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몽개척단 2
476명이 출발했는데 345명이 사망했다.
무슨 사건일까?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은 원래 정예군이었지만 1943년 이후 주력 부대가 동남아시아 전선으로 이동해버려 인원이 많이 부족했다. 병사들의 질도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이 쳐들어오자 관동군은 만몽개척단의 청년들을 군사로 징집한다.
노인, 여자, 아이만 남게 된 개척단엔 이렇게 말했다.
“관동군은 든든하다. 개척단은 걱정 말고 농사에만 전념하라.”
지들 가족은 이미 안전지대로 대피시킨 후였다.
보호막이 사라진 개척단은 소련군의 먹잇감이 된다.
심각한 건 개척단에 땅을 빼앗겨 빈민으로 전락했던 중국인들. 닥치는 대로 만몽개척단을 죽였다.
관동군은 이들을 막을 능력이 없었고, 의지는 더 없었다.
동시에 200명 이상 살해당한 개척단이 21개, 전멸한 개척단도 7개였다.
길이 없다는 생각에 집단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식으로 만몽개척단 8만 명이 사망한다.
일본 탄토 쵸(효고현 동북부) 이치노미야 신사 뒤편 비석에 새긴 내용이다.
_ 1944년 3월 탄토 쵸 만몽개척단 476명 만주로 이주
_ 1945년 8월 17일 345명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
국가가 구조를 포기하자 476명 중 □명이 죽었다.
_ □에 345를 넣으면 탄토 마을 만몽개척단이 된다.
_ □에 304를 넣으면 세월호다.
('1센티 인문학' 9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