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살며
같은 장소를
다시 찾기는 쉽다.
같은 장소를 같은 사람과
다시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같은 장소를 같은 사람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도대체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폭력 속에 그저, 속절없이 떠내려 갈 뿐.
숲은 다르다.
땅을 단단히 부여잡고 하늘로 자신을 키워낸 거목들은 시간을 거스른다.
결과를 원인에 앞세우고, 내일과 어제가 손잡고 나온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윤동주. ‘나무’ 1937)
숲에서 시간은 시계를 따라 흐르지 않는다.
숲에서의 시간은 수학적 단위가 아니라 감수성의 의미론적 분할이다.
숲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뭇잎 하나에서 세계를 느끼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엿본다면
나무에 기대 누워있는 시간이 영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