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비스트로'를 운영하면서
차에 올라 안전띠를 맨다.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어제 남은 빵을 꺼낸다.
"아침이라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네." 빵을 먹으면서 중얼거린다.
"우유는 주문했어?" 운전하는 남편이 말한다.
"응, 어젯밤에." 내가 답한다.
핸드폰으로 하루 일정을 구체화하는 동안 익숙한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와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이 노래 좋은데? 매장에 깔아야겠다."
음악 검색 화면을 찰칵, 캡처한다.
오전 10시. 가게 문을 열어젖힌다. 한 곳에 모인 조명 버튼을 드르륵- 한 번에 누른다. 냉난방기와 공기청정기를 켠다. 겉옷을 벗고 쇼케이스 두 개의 스위치를 올린다. 인테리어 조명들도 하나씩 켠다.
필요한 과일이나 채소를 주방에서 꺼내 베이킹 부스로 간다. 오늘의 품목들을 약 2시간 동안 집중해서 만들 참이다. 분 단위로 촘촘하게 스케줄이 짜여져 갑자기 손님이 오거나 누군가 말을 걸면 품목 하나는 포기다. 함께 출근한 남편은 포스를 켜 음악을 재생시키고, 커피 머신을 핸들링한 다음 곳곳을 청소한다. 일찍 오는 손님을 응대하고 전화를 받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이르면 11시 30분, 늦으면 12시 10분쯤 첫 손님이 온다. 때 맞춰 베이커리를 진열하고 손글씨로 쓴 가격표를 놓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커피 한 잔, 디저트 한 조각의 여유와 대화를 즐기려는 직장인들로 테이블이 꽉 차는 1시 30분까지가 피크 타임. 밀크폼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라테류 주문이 많은 날은 마음이 급하다. 스콘과 홍차, 두 종류의 스프레드를 함께 준비하는 크림티도 준비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몇 년을 함께 일한 남편과 호흡이 척척 맞으니 그래도 다행.
손님들이 몰릴 때는 주방에 쟁반 놓을 자리도, 일손도 부족하지만 직원을 뽑을 생각은 나지 않는다. 커트러리의 물자국, 포크와 나이프의 위치나 머그잔 손잡이의 방향, 디저트와 음료에 장식은 빠뜨리지 않았는지 티백 트레이와 티스푼은 놓여 있는지, 쟁반은 잘 닦였는지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다.
회사원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2시쯤 점심을 먹는다. 식사를 차린 후 첫 술을 뜨는 순간 손님이나 전화가 올 확률은 희한하게도 높아진다. 퉁퉁 불고 차갑게 졸아든 면을 통째로 몇 번 버렸더니 점심에 면 요리를 꺼리게 됐다. 비싼 음식을 배달시키는 일도 마찬가지. 누가 올 때마다 밥을 먹다 일어서고, 또 한 숟갈 먹다 일어선다. 밥을 먹는 지극히 사적인 장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세워둔 가림막 속을 고개를 디밀어 구경하는 손님도 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와 홀 정리를 마치면 조금 여유로워진다. 이 시간엔 SNS 홍보를 하거나 부족한 품목을 다시 만들어 채운다. 우유값, 공과금, 주류 대금을 이체하고 각종 재료와 소모품을 주문하기도. 단체 손님이나 예약이 없다면 주 1-2회 요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포장 손님과 소규모 팀들을 혼자 감당해주는 남편에 고마워하며 스트레칭과 명상을 시작한다.
5시 30분부터는 오븐을 최고 온도로 예열한다. 6시부터 주문을 받는 피자를 굽기 위해서인데, 아마존에서 직구한 두꺼운 스톤이 오븐의 설정 가능 한계보다 더 높은 온도를 만들어준다. 예열이 끝나면 저녁 먹기에 도전! 무사히 식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물을 올리는 순간 누군가 들어와 천천히 매장을 구경한다. 메뉴를 보며 고민 끝에 파스타를 주문한다. 뒤따라 다른 팀이 들어와 피자, 크림티, 하우스 와인, 쿠키를 주문한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야식이나 먹어야 할까?
저녁은 북적일 때도 호젓할 때도 있다. 급격히 추워지거나 해가 일찍 떨어지면 조용한 동네의 골목 안쪽은 괴괴해진다. 사람이 많을 땐 정신없이 일하며 10시를 넘기지만 한가할 땐 새 와인이나 맥주를 맛보는 편이다. 음미하고 연필로 끄적이며 리스트에 넣을까, 말까를 가늠해본다. 신메뉴 연구나, 장시간 굳혀야 할 무스케이크도 이때 만든다.
