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 도움이 되는 책 (3)

by Yujin

침묵의 큰 스승, 마하리시의 가르침 <있는 그대로>

/ 데이비드 갓맨 편집, 구승준 옭김



- 인생에서 꿈꾸는 상태는 짧고, 깨어 있는 상태는 길다. 이 사실 외에는, 꿈꾸는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두 상태 모두 마음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 참된 실체이며, 그 자신 외에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의식이 바로 '나'이며, 그것만이 가슴이다. 행위에서 벗어난 의식으로만 참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나'의 자리에 머무는 의식만이 티 없는 깨달음의 빛, 그 자체다.


-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라. 세상일은 세상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라. '나'를 바라보라. 당신이 육체라면, 거친 물질적 현상계도 존재한다. 당신이 정신이라면, 모든 것이 정신일 뿐이다.


- 무지란 '나'를 모르거나 잊어버린 것이다. 햇빛이 비치는 곳에 어둠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자명한 '나', 스스로 빛을 발하는 '나' 앞에서 무지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나'에 대해 알게 되면 어둠도 없고, 무지도 없고, 불행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 '나'를 안다는 것은 '나'가 된다는 뜻이며, '나'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자기탐구 수행이 고차원적인 단계에 이르면, 노력을 하면 할수록 존재를 체험하는 데 방해가 되며 오히려 노력을 그쳐야 존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행위를 한 결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존재함으로써 발견되기 때문이다.


- '나'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앎 또는 깨달음(jnana)이다.


- 고통이 존재하는 까닭은 지각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지각할 대상이 없으면, 그에 따른 생각도 없으며, 고통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 신에게 헌신하기로 한 이후에는, 무엇에 대해서든 좋고 싫음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는 완전히 소멸하고, 신의 의지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에고가 완전히 죽으면 깨달음과 같은 상태가 된다.


- 각자에게 가장 쉬워 보이고, 가장 마음에 끌리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이다. 모든 길은 똑같이 좋다. 어느 길이든 에고가 '나' 속으로 녹아들도록 이끈다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저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다. 헌신의 길을 가는 수행자가 '순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기탐구의 길을 가는 구도자는 '깨달음(jnana)'이라고 부른다.


- 관습에 따라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되,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그 느낌이 속박이다.


- 사랑의 정점에 도달해야만 해탈을 얻는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정수이다.


- 헌신이 무르익는 단계에 이르면, 그 개체의 영혼을 지켜본 자이기도 하고 그 영혼 자신이기도 한 신이 나타난다. 신은 그의 세 가지 본질적 속성인 '존재-의식-지복'의 도움으로 우아한 외모와 이름으로 가장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처음에 인간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러다가 물질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 자체를 위해 기도하는 때가 온다. 그러면 신은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에게 필요한 존재로 나타난다. 신은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자신에게로 이끈다.


- 당신은 결코 육체가 아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으며, 세상이 '내' 안에서 움직인다.


- 무지가 있는 한 스승이 필요하다. 무지는 '나'에 스스로 한계를 두었기에 생기는 것이다.


- 스리 라마나는 다른 수행법을 통해서는 결국 자기탐구의 출발점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라고 자주 강조했다.


- 마음을 늘 '나'에 붙잡아두는 것이 자기탐구다. 반면에 명상은 자신을 '브라만Braham(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중략) 자신을 존재-의식-지복으로서 빛을 발하는 지고한 실체라고 마음으로 상상하는 것이 명상이다. 이와는 달리, 마음을 참나에 붙들어 매어 실체가 아닌 '망상의 씨앗'을 말려 죽이는 것이 자기탐구다.

누구든 어떤 심상으로 '나'를 명상하면, 그 심상 안에서만 '나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어떠한 심상도 없이 침묵에 머무르는 평화로운 사람들은, 완전무결하고도 고귀한 하나 됨의 상태, 형상없는 '나'의 상태에 이른다.


- 스승은 늘 당신 곁에, 당신 안에 있으며, 당신 자신이 스승이다.


-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일을 그만두려고 노력하지도 말라. 그런 노력이 속박이다. 일어나게 되는 일은 일어날 것이다.


