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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명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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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12. 2024

순삭의 시대


 1분 순삭, 하루 순삭.

 게임이나 맛있는 음식 등에 쓰이던 표현이 시간으로 확장된 지 오래다. 특히 요즘은 시간을 '순삭'한다는 말이 SNS와 온라인 쇼핑에서 부쩍 자주 보인다. 시뮬레이션 같은 세상의 강력한 망상 중 하나인 시간마저 물질처럼 물 쓰듯 소비하고픈 욕망일까? 시간은 금이라는 말처럼 두 명사는 닮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추상적인 것에 값을 매겨 나누고 소유하(려)는 재능이 있는 것같다.


 사람이 가진 것은 시간이 아닌 수명이다. 수명은 나면서부터 개인마다 다르게 주어지고, 살면서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갑자기 끊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어린 나이에 사고로, 어떤 사람은 일만 하다가 병으로 죽는가 하면 집에서 TV만 보는 히키코모리인데 건강하게 오래 살기도 한다.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은 그것을 최대한 소비하려는 사람들과 그 반대를 동시에 낳는다. 비교적 후자에 속하는 나는 매일의 '지금'을 피아노 페달을 밟듯 최대한 깊게 눌러 음미하다가 천천히 발을 떼고 싶다. 당장은 엉성한 울림들이 언젠가 하나의 개성 있는 연주로 완성될 때까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시간 - 즉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내면으로 단단히 뿌리내리고 싶다. 쉴 때는 완전한 이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른 때는 지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나로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한 번에 하나씩' 몰입하며 살기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있었나 싶게 쏟아지는 정보와 변동이 많은 세상이긴 하다. 원하는 때 원하는 것에 확실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연인과 데이트를 하면서 시계를 보지 않듯이, 시간이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실재하지 않아도 우리를 옭아매는 다양한 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명상도 그 방법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물론 명상의 본질적 목적은 조금 더 높은 차원에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나를 구겨 넣는 대신 평생을 하루처럼 살거나 하루를 평생으로 여김이 자유롭다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인식의 땅에 발디딜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삶이 끝나지 않는 꿈을 꾸었다. 지금의 삶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한 얼굴이었다. 무한한 삶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영영 끝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두려웠다. (언제 그렇게 살아 봤어야 말이지...)


 육체의 쓰임이 끝나면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변화를 맞을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든, 환생을 하든, 리셋되어 처음부터 시작하든.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앞으로 한 발 내딛는 용기는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서로 무척 아꼈지만 먼저 유명을 달리해서 나를 마중 나올 이, 혹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믿고 순리에 조화되었던 사랑 - 연인과의 사랑이든, 사물과의 사랑이든, 신과의 사랑이든 - 의 행복한 기억은 아닐까? 단단한 갑옷을 벗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위해 자기의 결정으로 나아간 경험이 많을수록 유리할 것 같다.


 사회가 한계 지우고, 스스로 정의해 온 내가 아닌 우주의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나를 여전히 알고 싶다. 작은 쾌락과 재미가 때때로 시원한 그늘이 되어줄 수 있지만, 그곳에 계속 앉아 수명을 '순삭'할 마음은 없다. 요가의 사바사나 shavasana 자세 이후 옆으로 몸을 돌려 잠시 휴식을 취하듯, 적당히 쉬었으면 자신의 속도에 맞게 일어나기. 가장 원하는 목표에 비추어 불필요한 순삭은 순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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