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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Jan 27. 2021

울트라 조기유학

최치원과 아버지

          

"무조건 서울에서 살아야 해."


정약용보다 1,000년쯤 앞서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최치원의 아버지 최충이다. 서울은 서울인데 중국의 서울이다.        


당대 의복


신라 하급 귀족(6두품) 최충은 857년에 아들 최치원을 얻는다.


그런데 이 아들, 상태가 심상찮다.


네 살 때 글을 익히더니 초3 나이에 대학 과정을 끝내버린다.      


암기력이 성공의 확실한 보증이던 ‘20세기’ 한국에 태어났었더라면 수능 만점, 서울 법대 최연소 입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재경지검 등 요직만 근무, 청와대 민정수석, 검찰총장... 뭐 이 정도로 삶이 풀려갔을 것이다.  


‘9세기’ 한국에선 불가능했다. 6두품이 출세하는 경로는 아빠 찬스로 고위직을 꿰찬 금수저들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었다.


최치원, 피케티 말마따나 시간을 잘못 골라 태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소 변경 찬스는 있었다는 점.


하급 귀족의 삶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었던 아버지는 조기 유학으로 방향을 튼다.


당나라로 가는 배에 12살 어린 아들을 홀로 태우며 한 격려(?)다.      


"10년 안에 당나라 과거를 패스하지 못하면 호적에서 판다. OK?"     


장 샤오강


왜 10년일까?     


당나라는 신라, 발해, 일본, 아랍, 페르시아 등 여러 나라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태학에서 공부시키고 과거 응시 자격까지 부여했다.


해당 국가와 공동으로 책값, 밥값, 옷값까지 지불했다.


말하자면 국비 유학생을 뽑은 것인데 이를 빈공(賓貢)이라 한다.        


그런데 제한이 있다.


빈공은 10년 안에 과거를 패스해야 한다.


못하면 정부 지원이 끊기고 비자도 만료된다.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말.


아버지가 아들에게 10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호적, 요즘은 가족관계부에서 파버린다고 한 이유다.      


요즘 초딩이 아빠한테 이 정도의 격려를 들으면 단박에 가출하거나 비뚤어질 가능성이 높은 데 최치원은 달랐다.


상투를 대들보에 걸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에 매진했다.



남이 백 번 읽으면 천 번을 읽었단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바로 공부 잘하는 확실한 비결이다.


어쨌건 결과는?     


유학 6년 만인 874년, 18세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중국 언론의 관심을 받진 못했다.


그해 과거 시험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귀인택의 차지였기 때문.


869년 장원(수석)을 차지한 형 귀인소를 이어 동생 귀인택까지 수석 합격.      


이 집안 무섭다.


892년엔 귀인택의 아들 귀암까지 수석으로 과거를 패스한다.      


('1센티 인문학'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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