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 듯 예고 없이
전날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세계적인 프랑스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 Le Cordon bleu 숙명 아카데미에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도착해 무거운 도구 가방을 락커룸에 내려놓았다. 흰색 유니폼 재킷과 바지, 조리화를 착용하고 제대로 입었는지 여러 번 살폈다. 시식 도구와 명찰을 가지고 7층으로 올라가니 모두들 살롱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어색한 침묵 속에 시계가 오전 8시 45분을 가리키자, 시연실 문이 열린다. 오리엔테이션 때 본 스위스 출신의 셰프가 조리대 앞에 섰다. 눈빛만으로도 세월과 경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에 잠이 확 달아났다.
르 꼬르동 블루의 요리 과정에는 정통 프랑스 요리뿐만 아니라 가벼운 브런치나 애피타이저, 디저트로 소개하는 제과 및 제빵 품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요리의 기본 원리와 테크닉을 배우면서 베이킹을 보는 관점을 넓히고 싶었던 내게는 왼벽한 커리큘럼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요리 경험이 없었던 내게 수업이 쉬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게다가 첫날부터 나는 반장에 당첨(?)되고 말았다.
반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미장'-요리 전의 밑준비를 프랑스어로 '미장 플라스 Mis en place'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미장이라고 한다-이다. 팀 전체가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지만 14명 중에는 늦게 오거나 자기 자리만 세팅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꾸 들러붙는 버터를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가득 썰어놓는 일은 대부분이 하기 싫어해서 누구에게 맡길지 늘 곤란했다.
“Where is Butterman?”
이렇게 셰프가 외쳐야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와서 버터를 썬다. 모자라는 재료는 조교님께 말씀드려 빨리 가져와야 하고 부족한 도구는 다른 실습실을 돌며 찾아와야 했는데, 그러다 보면 내 자리에는 상태가 좋지 않거나 남들과 조금 다른 재료를 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재료로 요리하는 것은 행운이었다. 조교님이나 셰프가 그 재료를 보시면 내 자리에서 다시 시연을 해 주시거나 다른 활용법을 알려주시곤 했기 때문이다.
모든 실습수업은 위생과 도구 관리, 요리 과정의 정확한 숙지와 성취도, 제출 시각과 팀워크에 이르기까지 채점의 대상이다. 반장인 내게는 앞 정리와 뒷정리의 부담이 더해졌다. 시연 수업이 끝나면 여유롭게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는 동기들과 달리 나는 셰프가 손질한 재료 샘플들을 먼저 실습실에 가져다 놓고, 빈 강의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입에 털어넣었다. 필기한 내용을 보면서 낯선 용어와 3~4시간의 복잡한 요리 순서를 머릿속에 그려놓지 않으면 실습 때 곤란한 실수를 하곤 했으니까.
요리를 곧잘 하는 사람들에 비해 칼질부터 손방이었던 나는 다다다닥 다다닥 하는 누군가의 기관총 같은 칼질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렸다. 바짝 날이 선 여러 종류의 칼과 불, 사람들의 움직임에 주의하며 요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기 센 언니들을 포함해 개성 뚜렷한 동기들을 아우르며 원활한 팀워크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겹쳐 소화불량과 불면의 날들이 이어졌다. 웬만한 일에 적응력이 좋다고 자부해왔지만 스스로에 대한 편견이요 착각이었다.
'그냥,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나답게 하자.'
창의성이 있으니 발전시켜보라는 셰프의 조언에 따라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는 접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스스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예습은 항상 하고, 연습과 복습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어느 날부턴가 가장 먼저 작품을 제출하는 날도 생기고 칭찬도 조금씩 듣게 되었다. 이제 적응이 되나 싶을 때쯤 학기가 끝나버렸지만.
요리를 배우며 리더를 겸하는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지만 치열하게 배우고 기록한 날들.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요리 한 접시에 지금도 숙연해지는 건 그때 겪은 시간들 덕분이다.
