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유를 위한 글쓰기
비건 베이커리를 오픈하고 맞는 세 번째 F/W 시즌. 올해 연말은 여느 해와 다르게 느껴진다. 결승선을 앞둔 기쁨 대신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듯한 긴장감. 개인 빵집의 사장은 맛있는 빵을 구워야 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유능한 경영자여야 한다는 걸 최근에야 잘 알게 돼서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확률이 높은 방법을 하나하나 대입하면서 해결해야겠지? 지난달부터 마케팅과 자기 계발서만 10~15권쯤 읽었다. 스마트플레이스 콘텐츠를 수정하고, 스마트스토어와 인스타그램 활용법도 다시 공부하고, 하기 싫었던 간단한 식사 메뉴도 개발하고, 영업 요일과 시간도 바꾸고 새 조리기구와 집기도 들였다. 늘어나는 매출을 보며 '노력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 퇴근하면 이상했다. 집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 피곤해서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년 넘게 수련 중인 명상을 하면서 졸고, 새벽에 눈뜨면 다시 누웠다가 일어나지 못해 지각을 하기도 했다. 왜지, 가게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춤이라도 춰야 할 텐데 왜 힘이 나지 않을까.
빵 굽는 시간이 늘어나 체력 소모가 커진 반면 앉아서 사색하고 글 쓰는 시간은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에너지를 쓴 만큼 채워야 하는데 육체적 손실은 잠으로 메꾼다 쳐도 정신은 어쩌나. 하루에 최소 1시간의 글 쓰는 시간은 확보하고 싶어서 먼저 요즘 하루를 어떻게 쓰는지 파악하기로 했다.
나는 매주 평균...
47시간 잔다(휴일 낮잠 포함)
26시간 베이킹을 한다.
14시간 명상한다.
11시간 매장에서 손님을 응대한다(빵을 담거나 포장, 계산 등 전적으로 응대하는 시간).
10시간 OTT를 시청한다. 특히 휴일에 몰아서 6-7시간씩 달림.
9시간 밥을 먹는다.
8시간 스마트스토어, 인스타그램, 네이버플레이스, 배달앱, 카카오톡채널을 관리한다.
7시간 씻고 옷 갈아입고 머리를 말린다.
7시간 책을 읽거나 명상 공부를 한다.
5시간 출퇴근하며 베이킹 계획을 짜고 음악을 듣는다.
4시간 고양이를 돌본다(청소, 밥, 간식 및 물 주기, 놀기).
4시간 장을 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병원에 가는 등 가족과 함께 움직인다.
3시간 산책 또는 스트레칭을 한다.
3시간 매장 재료와 생필품을 주문한다.
3시간 빵을 연구한다.
2시간 청소 및 설거지를 한다.
1시간 계좌와 공과금 등을 관리한다.
1시간 SNS 또는 광고를 본다.
1시간 화장실에 간다.
1시간 일기를 쓴다.
1시간 수다나 웹서핑 등 기타.
7일 x 24시간 = 168시간을 분해하고 밀가루 체치듯이 글 쓸 시간을 추려냈다.(밑줄 친 부분 위주로)
1. 잠: 2시간은 줄여도 된다. 무조건 적게 자는 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 깊게 자고 매일 명상하기 때문에 6시간이면 충분하다. 알람을 듣고도 뒤척이는 시간만 주 2시간은 넘을 테니, 눈뜨는 이유가 할 일 때문이 아닌 놀라움으로 가득한 삶을 누리고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걸 기억하자.
2. 베이킹: 다른 일에 신경 쓰다 산만해지는 일과 실수만 줄여도 1시간은 절약된다. 오전에는 휴대폰 소리를 끄고 무리한 계획을 짜지 말자. 30분 이상 남겨두고 스케줄을 짜야 당황하지 않는다.
3. 휴일 OTT 시청: 2시간만 줄이자. 이어서 여러 편 보면 흥미도 줄고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니니까.
4. 밥: 주 1회 배달식을 제외하고 매장에서의 모든 끼니를 남편과 직접 해 먹는데, 주 2회 매식하면 먹고 정리하는 1시간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대신 과자와 가공식품을 활용한 요리를 줄이고 생채소를 더 먹자.
5. 옷: 입지 않는 옷들을 옷장에 넣었다. 매일 입는 조리복과 잠옷, 외투만 1단 행거에 걸었으니 아침저녁 옷을 뒤지는 1시간은 줄일 수 있다.
탈탈! 털어 7시간을 벌었다. 그런데 시간을 아낀 만큼 번 셈이 되는 게 문득 이상하다. 돈은 아끼는 게 곧 버는 것이라고 여긴 적이 없어서일까? 시간은 유한하고 돈은 무한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왔나보다. 과학으로 보면 오히려 시간만큼 무한에 가까우며 상대적인 개념이 없는데도.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Carlo Rovelli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자신의 책에서 모든 것은 시간에 관한 우리의 지각 오류가 만든 산물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지역과 상황, 관찰 주체에 따라 다르게 흐르거나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 제한된 인식을 변화시켜 '인간의 시간'이 아닌 '우주의 시간'을 쓰고자 한다면 활용 가능한 시간이 지금보다 몇 배는 증가할 것이다. 결국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이 그의 자아실현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 능력을 키우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훈련은 글쓰기가 아닐까.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글'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상의 '말'과 다르다. 글은 비논리와 모순을 포함한 자신의 현재 생각에 대한 뚜렷한 증거다. 독자들처럼 다각도에서 여러 번 읽고 고치다 보면, 자신도 몰랐던 고정관념과 습관을 벗어나 반대편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음미하고 곱씹으면 평소와 180도 다르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화나 전시처럼.
깨어나는 꽃잎처럼 꼬깃한 인식 뭉치들을 하나씩 펼치기 위해 나는 써야겠다. 시간을 자유롭게 멈출 수, 뒤로 돌릴 수, 빨리 흐르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마법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으므로. 사장이 매장의 경영자라면 나는, 내 안에서 변화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경영자다.
* 사진: 2023.10 공주 경비행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