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말 몽골 제국의 영토다. 말도 안 되는 사이즈.
이 터무니없는 제국의 서쪽 영토인 킵차크 칸국(Golden Horde). 그 땅의 대장 자니벡.
크림반도 해안에 위치한 도시 카파.
오늘날 지명은 우크라이나 공화국 페오도시야(Feodosiya). 아래 지도에서 검은 점이 찍힌 부분.
당시 카파는 제노바 상인들이 진출해 상관(商館 창고 겸 요새)을 설치한, 일종의 자유무역 도시였다.
거주민의 상당수는 제노바와 베니스 상인 등 이탈리아인들이었고, 전 세계 상인들이 들락거렸다.
1343년 어느 날 이탈리아 상인들과 자니벡 사이에 시비가 벌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어쨌든, 사태가 커지자 이탈리아 상인들은 카파로 쏙 들어가 몸을 숨긴다.
바짝 열이 받은 자니벡, 군대를 동원해 카파를 온통 에워싸고 항복을 요구한다.
임진왜란 때 부산진과 동래성은 하루 만에 함락된다. 카파는 3년을 버텼다. 바다 쪽 길이 열려 있어 얼마든지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
카파 사람들은 밤낮으로 기도했다.
제발, 자니벡이 물러나기를.
1346년 기어코 카파 사람들의 기도가 이루어진다. 1330년대 중국에서 시작된 페스트가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자니벡의 군대를 강타한 것.
한둘씩 죽어 가던 부하들의 시체가 어느덧 산을 이루자, 자니벡은 카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갈 수는 없다. 3년간 들인 노력이 있는데.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투석기(投石器)에 넣어 카파 성벽 안으로 마구 투척했다. 말하자면 인류 최초의 생화학 공격.
그날 몇 시간 동안, 카파에는 몽골군의 시체와 잘린 신체 조각들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사람들은 질겁했고 쥐들은 만찬을 벌였다.
얼마 후 카파 주민들은 거의 전멸에 이르고 만다.
신은 카파 주민들의 기도를 들어주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 카파 스토리는 사료가 거의 없고 대부분 전승이라,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347년 카파에서 출발한 제노바 상선 12척이 이탈리아 시실리섬 메시나항에 도착한다.
페스트균 역시 같이 도착했다.
며칠 후부터 시실리 주민들이 열병으로 쓰러지기 시작한다.
제노바와 베니스에도 페스트가 퍼졌다.
그 다음은 프랑스 마르세유를 거쳐 아비뇽.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청은 로마가 아니라 아비뇽에 있었다. 교황보다 프랑스 왕이 더 셌기 때문에 벌어진 일. 교과서에선 이를 ‘아비뇽 유수(幽囚 captivity)’라 부른다.
힘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교황은 교황.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 당시에는 모든 길이 아비뇽으로 통했다.
모든 길이 아비뇽으로 통한다는 말은 모든 길이 아비뇽에서 출발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비뇽에 전파된 페스트는 이제 전 유럽을 향해 진격하게 된다.
당시를 살았던 역사학자의 기록이다.
“프랑스 전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떼죽음을 당했다. 젊은이의 희생이 더 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염병으로 죽었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주검을 매장하는 것뿐이었다.”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 인구의 30%에서 절반가량이 페스트로 사망했다. 학자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숫자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몸에는 페스트에 대한 항체가 전혀 없었기에 피해가 컸다.
이후 페스트는 만성적인 상태로 숨을 죽이고 있다가, 4~5년에 한 번씩 출몰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럽인들의 몸에 페스트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가 형성된 것은 140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페스트의 충격은 컸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 공포스러웠다.
그저 ‘떼죽음(Great Mortality)’이나 ‘대역병(Great Pestilence)’이라고 부를 수밖에. 살이 검게 썩는다고 ‘흑사병(Black Death)’이라 부르기도.
‘페스트’는 당시 중병, 전염병, 재앙을 총칭해 부르던 말이었다.
말할 수 없는 공포는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게 만들었다.
‘파리 하늘에서 별 하나가 불을 뿜으며 떨어지다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장면이 관찰되었다. 페스트를 알리는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가족 관계도 무너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자선과 자비는 사라지고 희망 역시 사라졌다.
도처에 널려 있는 죽음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음울한 분위기가 문학과 예술을 지배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선, 아니 행복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공포는 극복되어야 한다.
어떻게?
