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하고 고소하며 약간의 짭조름한 풍미와 달콤함까지 고루 갖춘 양과자.
팔리지 않고 남은 빵에 다시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착하고 미더운 업사이클 메뉴.
러스크를 굽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미판매되었거나 다 먹지 못하고 남은 빵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마른 빵은 당일에 비해 칼로 썰기에도 편해진다. 물론 냉동한 빵을 적당히 해동해서 썰 수도 있다. 당일 만든 빵으로 러스크를 만들기는 오히려 어려운데, 너무 부드러우면 기계 없이 일정한 두께로 썰기 어려워서다. 들쭉날쭉한 두께로 썰린 빵의 일부는 타고 일부는 덜 바삭해진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1. 빵을 얇게 썰어 녹인 비건버터를 살짝 그리고 골고루 펴 바르기. 2. 오븐에 굽고 한 김 식히기. 3. 코코넛슈가를 한두 스푼 넣은 봉지에 넣고 흔들어주기.
성공적이었던 빵들은 대략 아래와 같다.
우리쌀무화과호두빵
우리쌀파프리카빵
우리쌀통팥빵
우리쌀&우리밤빵
우리쌀얼그레이식빵
우리쌀블루베리식빵
우리쌀초코크랜베리식빵
두부쌀베이글
두부쌀참깨베이글
두부쌀셀러리베이글
소금빵
참고로 소금빵은 성형할 때 반죽 안에 비건버터 덩어리를 넣고 돌돌 감아주기 때문에, 굳이 비건버터를 바르지 않고 썰기만 해서 구워도 별미다. 담백한 빵이라면 무엇이든 훌륭한 러스크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목록과 비슷한 이름의 빵이 푸석해진 채 집에 방치되어 있다면, 처음보다 더 맛있게 되살려 보시기를.
'러스크'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손님이 있다. 달처럼 희고 둥근 얼굴에 화려하게 장식한 네일, 끝이 뾰족하고 컬러풀한 구두를 즐겨 신던 사람. 단것은 입에 대지 않고 바삭하며 고소한 품목만 공략하는 그는 매주 최소 2-3일은 와서 러스크와 브레첼을 개인용기 여러 개에 가득 담아갔다. 그리고 항상 계좌이체. 한 달에 빵을 몇십만 원어치 사가는 사람은 드물지 않냐며 가끔 스스로 은근한 먹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통통 튀는 그의 에너지는 들어서는 순간 매장 분위기를 바꾸고, 남편과 나를 진심으로 까르륵 웃게 해주곤 했다. 비슷한 또래인 손님과 우리는 가끔 농담섞인 말을 주고받았고 개성과 매력을 겸비한 그를 좋아했다.
아무래도 그의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아 그리시니를 몇 번 서비스로 구워드린 적이 있다. 이게 뭐예요? 하고 가져가 맛본 후 어찌나 흥분하며 좋아하시던지. 적잖은 손품과 시간이 드는 품목이어서 따로 자주 만들기는 어려워 특별한 날 가끔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처음엔 배달앱을 이용하시는가 싶더니 그조차 점점 시들해지는 게 아닌가. 왜인지 묻기 어려워 모른 척 평소처럼 대했는데, 두어 달 동안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그는 어느 날 긴 여행을 마치고 온 사람처럼 다시 가게에 왔다. 예전보다 50% 정도 낮은 텐션으로.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뭔가에 서운하셨나?
걱정스러웠던 나는 부쩍 조심스러워졌고, 그 또한 차분하고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었다. 60%-70%로 에너지가 회복되나 싶었을 때 손님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며 떡을 선물해 주셨다(이사 오는 사람 떡은 받아봤어도 이사 가는 사람의 떡을 받아보기는 처음!). 이후로는 가끔 평택에 오실 때 들러서 빵을 사가신다. 오히려 전보다 안정적인 기분이 든다.
노릇한 러스크를 굽기 전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듯이, 한 번 달라진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다. 하지만 순조로운 처음의 관계만이 최선일까? 너무 부드럽고 말랑해서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 입히거나 상처받기 좋은 상태라면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오해와 이해의 시간을 통과하며 생긴 적당한 바삭함과 까칠함이 성숙하고 새로운 시각을 선물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단기간에 열정적으로 가게를 드나드는 손님을 봐도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친밀하게 여기지 않고, 장기적으로 평온하게 응대하는 태도를 지향하게 되었다.
평소에 먹던 빵에서 전혀 다른 맛과 식감을 발견하고 싶을 때. 혹은 누가 어떤 일 때문에 마음이 변했는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러스크 한 조각을 씹으며 입안에서 우두득, 우스슥 부서지는 경쾌한 파열음을 들어보자. 러스크는 단단하고 바삭해지기 위해 뜨거운 곳에서 두 번 구워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