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2
정조 때 학자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 기록이다.
'신라는 당에 학생을 보내 태학에 들어가서 학업을 익히게 했는데, 10년 기한이 차면 귀국하게 하고 다시 다른 학생을 파견했다.'
여기서 의문.
신라 사람이 중국에서 과거를 본다고? 외국인이 한국에서 행정고시를 보고 한국 공무원이 된다는 건데, 말이 돼?
된다.
일단 중국의 과거제도.
587년(수나라 문제 7년) 처음 실시되어 청나라 말인 1905년까지 1318년 동안 시행된 중국의 과거제도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관료 선발 제도였다.
아빠 찬스, 즉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매우 높았다.
게다가 송나라는 과거 시험에 참가한 빈공들을 위해 빈공과(賓貢科)라는 별도의 시험을 개설해 우대했다.
중국에서 아무리 오래 공부했다 하더라도 본토 학생들과 똑같이 시험을 보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판단한 것.
자국 학생들을 역차별하고 외국 학생에게 돈까지 지급하고, 중국은 왜 그랬을까?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귀국해서 자국의 고급 관리가 된다.
중국 문화에 익숙하고 중국에 우호적인 고급 관리. 한마디로 친중파(親中派)가 된다는 말.
이런 식으로 중국은 외국 인맥을 관리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문화권'을 동아시아에 형성했다.
현대 미국과 일본이 이 정책을 엇비슷하게 따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 인재들을 불러들여 공짜로 공부시켜 학위를 따게 한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고급 관리가 되면?
당연히 친미파, 친일파가 된다.
최소한 지미파(知美派), 지일파(知日派)는 된다.
효과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물자는 물론 자본까지 죄다 저들 나라에 의존할 가능성이 99.9%.
공부시켜준 은혜에 감사해서 따위의 신파(新派)가 아니다. 그냥 그 나라가 익숙하니까 그렇게 한다. 사람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이런 게 최고의 마케팅.
이런 면에서 요즘 중국과 일본, 아쉬운 점이 많다.
빈공 제도처럼 깔끔하고 칭찬까지 받는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이웃 나라 엘리트들을 포섭할 수 있는데 왜 힘과 억지로 주변 나라들을 굴복시키려 하는 걸까?
('1센티 인문학' 21장)
(* 대다수 자료엔 '최치원이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했다'라고 하는데 틀렸다. 당나라 땐 빈공과가 없었다. 최치원은 중국 학생들과 똑같은 시험을 봤다. 하진화 외, '중국의 최치원 연구', 조성환 편역, 심산, 2009, 745쪽, 8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