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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an 20. 2020

[개꿀너꿀 라이프] (2) '워킹맘작가' 1년이 되었다

워킹맘&파파 다들 이러고 살쥬?

올해 1월 2일 '입사 1년'을 맞이했다.


꿀순이가 태어난지 첫 돌도 채 되지 않아 어린이집에 등원했고, 그와 동시에 나는 첫 출근을 했다. 지금은 우리가족에게 출퇴근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이 모든 게 생활이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따랐다. (흑, 눈물 좀 닦고.)


나는 대학 졸업 후 쉬지 않고 직장에 다닌 '워킹녀'였다. 좀 쉴법도 하지만 계속 일을 해야 했던 이유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월세를 내려면 돈이 있어야 했고, 하루 세끼 아니 두끼라도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기에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 난 필시 돈을 벌어야 할 팔자였던 거다.


비록 한 직장에 느긋이 다니지 못하고 수시로 '메뚜기'를 뛰었지만 그럼에도 일을 쉰 적은 없다. 20대에는 일을 쉬면 통장이 텅장이 되어 불안했지만 전업 작가의 시간을 보낸 후 깨달았다. 지금은 일을 쉰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는 걸.


2016년 10월 말. 2년 간 다니던 회사에 '계약 만료'로 퇴사하고, '전업작가'가 됐다.


당시의 나를 설명하자면,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다 빚은 없었으며 퇴직금과 적금을 갖고 있었다(경제적으로 나쁜 상황은 아녔다는 거다). 작가로 등단했고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두어권 펴냈다. 또, 회사를 다니며 간간히 강의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다지 불안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뭔가에 쫒기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조바심이 일었다. 일로서 칭찬도 받고 싶고, 페이도 받고 싶고.... 그래,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잘하고 있다"고 확인 받고 싶었다고나 할까. 창작은 지난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한 작품을 다 완성해야만 동굴에서 나와야 하는 일이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 갇혀 있자니 자꾸만 우울했다.


그렇다. 나는 경쟁과 성과주의에 길들여진 인간이었던 거다.


아니면 자존감이 낮은 '애정 결핍형'이거나. 2년 간 리라이팅, 윤문 등의 외주는 물론 틈틈이 강의도 나가고 작품도 썼다. 그러다 꿀순이를 임신했다. 그렇지만 몸에 길들여진 습성은 여전했다. 막달에도 산만한 배로 서울까지 강의를 나가곤 했으니까.


꿀순이를 낳은 후에는 더 가관인 게, 출산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매주 1회씩 학교에 강의를 다녔다.


'무리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웬걸, 정말 할 만 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그래서 일 강도를 높였다. 고정 강의를 2개로 늘리고,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매주 출퇴근했다. 시어머니가 꿀순으를 돌봐주셔서 가능했던 일이다.


심지어 그 와중에 상도 받고(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작품도 여럿 썼으니 누가 보면 내가 '초능력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다.


꿀순이를 재우고 새벽 3시까지 글을 쓰고, 놀이터에 유모차를 끌고 가서 노트북을 펼쳐 작품을 썼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작품은 남았지만 (아무래도) 체력을 잃은 것 같다.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꿀순이를 낳은 후 내 삶은... '숨을 깎아먹는 시간'이었다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잠을 줄이고, 시간을 바쳤으니까.


아, 그때 살살할 걸 그랬나? 분명 그때 폭삭 늙어버린 게 틀림없다. 작년 1년 동안은 정말 '글 비스므리한 것'도 쓰지 못했으니까. (그러게, 에너지는 막 쓰면 안 된다. 내가 경고하건데, 천천히, 부디 천천히 가라.)


그리고 갑작스럽게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됐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것과 매일 출퇴근을 하며 육아에 힘쓰는 것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었다.


시간 조절이 비교적 자유로운 프리랜서 시절엔 일이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께 도움을 받아 잠깐 맡기곤 했다. 하지만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 메여 있어야 하는 직장인에게 육아는 혼자 힘으론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나라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우리 부부는 바로 어린이집을 알아봤고,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 불구하고 갓 돌이 된 꿀순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겼다. 심지어 입사 보름 전에 합격 발표가 나는 바람에, 꿀순이의 어린이집 적응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다.


3일 정도 2~3시간 적응을 시키고 바로 하루 9시간의 특훈에 돌입시킨 꼴. 이거 뭐 해병대 훈련도 아니고. 첫날, 꿀순이도 울고 엄마도 울고.(아빠는 바람에 눈이 시려 닦아낸 거였으려나.) 꿀순이가 얌전히 등원한 날은 어김없이 어린이집에서 "꿀순이가 아파요"하는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 등원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생의 첫 감기를 '독감'으로 맞이한 꿀순이는 다행히 1년 간 잘 적응해주었고, 성장해주었다.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워킹맘 1년 째, 여전히 아침이 되면 우리 집은 전쟁이다.


Am 7:00 핸드폰으로 알람이 울리면 엄마는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아빠는 화들짝 놀라 화장실로 직행한다. 장이 안 좋은 아빠는 열심히 '모닝 끙가'를 누고, 엄마는 그제야 일어서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그렇다. 세면대에서 안 한다. 그냥 물로 씻어낸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다. 이 모든 과정이 10분 안에 클리어다.
Am 7:20 끙가를 싼 아빠는 샤워까지 마치고 나온다. 우리집에서 가장 깔끔한 사람이다. 그때 잠에서 깬 꿀순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얼크 얼크"한다. (뽀로로를 보여달란 뜻이다. 왜 뽀로로가 얼크인가? 그건 다음에 설명하겠다.)
Am 7:30 거실로 나온 꿀순이가 "엄마야 까까!"한다. 과자를 달란 뜻이다. 어림 없다. 엄마는 바나나, 우유, 모닝빵 같은 걸 준다. 꿀순이는 냠냠 먹는다.
AM 7:40 아빠가 꿀순이 옷을 입힌다. "꿀순아 옷 입자" 하면 꿀순이는 요새 "시여!"한다. 싫다는 뜻이다. 억지로 입힌다. 그리고 등원, 남편이 회사가는 길에 나를 데려다주면 8시 30~40분이 된다.


퇴근의 과정은 이와 반대라고 보면 된다.

아마 당분간 이런 루틴은 지속될 것이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준 가족들에게 고맙다. 나의 운명공동체, 나의 동지들이여! 그대들이 있어 든든하노라!


이제 곧 둘째가 태어난다. 그 후의 풍경은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

아무리 작가라지만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래도 글은 꾸준히 쓰고 싶다. 그래야 한다.


오늘도 '워킹맘 작가'인 나는 전의를 다지며 (여기에다)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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