, 카톡 말고 편지톡, 우아한 장보기 클럽, 오후 4시의 낭독 등)을 다양한 사람과 할 수 있는 개인 및 단체를 지원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암묵적이고 중요한 요건이 있으니, 타인과 기꺼이 상호작용할 준비가 되어야 신청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분들과 짧게나마 나눈 대화는 그들의 생각과 삶, 사회적 흐름과 관심사를 엿보게 했다. 도전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한때 삶의 주제어로 삼았던 '문화'라는 절친과 함께, 나를 더 자주 흔들어줄 무한한 세상으로 가고 싶은 내면의 속삭임이 또렷하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