공포를 직시(直視)하는 게 사태 해결의 첫걸음.
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곁눈질로 공포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가장 만만한 집단을 골라 그들에게 화를 풀었다.
이런 걸 ‘희생양’이라 부른다.
종교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페스트뿐만 아니라 기근, 실직, 장애 등으로 일상의 삶이 흔들린다고 하자.
신을 원망해 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책임을 물었으니 이제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긴다.
이렇게 엉뚱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이 바로 희생양이다.
1640년 중세 유럽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은 눈엣가시였다.
어느덧 ‘기독교 국가’가 된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자들의 후손으로 경멸받았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등 ‘희한한’ 음식 규정도 눈 흘김의 대상이었다.
전혀 상종하지 못할 인간으로 여기던 참에 제대로 기회가 온 것.
악마의 수족이 되어 우물에 독을 풀어 페스트를 발생시켰다는 혐의가 유대인에게 씌워졌다.
이웃 마을에 페스트가 퍼지면 자기 마을에 미처 페스트가 번지기도 전에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
희생양.
한 번 만들어 보니 효과가 있는 듯도 했다.
적어도 페스트가 사람들 간의 불화는 어느 정도 줄여 주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여자, 노인, 빈민 등으로 희생양의 범위를 늘려 갔다.
그냥 죽이면, 양심에 찔린다.
그러면?
희생양들을 마녀와 연결시키는 창의력을 발휘한다.
_ 인간이 악마를 죽일 수는 없어.
_ 쉽게 볼 수도 없는 존재를 어떻게 죽이겠어?
_ 볼 수 있다고 해도 솔직히 우리 힘으로는...
_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_ 흠.
_ 아마, 악마는 인간 세계에 부하가 있을 거야.
_ 아니, 있어야 해.
_ 그게 마녀라고 믿고 싶어.
_ 아니 확실할 거야.
_ 마녀는 악마의 졸개니까 평범하지는 않겠지?
_ 빗자루를 타고 다니거나 동물로 변할 수 있을 거야.
_ 이런 마녀를 제거하면 열리고 있는 지옥문이 다시 닫히겠지.
_ 그런데, 누가 마녀일까?
_ 아마...
_ 여자, 노인, 빈민 등이 마녀가 될 확률이 높을 거야.
_ 이들은 쉽게 악마의 유혹에 빠지니까.
참으로 한심한 논리지만, 특별히 중세 유럽인들이 멍청하거나 사악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쉽게 구별되는 집단과 소수파. 이들에게 박해를, 하다못해 차별이라도 부과하지 않는 사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진리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아시아계 이주민, 다문화가정, 장애인을 차별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를 방증해 주니까.
어차피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기에 마녀가 꼭 여자일 필요는 없었다.
마‘녀’로 몰려 희생된 사람의 30% 정도가 남자인 이유다.
모스크바처럼 희생된 마녀의 70%가 남자인 경우도 있었다.
마녀사냥과 희생양은 날씨, 환경, 경제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자원이 부족할 때 일부 사람을 희생시켜, 나머지 사람이 넉넉히 먹고 일함으로써, 충분한 소득을 올려 생존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에 부합한다.
마녀사냥이 횡행(橫行)했던 시기는 대체로 지구 기온이 낮아져 흉작이 이어지고 어획량이 급감한 시대였다.
1960년대 인도. 강우량이 평균 수준인 해에는 남녀 아동의 사망률이 비슷했으나 가뭄이 극심한 해에는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여아 사망률이 남아 사망률보다 높았다.
탄자니아에서는 가뭄이 발생할 때마다 마녀사냥이 일어났다.
자원이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소득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앉아서 식량만 축내는 사람을 손쉽게 제거하는 방법이 바로 마녀사냥이기 때문에.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사는 늙은 여자를 마녀로 지목하고, 결국 그 여성은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살해당한다.
10위 - ‘반지의 제왕’ 골룸
7위 - ‘레이더스’ 인디아나 존스
5위 - ‘007 시리즈 1편’ 제임스 본드
3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미국 유명 영화 잡지가 선정한,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캐릭터 톱 10이다.
1위는 ‘대부(The Godfather)’에서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마피아 두목 ‘돈 비토 콜레오네’.
그가 내뱉은 대사다.
“나는 미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만약 내 아들한테 불행한 사고가 닥치면, 예를 들어 내 아들이 벼락을 맞으면 나는 그것을 여기 계신 분들의 탓으로 돌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