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잡담
어쩌다 개콘을 1회부터 본 것 같다.
소재도 참신하고 출연자들 능력도 좋아서 대단히 재밌었다.
하지만 시나브로 개콘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개콘과 절연한 건 남자 출연자 서너 명이 나와, 기억이 흐려 정확하진 않겠지만, 자신들의 ‘작은 키, 잘 생기지 못한 얼굴, 사투리’ 등을 농담 소재로 다룬 뒤부터였다.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형식이었지만 전형적인 ‘타자 비하’였다.
웃음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터진다.
평균적인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난한 사람 앞에서 가난을 농담 소재로 들먹이지 않고, 머리 숱이 적은 사람 앞에서 탈모를 안주거리로 사용하지 않는다.
취약 집단에 대한 농담은 농담이 아니다. 차별과 편견을 촉진시키는 테러다.
게다가 이런 류의 농담이 악질적인 것은, 정색해서 대응하면 옹졸하다는 사회적 평가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비하는 농담은 어쩌면, 권력 관계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영국 국회의원 낸시 애스터가 처칠에게 쏘아붙인다.
“만일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당신 차에다 독을 탔을 거예요.”
처칠이 대꾸한다.
“부인, 만일 내가 부인의 남편이었다면 나는 그 차를 마셨을 겁니다.”
연예계든 정치계든, 이 정도 수준이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할까?
친한 사람일수록 농담을 많이 한다. 농담을 통해 감성을 교류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은 농담과 수다를 입으로 하는 털 다듬기(grooming)라고도 한다.
아내와 오랜만에 서귀포 드라이브 겸 맛집 체험을 다녀왔다. 서귀포 구시가지 어느 집 담벼락에서 재밌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저게 진품이라면 저 집 대박인데.”
“소문나기 전에 빨리 저 집을 사자.”
“담벼락만 사지 뭐.”
“담벼락은 어떻게 들고 갈거?”
“그렇지?”
“낄낄낄”
아내와 시시껄렁 농담하고 다니는 게 제일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