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한 배에 타기
남자친구의 푸드트럭을 다시 본 건 봄날의 온기가 가득한 여의도 공원에서였다. 트럭 뒤편의 작은 스툴을 밟고 힘차게 올라선 공간은 성인 2~3명이 앉거나 서있을 만한 크기. 마치 작은 다락방에 초대받은 듯 했다. 벽에 원목을 두른 내부에는 에스프레소 머신, 커피 그라인더, 냉장고와 냉동고, 각종 수납장과 모니터 등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빈 공간에 소품들을 하나하나 직접 만들고 채운 정성이 느껴졌다.
"커피 돼요?"
트럭의 옆면을 접어올려 하얀 <Grab&Go>라는 글씨가 보이면,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주로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인근 직장인들이었다. 대중적이고 산미가 적은 스*벅스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린 커피는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오빠는 손님들에게 자주 서비스 음료를 드리는 맘씨 좋은 사장이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지내기 시작하고부터는 함께 여의도로 출근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는 행운이었다. 두 사람을 위한 이동식 전용 카페라고 생각하니 낭만적이었다. 종류별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던 날들. 장사가 데이트의 연장선으로 여겨질만큼 매일이 활기찼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일산에 열어둔 베이킹스튜디오에 들러 마들렌, 피낭시에와 같은 구움과자를 만들었다. 푸드트럭에서 판매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탁 트인 야외에서, 매장이나 플리마켓 없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푸드트럭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한 달에 몇 번씩 들어오는 촬영장의 케이터링은 선뜻 따라가기 망설여질만큼 낯설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를 찾아가 배우와 스텝들이 쉬는 시간에 맞춰 집중적으로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배우의 팬클럽이나 소속사, 작가로부터 적게는 음료 100잔부터 많게는 400~500잔과 간식을 예약받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제공하는 방식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주문 받은 음료를 만들기도 바쁜데, 각 팀에서 음료가 언제 나오는지 알려달라거나 변경을 요청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밀린 주문지를 찾아 수정하다 보면 순서는 헷갈리고 음료 제공은 계속 지체되는 악순환! 많은 스텝들을 웃으며 여유롭게 대하는 남자친구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2016년 6월부터 그와 함께 참여한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은 푸드트럭의 세계에서 겪은 가장 놀라운 경험이다. 커피나 츄러스 같은 간식부터 햄버거나 탕수육,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판매하는 음식의 종류와 트럭의 디자인이 각양각색인 푸드트럭들이 모여 불을 켜는 야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였다. 주말에 여의도로 휴식과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긴 줄은 끊길 줄을 몰랐다.
야시장이 처음이었던 나는 손님들의 줄을 정리하면서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역할을 맡고, 남자친구 및 그와 함께 일하던 형은 안에서 음료와 빙수를 만들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2500원을 받았는데 하루 매출이 15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였다. 스테이크 같은 품목으로 야시장에 참여하면 집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땀범벅으로 돌아오면 몸은 힘들었지만 통장 잔고는 늘어있었고, 혼인신고를 앞둔 우리의 희망도 커져갔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10월에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다. 푸드트럭도 중요했지만 좋아하는 베이킹 연구와 클래스를 더 미룰 수 없었고, 서울밤도깨비야시장에서 음료와 함께 판매할 디저트를 만들기 위한 공간도 필요했다.
신혼여행으로 지중해 몰타와 베네치아를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작업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추위를 대비해 바닥 전체에 전기패널을 깔고, 나무 공방에 나가 테이블과 싱크대 등을 함께 만들었다. 푸드트럭을 만든 경험이 있는 남편 덕분에 작업실은 생각보다 금방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