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가진 향기
새콤달콤한 유자청 속 5개월쯤 숙성된 말랑한 유자채같은 사람.
그가 우리 매장에 들어와 시루떡을 건넨 건 반년 전이다. 다른 동네에 있던 공방을 이전해와서, 앙금꽃을 올린 떡케이크를 만든다고 했다.
살집 없는 몸에 희고 갸름한 얼굴. 어깨길이의 생머리를 내려뜨린 첫인상은 약간 새침하게도 보였다.
(매장에 오신 시어머니는 그를 보고 '천상 여자'같이 생겼다고 했다.)
새들이 떼지어 지저귀는 작은 공원을 함께 바라보는 이웃 건물의 1층. 반가움과, 시루떡에 대한 답례로 빵과 커피를 가져다 드렸는데 다음 날 그가 다시 반달 모양의 떡을 가져왔다.
"바람떡 조금 쪄봤는데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어요! 이건 비건이에요. "
영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말을 하고 휙 사라진다.
매장 오픈 후 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가벼운 바람과 팥소가 함께 나온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먹는다'는 시적인 발상은 누가 처음 한 걸까? 웃음이 났다.
며칠 후 오전, 빵이 나오자마자 나는 그에게 뛰어가 갓 구운 빵을 건넸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었던가? 그는 친언니와 빵을 사러 왔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도…
언제든지 공방에 놀러 오시라는 그의 초대에, 머그에 음료 두 잔을 만들어간 날. 대화 내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그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한 번씩 꺼내는 엉뚱한 이야기, 풉 하고 얼굴 전체로 웃는 솔직하고 허당끼 넘치는 모습에도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에 신이 난 나는 바보처럼 몇 마디 말실수까지.
자신의 MBTI를 알려주었는데, 기억나지 않아 혼자 테스트해 보니 신기하게도 우리는 같은 성격유형이었다. (두 사람의 유형이 동일할 확률은 1/256, 약 0.004%다. 물론 십수 년 전부터 이 테스트를 할 때마다 나는 달라진 유형으로 나오지만.)
만나면 편안한 서로를 조심스레 탐색한 끝에 이후로 매주 1시간 정도의 티타임을 가지게 됐다. 한차를 좋아하는 그는 쌍화차, 감잎차, 생강차 등을 내어주고 나는 짜이, 케이크, 쿠키 등을 가져가면서.
공방에서 그는 꾸밈없는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에 단순하고 소박한 컵을 쓴다. 늘 비슷한 작업복(좋은 말로는 셰프코트) 차림인 내겐 보통 곡물가루와 초콜릿 등이 묻어 있다.
대부분 풍성한 대화를 나누지만 공백이 생겨도 잠시 그 순간을 누릴 수 있는 관계로 발전중.
항상 약속하고 만나기는 싫은 까닭에 때론 그가 반려 중인 고양이를 안고 불쑥 매장에 오기도 하고,
나 역시 마시던 텀블러를 가지고 무시로 공방에 들른다.
열린 태도로 인간관계를 맺지만 균형이 무너진 관계에서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그. 한 살이 적은 그에게, 먼저 말을 놓으라고 권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계속 존대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아마 그도 같은 의견이 아닐까?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최소한의 조심성을 유지하기. 관계의 핵심이 속도는 아니니, 뜨거운 차를 천천히 식히며 마시듯 느리고 튼튼한 인연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