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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Jan 08. 2021

과학과 종교

책 소개 : '초신성의 후예 - 이석영'

  

  과학이 진리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믿는’ 사람들은, 게다가 ‘진리를 믿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개 상식선에서 소통이 불가하다. 어지간한 사람이 말해선 자신의 믿음을 바꾸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종교학에선 명백하게 ‘종교’라고 분류한다. 물론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겠지만. 


티엔 샤오레이. '낙원'


  어지간한 사람으론 설득이 힘들기에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한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과학은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 말. (‘철학적, 인식론적 진리’와 ‘종교, 형이상학적 진리’는 엄밀히 구분해야 하지만, 그랬다간 생략당할 것 같아 생략한다.)  


_ 모든 과학은 인간 활동의 산물이기에 틀릴 수 '있다'. 


_ 모든 과학은 그것의 토대가 되는 당대 사회와 문화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슨 말?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 말. 


아르놀트 뵈클린. '우상'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행위이자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진리의 왕좌에서 내리는 게 섭섭하면 ‘노력’ 앞에 수식어 ‘최선’을 붙이면 된다. 그게 맥시멈이다.


  과학이 종교를 재단하는 세상의 도래에 종말론적 서늘함을 느끼는 사람도, 과학이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 그게 미니멈이다. 


(과학은 종교의 진리를 더 풍성하게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기독교가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극렬 반대했지만, 지동설을 일단 인정하게 되자, 기독교 절대자가 만들었다고 믿어지는 우주는 천동설 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커졌다. 천동설의 신이 만든 우주는 기껏해야 달 너머 정도까지의 사이즈지만, 지동설의 신이 만든 우주는 수백 억 광년 사이즈다.)      


천동설의 우주



  아무튼,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과 종교에 관해 이 정도의 지적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맥시멈과 미니멈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기준점을 두기로 합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으로 종교를 난도질하는 무근본의 무례함은 사라질 것이고, 그런 과학이 무서워 혹은 더러워 몰상식의 영역으로 잠수해가는 종교의 퇴행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퇴행? 


  바로 이런 것.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난입


  이 책은 그런 자세로 기록되었다, 라고 추측해본다. 


  그래서 이런 과학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읽힌다면, 우리가 좀 더 나은 사회, 아니 좀 덜 나쁜 사회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살짝 가져 본다. 


  

  

  물론 오버일 수 있다. 인정. 그래서 일독을 권한다. 


  본격적으로 우주를 공부하기 전에, 우주를 공부한 전문가의 삶과 생각을 살짝 엿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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