겨울은 푸드트럭에게 비수기와 동면기를 뜻하는 계절이다. 12월까지는 점심에 잠시 장사를 할 수 있지만 1월부터는 추위에 떨며 손님을 기다려도 발전기의 기름값만 줄줄 새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배운 요리를 복습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날들이었다. 내가 르 꼬르동 블루를 다니는 동안 남편은 이탈리아 요리학교인 일 꾸오꼬 알마 Il Cuoco Alma를 다녔고, 우리는 서로 요리를 만들어주거니 받거니 하며 겨울을 호화롭게(?)보냈다.
2월에는 함께 런던 여행을 떠났다. 1월에 베이킹 클래스 외의 일을 하지 못해 주머니는 텅 비었지만 거기에 채울 시간은 충분했으니. 런던은 도시 중의 도시이다 보니 세계 각국의 미식이 모여 있고 내로라하는 영국 정통의 디저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영국인들이 평소에 즐겨먹는다는 '크림티'가 특히 궁금했다.
식사로도 간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크림티 Cream Tea는 홍차와 스콘, 클로티드 크림, 잼으로 구성되는 영국의 티타임 문화다. 보통 샌드위치부터 케이크와 마카롱까지 몇 층씩 단을 쌓아 나오는 호화로운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와 달리, 크림티의 매력은 퍽퍽하고 고소한 스콘을 중심으로 응축된 단출함에 있다. 크림티의 꽃인 클로티드 크림 Clotted Cream은 스푼으로 떴을 때 얇은 뿔이 생기며 쳐질 정도로 무른 것부터 잘게 부스러지도록 팍팍한 것까지 굳기가 제각각인데, 신선한 것은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 특유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우중충하고 습하게 추운 런던의 겨울 날씨. 뜨거운 홍차를 마시며 스콘에 크림과 잼을 듬뿍 발라 입에 넣으면 앤틱 마켓의 구석구석까지 돌고 남을 힘이 솟았다. 오래된 다구 茶具나 책 등을 판매하는 앤틱 마켓에서 수집가들을 만나 물건에 관한 애착 어린 이야기를 직접 듣고 구입하는 일은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이었다.
런던을 여행하며 새롭게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거의 모든 음식점에 있는 <비건>이라는 단어와 넘치는 비건 메뉴들이었다. 비건 Vegan이란 육류는 물론 어류나 난류, 유제품과 꿀 같은 동물성 식재료를 전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을 말한다. 전문적인 비건 메뉴를 갖춘 '프레타 망제 Pret A Manger'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을 런던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대부분의 음식점에 비건 옵션이 있었다.
'마일드레즈 Mildreds'라는 채식 레스토랑에서 맛본 비건 요리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강황과 코코넛 향이 동시에 느껴지는 비건 치킨의 튀김옷, 고구마와 대파의 어울림, 아보카도에 곁들여진 홍고추, 핑크빛의 새콤한 비건 마요네즈, 여러 식감을 동시에 터뜨리는 퍼지볼과 알쏭달쏭한 맛의 칵테일. 의외의 재료들이 만나 춤을 추며 뇌의 뉴런 하나하나를 깨우는 듯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으로 돌아와 봄이 되었다. 평일에 여의도에서 푸드트럭 장사를 하며 작업실에서는 베이킹 클래스를 하고, 주말은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에 참여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2018년의 야시장에는 영국에서 맛본 크림티를 메인 메뉴로 내걸었다. 준비해 간 반죽을 푸드트럭 안에서 구우면 진득하니 고소한 버터의 향이 바람을 타고 술술 퍼져나간다. 손님들은 갓 나온 따뜻한 스콘에 직접 만든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발라 야외에서 크림티를 즐겼다. 맛있어서 다시 왔다는 손님들과 SNS의 글을 보면 좋은 일을 한 듯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의 몇 배로 커진 야시장의 규모와 대폭 늘어난 참여 푸드트럭의 수, 높아진 참가비와 외부업체의 시장 진입 으로 우리의 경제 사정은 처음처럼 희망적이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비 등의 잦은 기상 이변에 따라 야시장이 취소되는 날도 자꾸만 늘었다. 야외에서 4년 이상 푸드트럭 장사를 하다 보니 체력도 떨어져서,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끙끙대며 잠드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변화가 필요했지만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야시장에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우리가 만든 티라미수를 사 갔다가 한참 후에 다시 돌아왔다.
"혹시 명함 있으면 한 장 주실래요?"
우연인 듯, 예고 없이 운명은 그렇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