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in May 29. 2024

오픈런 아닌, 오픈 전 런에 대처하는 법

빵과 사람, 모두를 위해


 직업적으로 빵을 만들어도 레시피의 재료를 깜빡 빠뜨리는 날이 있다. 브레첼을 데칠 물에 베이킹소다를 넣지 않는 귀여운 수준부터, 소금빵에 소금을 넣지 않는 것같은 큼직한 사고까지. 한참이 흐른 뒤 혹은 빵을 굽고난 뒤에야 그걸 알 수 있다는 건 베이킹을 하는 내내 집중력이 필수인 까닭이기도 하다.


 출근 후 주변을 정리하고 계획대로 품목 만들기를 진행하다 초코크랜베리식빵 반죽을 하던 참이었다. 누군가 매장 정문 앞에서 열렬히 손짓하는 기분이 든다. 오픈까지 한참 남았지만 문 앞으로 다가가니, 처음 보는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나 : "(난감한 표정으로) 아직 오픈 전이라..."

손님 : "저~ 딱 수세미 하나만 사려고요. 그걸 자꾸 까먹어가지고."


 가게에서 친환경 용품으로 판매하는 천연수세미는 꾸준한 인기다. 쓰고 나면 자연으로 돌아가니 좋기도 하고, 플라스틱 수세미들과 달리 설거지할 때 기름을 머금지 않고 밀어내 써보면 좋아들 한다. 하지만 오전은 베이킹을 위해 분 단위 계획을 세워둔 상태이고 빵을 만드는 데는 초집중이 필요합니다만.

 

 전 같으면 딱 잘라 안 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 문득 서운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문을 열어드렸다. 가게에 일찍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 손님이 다시 올 확률은 낮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아무것도 안 되는데, 수세미 하나만 바로 계산해 드릴게요. 다음에는 이러지 않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온 손님은 수세미를 집어든 채 계속 이것저것 물건을 구경하시는 게 아닌가.

오 안 돼요. 지금은 쇼핑 시간이 아니에요…


"얼른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아! 알았어요."


 계산 후 자리로 돌아와 하던 반죽을 이어갔지만 결국 탈이 났다. 발효실에 아무리 두어도 부풀지 않고 그대로 버티는 빵덩이들. 식빵에 이스트 넣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곱게 성형해서 틀에 넣은 초콜릿색 반죽들을 모두 꺼내어 버리면서, 수세미 한 개와 식빵 여러 개의 가격을 비교해보지만 부질없다. 이미 지난 일이야- 마음을 다독이며 다음 반죽을 하는데 또 다른 손님이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들어가면 안 돼요?"

"네. 지금은 전혀 안 돼요."


 전혀,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간다. 망친 식빵을 다시 만드는 일이 추가되었고 기본 세팅도 멀었다. 오픈런하겠다고 하신 손님의 케이크 예약도 있다. 나는 평화롭다, 나는 평화롭다.


 영업 시작 10분 전. 남편이 전쟁영화 대사라며 가끔 던지는 장난스러운 말을 오늘도 외친다.


"Incoming~!"

= (그들이) 온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그때 한 커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행히 이번엔 옆에서 오픈 준비를 돕던 남편이 대신 그들을 맞는다.


손님 : "안에서 기다려도 될까요?"

남편 : "그럼요. 들어와서 편하게 기다리세요."


 아직 문 열기 전인데... 작게 한숨을 쉬는 내게 오빠는 그분들이 밖에서 30분 이상 앉아 기다리셨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렇구나.


 익숙해지자고 다짐하고 출근 시간을 앞당겨보기도 했지만, 오픈 전 들어오는 손님을 평온히 맞는 일은 쉽지 않다. 오픈전 런이 발생하면 결국 오픈런 손님도 편안히 맞기 어려워진다. 옷을 재단할 때 처음 1mm의 오차가 나중에 몇 cm로 벌어지는 것처럼, 몇 분씩 밀린 흐름이 몇 시간씩 뭔가에 쫓기는 분위기를 낳는다.


 제때 적확한 재료를 정확히 넣어 맛있게 나온 빵처럼 성공적인 관계에는 절묘한 타이밍이 있는 법.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공지한 영업시간이지만 그전에 들어오고 싶은 분은 늘 존재한다. 시각을 앞당겨봤자 앞당긴 시각 전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또 생긴다. 오픈시각과 각종 안내문을 붙여도 읽지 않는 이들(메뉴를 읽지 않고, 마시고 싶은 음료를 마음대로 주문하는 분도 많다)을 숱하게 겪으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가게들은 저마다의 루틴과 원칙을 따른다. 예컨대 우리는 베이킹 시간에 손님에게 집중할 여력이 없기에 최소한의 품목들을 완성한 다음 오픈한다. 순간적으로 흔들려 손님에게 일찍 문을 열어드린 건 실수에 가까웠다. 그로 인해 템포가 깨지고 식빵들을 버렸으니. 하지만 매장에 처음 왔거나, 너무 일찍 도착한 분들이 헛걸음했다며 실망하지 않고 기분 좋게 가게를 떠나려면 과연 어떻게 했어야 할까?


 탁 트인 시내의 가게들처럼 쉽게 보이는 위치가 아닌 우리 매장. 찾아온 한 분 한 분이 어떻게 오셨는지 늘 궁금하고 감사하다. 오픈 전에 오시는 분들은 물론 택배나 배달 기사님, 반려동물들, 물건들도 모두 반갑게 맞아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 사람들과 사랑하며 삶을 즐기는 것 외에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일하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생기면 속수무책일 때가 아직 많다.


 너무 일찍 와버린 손님들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잘못 알았거나, 스케줄이 변경되었거나… 오픈 전에 오신 분께 재방문시 할인 쿠폰 같은 깜찍한 선물이라도 드려볼까? 아니면 무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시원한 음료 한 병이라도. 사람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까지 돌보는 빵을 굽고 싶기에, 빵과 사람 모두를 위한 따뜻한 거절을 배우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