밤 10시 이후에는 남은 베이커리를 정리하고 다음날 만들 품목을 구상한다. 발효가 필요한 빵 반죽이나 두유 요거트는 미리 만들어야 다음날 사용할 수 있다. 전체 식재료를 확인하고 급하게 필요한 항목은 새벽 배송 업체에 주문한다. 오픈 초기에는 영업을 일찍 마치고 장을 보기도 했다.
술을 마시는 손님이 있으면 11시, 그전에 홀이 비워지면 그때 영업 마감. 간혹 11시가 넘어도 술에 겨워 일어나지 않거나 화장실을 쓰자며 돌아와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쇼케이스 스위치를 모두 내리고 외투를 걸친다. 냉난방기와 공기 청정기, 조명들을 순서대로 끈다. 문단속을 하고 차에 탄다. 운이 좋으면 라디오에서 배성재 아나운서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따금 킬킬거리며 남은 하루와 내일의 스케줄을 짠다. 집에 가서 씻고 메뉴판 고치고, 미뤄온 배너도 만들어야지...
자리에 편히 앉아 식사나 디저트, 커피 혹은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공간. 비스트로나 브런치 카페를 밖에서 바라보면 직원들은 손님 주위로 아웃포커싱 된 배경처럼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매장 오픈 후 1년 동안 설날과 추석 당일을 빼고 하루도 쉴 수 없었다. 언제 손님이 오고 언제는 오지 않는지 예측할 만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었다.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해야 좋을지, 베이커리는 무엇을 얼마나 굽고 어디에 어떻게 진열할지, 토마토소스와 피자 도우는 한 번에 얼마나 만들지, 커피 원두는 평일과 연휴에 몇 Kg씩 주문하고 어떻게 보관해야 신선한지, 밸류 와인*은 종류별로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모든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 부딪치는 수밖에. 계절마다 제철 메뉴를 개발하며 구입하고 버리는 식재료의 양만 얼마였을까?
보통 12병 단위로 발주가 가능한 와인은 몇 종류만 들여도 100만 원이 훌쩍 넘고, 박스 단위로 구매하는 크래프트 맥주 또한 일반 맥주보다 상미기한**이 짧아 종류를 늘릴수록 재고의 부담이 크다. 생맥주는 최대 일주일 안에 12.5L짜리 케그를 갈아야 했는데, 두세 잔 나간 후 그대로인 경우도 있었다. 매장에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주의였으니 그런 일들은 그저 손해라기보다는 값진 투자였다.
* 밸류 와인(Value Wine): 가격 대비 부가가치가 높은 와인.
** 상미기한(품질유지기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한을 뜻하는 말로, 유통기한보다 짧다.
식기와 조리 도구, 커피용품, 와인용품, 정수 필터, 휴지 등의 위생용품, 세제류, 전구, 테이크아웃 컵과 포장용품 등 티 나지 않게 구입하는 소모품도 많다. 세무사 기장료와 세스코는 매달 빠져나가는 게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높은 임차료와 그 절반이 넘는 공과금, 갑자기 날아든 과거 푸드트럭에 대한 세금 폭탄, 처음 내는 매장 세금까지... 지출 목록은 끊임없이 추가되었다.
주 7일, 무임금 노동에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까닭은 여러가지다.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들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자아효능감, 요식업 매장을 처음부터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 내년에는 나아질 거란 기대 등등. 빵이나 케이크를 주식으로 하며 더 건강한 먹거리를 찾아온 사람들, 혼자서 디저트나 와인, 식사를 눈치 보지 않고 즐기고 싶은 사람들, 나와 비슷한 면을 가지고 일부러 찾아온 고마운 분들을 위해서라면 열정은 화수분처럼 샘솟았다.
하지만 매장 일은 열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능력과 운을 요구했다. 배려심을 타고난 남편과 달리 모든 손님을 상냥하게 대하는 일이 내겐 몹시 힘들었다. 몇몇 방문자의 사람을 낮잡는 실없는 농담과 놀라운 무례함, 고자세의 요구는 매일 기록을 경신하면서 갱신되었다. 인지도가 생기자 그런 손님들도 우리 가게를 조금씩 덜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 무렵, 디저트 가게가 없던 우리 골목에 커다란 3층짜리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섰다.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유명해진 브랜드의 2호점. 새로 생긴 크고 화려한 그 가게가 궁금할 손님들을 잃으며 한동한 타격을 입었다. 그때까지 40~50% 정도의 비율이었던 비건(완전채식) 베이커리를 80% 이상으로 늘리고 크림티를 홍보하며 작지만 차별화된 가게를 만드는 데 전력을 쏟았다.
안쓰러워하는 이웃과 손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매출이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오픈한 지 1년을 갓 넘긴 때였다. 2020년 1월.
그 때,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첫 확진자가 국내에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