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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l 19. 2023

어느 휴일의 기록 (1)

자유로운 글쓰기 연습


"탁, 탁”

 새벽 4시. 무언가 막히는 듯한 이상한 소리에 깼다. 너스가 꺽꺽거리며 사료를 토하고 있다. "으으으..." 졸린 기운에 일어날 수가 없다. ‘뭐 괜찮겠지.‘ 5분… 10분… 결국 신경이 쓰여 천천히 몸을 돌려 일으켰다. 얼마 전 다친 허리는 아직 말썽이다.


 딸깍, 불을 켠다. 세 군데나 토한 걸 닦고 다시 눕자마자 다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아휴.” 고양이들은 자주 토한다. 위액까지 몇 번씩 토하면 식욕이 없을 만도 한데, 돌아서면 바로 위장을 채우려 한다. 캣그라스를 우적우적 씹더니 꺽꺽대며 토하는 너스. 그래. 아직 넌 1년 정도밖에 세상을 살지 않았지. 그럼에도 토한 곳만 폴짝 뛰어넘는 모습이 왠지 얄밉다. 분명히 알건 다 아는데.


 다시 잠을 청해 오전 7시 30분쯤 일어났다. 오늘은 쉬는 날. 남편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가신다는 시어머니를 역까지 모셔다 드리러 나가고 나는 명상방(겸 글쓰는 방)에서 공복에 간단한 운동과 명상을 한다.


 잠시 후 남편이 돌아와 둘이 아점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켰다. 즐겨 보는 <이번생도 잘 부탁해>, <알유넥스트>를 보다 슬슬 졸려와 함께 낮잠을 자기로 한다. 한낮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다. 잠들기 직전 의식이 가물가물할 때 원하는 것들을 상상한다. 하늘하늘 날리는 반투명 커튼 아래 누워 있는 또 다른 침실. 하얀 인도풍 궁전의 발코니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자신. 어릴 때와 달리 흩어진 온 가족이 다함께 사는, 드넓은 집 앞 정원에서 뛰노는 뽀와 너스…


 잠이 들었나 싶었을 때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벌써 어머님이 돌아오고 계신다고 해서 함께 평택역으로 출발. 은행에 가야하는 아버님도 차에 올랐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보건소에 들러 새 보건증을 신청했다. 매년 하니 둘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버님이 드시고 싶다는 칡냉면을 먹으러 갔다. 육쌈냉면을 주문한 남편은 고기에서 불맛이 안 나고 시나몬향이 난다며 불만을 토한다. 나는 그저 눈앞에 음식이 주어짐에 감사. 아버님이 쏘신다니 더 감사. 식전 기도를 한다는 게 자꾸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 가족의 휴일 마지막 코스는 99% 대형마트다. 시부모님은 장본 것을 따로 계산하신다. 오늘 남편과 장을 본 목록은 :


부드러운 복숭아

레이니어체리

하트로메인

양상추

타임(허브)

콘칩

꿀꽈배기

비비고 열무김치

영진구론산바몬드 1+1 box

홈플러스 비데물티슈

홈플러스 아몬드호두율무차


집으로 돌아와 (시부모님이 거주하는) 1층에서 <범죄도시 3>를 보았다. 왜 나는 액션 영화만 보면 졸리지? 계속 싸우고 또 싸우는 모바일 게임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남편이 먹으려고 산 꿀꽈배기 한 봉지만 맛있게 먹어치웠다. 오랜만에 먹으니 생각보다 달지 않고 고소한데.


 영화가 끝나고 2층으로 올라와 반려인의 귀를 파주고, 휴일이었던 오늘을 기록해 보기로 한다. 일기는

따로 쓰고. 노트북을 펴고 앉으니 뽀와 너스가 방문을 기웃거린다. 트릿 몇 개 던져주고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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