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증오하는 아이 2

국영수는 핑계고 인생을 배웁니다

by 조이엘

무주택자 시절 이야기다. 누구나 그렇듯, 마음에 쏙 드는 집은 돈이 부족하고, 가진 돈에 맞추면 집이 허접하다.


그렇게 몇 년을 탐색하다 결국, 한라산 중턱에 있는, 대지가 천 평은 넘어 보이는 어떤 사찰까지 가본 적이 있다.


관리하시는 보살님 왈, 주지 스님 주특기가 퇴마고 중병 고쳐주는 능력으로 탁월하단다. 검색해 보니 과연, 전국구로 유명했다.


지금 어디 계시냐고 물으니 한라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고, 아마 컴백은 불가능하시단다. 그래서 사찰을 매물로 내놓았단다.


중병 치유 전문가의 중병이라. 어떤 이는 코미디, 어떤 이는 땡중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다. 거의 확실한 확률로, 주지 스님의 중병은 치유자로서의 숙명인 것을.


어떤 의미로든 ‘심각한’ 아이들을 맡아 동행하면, 아이가 느끼는 절망과 고통이 고스란히 선생에게 전이된다. 수업 후 끙끙 앓아눕는 일이 다반사다.


제주에서 만난 어떤 목사님이 말했다.


“나는 신께 바라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 간절한 소원이 생겼어요. 병 고치는 능력이 정말 절실합니다.”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주변에 고통 받는 중환자들이 꽤 있고, 가능하다면 자기 영혼을 갈아서라도 그분들을 고쳐주고 싶단다.


역시 공감한다. 어떤 의미로든 ‘중병’에 걸린 아이들을 볼 때, 저 아이를 소생시킬 수 있는 ‘치료법’을 24시간 고민하는 게 선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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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증오하는 중1 상호가 2주 남짓 짧은 제주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 2주간 나는 매일, 수업 후 2시간은 앓아누워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힘든 캐릭터라 감정 소모가 극심했나 보다.


이제 한 달이나 지나야 서울에서 다시 상호를 만날 수 있다. 겨우 살려놓은, 성냥불보다 작은 공부 불씨가 꺼질까 걱정이다.


‘네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샘도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


이러면 아이들은 제 멋대로 해석하고 제 멋대로 이어 붙인다. 그래서 디테일도 단단히 일러두었다.


매일 10분 독서, 약간의 수학 문제 풀이(1학년 1학기 복습 2페이지, 2학기 진도에 맞춰 2페이지), 그리고 글씨 연습과 숫자 쓰기 연습.


이 정도도 안 하면 너 스스로 너를 포기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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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가 서울에 간 첫째 날, 미션을 보내왔다.


일단 엄마가 놀랐다. 선생님, 애가 스스로 숙제를 해요.


내가 놀란 건 다른 지점이다. 스스로도 알아볼 수 없어 짜증을 내던 글씨가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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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을 쓸 때 항상 4분의 1쯤 비워놓아 6인지 9인지 스스로 헷갈려하면서도 자기 스타일이라 고집하던 녀석. 이제 8분의 1쯤만 비우니, 0에 훨씬 가까워진다.


언젠가는 완전한 0을 쓰겠지. 제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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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다수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지만 그 아이 영혼 속으로 한 발짝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엄마는 거의 없더라.’ (‘국영수는 핑계고 인생을 배웁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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