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센티 인문학 78p
만약 다른 나라 비행기가 영공 바깥 저 멀리에서 날아다닌다면?
No problem. 그건 자기들 마음이다.
만약 다른 나라 비행기가 영공을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영공 근처에서 알짱거린다면?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자기들 마음이다. 영공 바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므로 모든 비행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영공 근처에서 비행기가, 특히 전투기가 알짱거리는 것은 해당(該當) 국가로서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순식간에 영공을 침범해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방공식별구역(防空識別區域 ADIZ)이 탄생했다.
영공 바깥에 일정한 범위를 정해, 이곳에 들어오는 외국 비행기들은 해당 국가에 신고하는 시스템.
만약 방공식별구역에 들어온 비행기가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해당 국가는 그 비행기에 요청할 수 있다.
“Please, 좀 꺼져 줄래?”
1941년 12월 7일 미국은 일본 전투기들이 하와이 진주만으로 다가오는 것을 포착한다. 하지만 자국 전투기로 오인하고 대응하지 않았다가 처절한 피해를 입었다.
항공구역이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은 1950년, 자국 영토 동서남북에 세계 최초로 방공식별구역을 정한다.
이어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22일 미국 태평양 사령부는 우리를 대신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설정했다. 이어도는 쏙 빼 버리고.
그러자 찬스에 강한 일본, 이어도 상공을 날름 자기네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켜 버린다. 1969년의 일이다.
그날 이후 이어도 상공을 비행하는 우리 전투기와 여객기들은 비행 정보를 일본 자위대에 알리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독도는 물론 이어도까지 우리 것이라 철석(鐵石)같이 믿고 있던 한국인들의 믿음은, 헛된 믿음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은 우리 영공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으로 2013년 밝혀진다.
1982년부터 영해 기준이 3해리(5.6km)에서 12해리(22km)로 확장되는데, 3해리 땐 문제없었지만 12해리가 되니 일본 방공식별구역이 마라도 영공 일부를 침범하게 된 것.
어쨌거나 뒤늦게 한국은 2013년 12월 이어도를 포함하는 새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왜?
중국이 이어도를 노리고 있기 때문.
실제 중국은 2013년 11월 23일, 새로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에 일본과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뿐만 아니라 이어도까지 포함시켜 버렸다. 자기들 구역이라는 것.
중국은 왜 이럴까?
중국 군부의 숙원 사업은 미국 감시망을 뚫고 자유롭게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동중국해 지배. 이를 위한 필수 조건이 이어도와 센카쿠 열도를 자기네 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제주와 마라도 앞바다는, 일제강점기 때 그랬던 것처럼 주변 강대국의 욕망들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평화가 단번에 깨질 수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