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이란 보고 배우는 것
그날은 일요일 오후였다.
20분을 걸어 외손주를 보러 오신 할머니. 반찬이랄 것도 없는 저녁을 뚝딱 해치우고, 잠시 누웠다 가시라고 외할머니를 위해 이부자리를 폈다.
대발인지 소발인지가 나왔던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여튼, 애청하던 드라마를 반도 못보고 할머니 눈이 감겼다 열렸다 감겼다 열렸다, 한다.
바짝 붙어 앉아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었다. 70이 훨씬 넘은 우리 할머니, 딱 100살까지만 살았으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꽃같은 10대를 곰보 얼굴로 보냈을 할머니. 하지만 내겐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얼굴.
1916년생 할머니는 8녀와 1남을 낳았다. 하늘을 가진 듯 기쁘셨겠지.
하지만 1남은 어이없는 질병으로 몇 년 후 사망하고, 할머니 하늘도 같이 무너졌다. 딸도 셋이나 죽었다.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이 죽었는데
올해는 아들마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이 땅에
두 무덤 서로 마주보고 섰구나.
...
너희들 영혼은 서로 알아보고
밤마다 만나 정겹게 놀겠지.
자식을 잃고 쓴 ‘곡자(哭子)’, 허난설헌이 썼다.
허난설헌과 달리 글을 몰랐던 내 할머니는 무엇으로도 슬픔을 분해할 수 없었다. 그저 피눈물 흘리며 슬픈 울음을 삼킬 수밖에.
자식이 죽으면 엄마도 죽은 목숨이지만, 할머니는 남은 다섯 딸을 위해 삶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성인이 된 5녀는 자녀 열을 낳았다.
남자 아이가 셋이었지만 할머니는 유달리 나를 사랑했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자, 손 탄다며 친척들이 구경오는 것도 막았다. 서너살까지 아예 등에 업고 살았다.
말 그대로 나를 물고 빨고 했다.
아마 할머니에게 나는 다시 솟아난 하늘이었으리.
일요일인 그날 그해 나는, 뒤늦은 질풍노도로 바닥친 인생을 걷고 있었다. 재수생이지만 공부에 올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방황했고,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 할머니 가슴에 전봇대 수십 개는 박았을 터.
잠에서 깬 할머니는, 늦었는데 주무시고 가라는 만류에도 기어이 옷매무새를 챙긴다. 당신 집으로 가시겠단다.
그날 따라 할머니를 호위하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2km쯤 떨어진, 사별로 혼자가 된 큰 딸과 단 둘이 살던 단칸방.
느릿느릿 옮기던 발걸음, 집 앞으로 연결된 100미터 남짓 언덕길에서 힘겨워진다.
나는 저어하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그 길을 올랐다.
20살 청년에게 할머니는 문제집 몇 권 넣은 가방보다 가벼웠다.
생전 처음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었고, 처음 할머니를 업었는데, 그랬었는데, 영원히 그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얼마 후 신(神)은 내게서 할머니를 빼앗아갔다. 내 하늘은 그때 영원히 무너졌다.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는 데 곱게 포갠 분홍색 스웨터가 나온다.
서울대 시험 보는 날(그때는 지망 대학에 가서 시험을 쳤다), 다른 엄마들이 서울대 대문에 엿도 붙이고 떡도 붙이고 이것저것 다 붙이며 유난을 떨 때, 내 엄마는 여관 입구에서 쿨 하게 ‘잘 보고 와’ 멘트만 날린 뒤, 오랜만에 서울에 온 기분을 만끽하고, 남대문 시장으로 가서 빛깔 고운 할머니 스웨터를 샀다.
할머니는 아끼느라 스웨터를 한 번도 입지 않았고, 그 사랑하는 손주가 서울대 합격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가셨다.
오십 평생 참 많은 실수와 실패를 하며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할 테니까 그냥 인정.
하지만 딱 두 개 후회하는 것.
할머니를 더 많이 업어드렸더라면, 헛짓거리하고 돌아다니던 시간 1%만 빼서 할머니를 만났더라면.
수십 년이 지났지만 항상 나는 그때 그 언덕길, 할머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업었던 그 언덕 밑으로 소환된다.
다시 그 길로 돌아가, 할머니를 업고 영원히 걷고 싶다.
이름을 뜻하는 한자 ‘명(名)’은 ‘저녁 석(夕)’에 ‘입 구(口)’로 분해할 수 있다. 저녁이 됐으니 밥 먹자고 엄마가 크게 부르는 게 이름이라는 말이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평범한 시간이, 30년이 지나도 이렇게 그리울지, 그때는 차마 몰랐다.
나와 비슷하게 할머니가 물고 빨면서 키운 내 조카들이, 내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빈다.
과외 상담하면서, 아이 인성교육도 시켜달라는 엄마들이 꽤 있다. 그건 밥상머리 교육이니 어머니가 알아서 하셔야죠, 한다. 너무 박절한가 싶어 덧붙이는 말이다.
“친정부모님, 시부모님께 지금보다 두 배로 더 잘하세요. 놀랍도록 아이가 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