- 당신은 거의 가만히 있었고, 이런저런 교통수단들이 줄곧 움직여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실제로는 교통수단들이 움직였지만 자신이 움직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하는 온갖 행위들도 당신 스스로가 했다고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행위는 당신이 한 것이 아니다. 그 행위는 신이 한 것이다.


- 만약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나'의 바깥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길은, 외부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일체가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다.


- 스리 라마나는 쿤달리니 요가가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해야 할 필요성도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의 헌신자들에게도 절대로 권하지 않았다. 그도 쿤달리니라는 힘과 차크라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쿤달리니가 정수리의 사하스라라까지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스리 라마나는 최종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쿤달리니 에너지가 사하스라라를 통과한 후, 그가 '암리타나디amritanadi'라고 부른 특정한 '영적 신경'을 타고 내려가서, 가슴 오른쪽에 있는 가슴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자기탐구를 하면 쿤달리니가 저절로 '가슴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따로 요가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호흡의 근원은 마음의 근원과 동일하다. 따라서 둘 중에 하나를 다스리면, 다른 하나도 저절로 다스릴 수 있다.


- 좌법이란 굳건하게 앉아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자신의 진면목 외에 어디에서 어떻게 더 이상 굳건히 머물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좌법이다.

온 우주가 그 위에서 머물러 편안하게 쉬는 자리(asana)는 참된 앎의 공간이며, 빛나는 토대인 '나'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앎에서 벗어나지 않는 '부동심'을 얻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삼매에 들기 위한 진정한 좌법이다.


- 나는 '가슴의 체위'로 앉는다. 어느 곳에서든 편안하게 앉으면 그것이 나의 체위다. 이를 두고 '편안한 자세(수카사나sukhasana)라고 한다. '가슴의 체위'는 평화로우며 행복을 준다. 이 자리에 앉는 사람에게는 다른 체위가 필요하지 않다.


- 진정으로 마음을 없애려면, 마음이라는 게 '나'와 별개가 아님을 알아차려야 한다.


- 원하지 않는 생각들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 그리고 한 가지 생각에 얼마나 오래 그리고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지가 수행의 진전을 가늠하는 척도다.


- 깨달음의 상태에서 창조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동안에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가 자기(참나)를 보게 되면 더 이상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자기(참나)를 봄으로써 창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라.


- 진정한 환생이란 에고가 죽고 정신(spirit)으로 거듭하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을 육체라고 여기는 한, 어떤 육체로 태어나든 반드시 육체를 얻어 다시 태어나게 된다.


- 마음은 어떤 차원에서 작용하든, 자신에게 맞는 육체를 창조해낸다. 즉, 물질세계에서는 물질적인 육체를 창조하며, 꿈에서는 꿈의 육체를 창조한다.


- 당신은 늘 존재한다. 그 '존재함'이 '나'다. 신의 이름은 곧 '나는 존재한다'이다. 신에 대한 모든 정의 중에서 <성경>의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that I am)'라는 말만큼 잘 표현된 것도 없다.


- <베다>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앎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무지한 사람들에게만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그대로인 신의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를 알게 되면, 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본질은 언제나 실재하는 유일한 전체로, 알아야 할 다른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 모든 봉사는 참나인 나 자신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도울 뿐이다.


- 옳고 그름에 대해 고심하는 대신에 생각을 없애라. 당신이 늘 옳음에 머물러 있다면, 그 옳음이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 그는 사람이 일생 동안 겪게 되는 모든 행위와 경험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며, 사람이 가진 유일한 자유는 행위하는 자도 경험하는 자도 없음을 깨닫는 일뿐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나'를 깨달으면 행위의 과보를 받을 사람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업의 법칙이 소용없게 된다.


- 깨달은 이가 어떤 행위를 하든, 그것은 남을 위해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있으면 하지만, 그 결과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것이 어떤 행위이든 아무런 과보도 받지 않는다.


- 운명에 얽매이는 건 에고일 뿐이고 '나'가 아니며, 에고 또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 참된 순명은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조건 없는 사랑을 신에게 바치며,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는 해탈까지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탐구를 통해서든 헌신의 길을 통해서든, 에고를 완전히 소멸해야 운명을 정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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