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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명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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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05. 2024

직관을 감지하기


 지난 휴일에는 계획한 3시간 명상을 완수하지 못했다. 마음이 무거웠는지 다음날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출근하면서 매장에 도착할 때까지 보통 그날 만들 품목과 시간 계획을 쉼 없이 짜는데, 그날은 대충 써놓고 잠시 시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매장 도착. 오븐 위에 말려둔 집기들을 정리하고 미지근한 물에 쌀을 불려둔다(쌀빵의 재료). 구운 마카다미아를 몇 알 집어먹으며 포레누아를 만들 제누아즈(케이크 시트)부터 굽는다. 그다음 한동안 굽지 않았던 단호박피칸스트로이젤을 만들기 위해 6구짜리 머핀틀을 꺼냈다.


 이때부터 뭔가 좀 이상했다. 사람들이 생소하게 여기는 품목이라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3-4개만 구워야지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6개를 굽고 있다. 이상하게 많이 구웠네 하며 베이글 반죽을 시작. 국산콩 두부와 쌀이 주재료다. 계량하다 보니 두부가 애매하게 남는데 소비기한도 거의 다 됐다. 어쩌지?


'그냥 다 쓰자!‘


 반죽하고 보니 평소의 1.5배쯤 되는 양이다. 이상하네. 오늘 컨디션 별로인데 왜 베이킹을 하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 같지.


 불려놓은 쌀로 우리쌀완두피스타치오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또한 어쩌다 보니 평소의 1.8배쯤 구웠다. 좀 더 구워도 괜찮을거란 은은한 예감이 자꾸만 빵틀을 더 꺼내게 했다. 비슷한 행동을 몇 번씩 반복한 결과, 전체적으로 평소의 160% -170% 정도 되는 양의 빵들이 나왔다.


오전 수영을 마치고 매장에 도착한 남편이 매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뭐, 예약 있어?"


"아니. 이상하게 누가 자꾸 많이 만드네. 난 아냐. "


그저 직관에 따라 준비해 본 많은 빵이었지만 왠지 걱정이 되지 않는다.


 11시 30분. 오픈과 함께 VIP손님이 나타났다. 그가 온 적이 없는 요일이지만 오늘 오시면 좋겠다고 텔레파시를 보내긴 했는데. 우연일까? 케이크는 한 판 전체를 사겠다 하시고 그 외에도 평소만큼 다양한 빵을 골랐다. 그가 떠난 후 빵은 평소 수준을 살짝 웃돌 정도로 남아 마감할 때까지 적당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여유가 있어서일까. 쿠키를 드시다가 리뷰를 쓰고 싶다며 영수증을 달라는 손님이 계셔서 편한 마음으로 서비스를 드렸다. 당뇨가 있는데 달지 않은 쿠키가 너무 만족스러우시다고 했다. 혹시 서운하실까 봐 바로 옆 테이블의 손님께도 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옆 테이블 손님까지 리뷰를 작성하는 작은 마법이 일어났다(써주신걸 나중에 알게 됐다). 이후로도 배달, 케이크예약 등의 주문이 꾸준히 들어왔다.


 주문을 받고 요리하는 식당들과 달리 베이커리는 대부분 빵을 미리 만들어서 진열해 놓는다. 빠르게 만들 수 없는 품목이 많기 때문에. 그러면 빵이 모자라는 날도 있고 남는 날도 있는데 짐작하기는 어렵다. 인생이 매 순간 예측불가이듯 장사도 마찬가지.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날이 좋으면 날이 좋아서-까지 갈 것도 없다. 순간적인 마음 상태에 따라 장사의 흐름은 휙휙 바뀌기도 하니까. 다만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빵을 굽고, 웃으며 사람들을 맞을 수 있다면 베스트!


 넉넉하면 손님이 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좋고, 부족하면 판매 부담이 줄어서 좋다. 하지만 너무 적게 만든 날은 빵이 팔릴 때마다 다음 손님이 고를 게 없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좋지 않은 아이러니. 그때의 불편한 느낌과 마음의 반응 역시 직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양심에 찔리는 행동을 했을 때처럼,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나의 내면 혹은 나의 뒤에 서 있는 의식이 나를 도우려는 간절한 외침. 보이지 않는 메아리처럼 온몸에 울려 퍼지지만 일상 속의 다양한 소음 속에서 그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지속적인 명상, 침묵, 자제력 있고 담박한 생활 등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충분한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으로 판단하고 세운 망상적 계획을 따를 때, 어딘지 불편하고 불안하다면 그 순간 직관이 말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지 않을까.


 재고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 계산으로 빵이 너무 적게 남은 것과,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었음에도 잘 팔려서 적게 남는 것은 같지 않다. 후자처럼 자연스러운 결과라면 마음이 아주 평온할 테니까.


여느 때보다 계산없이 구웠던 빵. 상상했던 손님의 기분 좋은 방문. 진심으로 가득한 자발적 리뷰. 여유롭고 순조로운 매장 운영까지.

언제 피곤했냐는 듯 모든 면에서 기분이 맑고 상쾌한 하루였다.


자,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그만 쉬라는 직관을 따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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