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성격이 급하면 사람을 웃길 수 있다.

긍작가의 만년필 그림일기

by 개꿀

나는 좀 급하다.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재빠르다!


행동도 빠르고, 결정도 빠르다.

이런 경우 장단점이 분명하다.


장점은, 빨리 해치우니 속이 시원하고

좋은 기회를 먼저 접할 확률이 높단 것.


단점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일 경우

땅치고 후회할 위험이 있으며

덜렁대다 잦은 실수를 동반한다는 것.


그래도 나 정말 많이 나아진 거다.

적어도 일에 있어선 엄청 꼼꼼해졌다.

일상에서 나는 굉장히 헐렁헐렁한데,

일에 있어선 꼼꼼하고 예민하달까.


이건 전부 옛 직장 상사 '꼰대 여사' 덕분이다.

그분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하고

실수하는 건 용납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눈물 흘려가며 많이 배웠다.

그래서 인간적인 부분은 몰라도

일로서는 고마워할 게 많다.


신랑이랑 '서울-대구' 장거리 연애를 할 때

신랑이 대부분 서울에 날보러 올라왔는데

사람 많은 서울역에서 난 항상 앞서 걸었다.


내가 길 만들어줄게.
내 꽁무니만 쫒아와!


나는 평화주의자인 신랑에게

길을 뚫어준다는 생각으로 걸었다.(진짜?)


그런 날보며 신랑이 내게 말했다.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쏙쏙 뚫고 지나가는 넌,
꼭 날다람쥐 같아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쏙쏙 비집고

재빠르게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날보며

날다람쥐가 떠올랐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쥐띠다)


그땐 신랑 맘을 몰랐는데 이젠 알거 같다.

여기 지방에 내려와 살아보니

사람들을 앞질러갈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젠 서울에 가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의 일이다.


신랑이 해준 토스트를 아침으로 먹는데

매우 안정적인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우유를 바닥에 쏟았다.


괜찮아! 다 먹고 닦자


신랑은 마음도 태평양이지.

나같으면 혼냈을텐데 (히히)


곰곰히 생각해봤다.


분명 흘릴 상황이 아닌데
왜 난 우유를 흘렸단 말인가.
꼭 일부러 쏟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 끝에 이유를 알았다.


우유를 입에 넣기도 전에 삼켜버린 거다!


신랑에게 말해줬더니

신랑이 배를 잡고 웃었다.


또, 오늘 점심에는 텀블러에 물을 담는데

네임텍을 넣고 담았다. 동료들이 빵 터졌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온 메일에

일주일이나 지난 후 답장을 보냈는데

하루도 안 지난 지금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정도면 급한 게 아니라 이기적인거네)



생각해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에서 나는 보도자료 담당인데,

보도자료 문의란에 팀장님 성함을 써놓고

팀장을 '탐정'으로 적은 거다.

무슨 셜록홈즈도 아니고. 흑흑.



또, 아까는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회사 카페에서 라떼를 시켜 먹는데

사람들이 가서 주문하려고 하자

100미터 빨리걷기를 해서 먼저 주문했다.


오늘 기분 좋아보여요.
힘차게 걸어오시네요.


바리스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주문하려고 급하게 온건데요.


내 대답에 바리스타가 빵 터졌다.


음, 그러고보면 나는 성격 급한 걸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어젯밤엔 저녁으로 카레를 끓였는데

감자가 익지도 않았는데 불을 꺼버렸다.

신랑이 좋아하며 엄청 웃었다.

혹시 비웃은 건가. 긁적.


성격이 급하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

이제여 깨달았다!!!! 하하하....

생긴 대로 살아야지.


-성급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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