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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an 28. 2020

[개꿀너꿀 라이프](3) 출산 한 달 만에 수술

병원 화장실서 유축한 SSUL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보세요

연휴 같지 않은 연휴,

명절 같지 않은 명절이 지나다.

(내일이면 출근해야 한다니... 실화냐?)


어릴 적에는 명절이 참 즐거웠다.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 세뱃돈도 두둑이 받을 수 있었으니까.


TV에서는 머털도사를 비롯해

하루 종일 재밌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어른들은

어딘지 모르게 달뜬, 한껏 설렌 모습이었.

한없이 너그러워진 그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사촌들과 모여 신나게 놀고 수다 떨 수 있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


그러나 어른이 되어보니 명절은 1박 2일 동안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나르고 닦고... 오롯이 '육체노동'을 요하는.. 심지어 페이조차 없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심지어 세뱃돈까지 나가잖아)


평생 죽을 때까지 '설=육체노동'으로

기록될 뻔했던 나의 설날이

다른 의미로 기록된 날이 있으니

때는 바야흐로 2018년 전...


2월 15일.

그날은 꿀순이를 낳은 지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난날이었고,

까치설날이었다.


새벽... 갑자기 오른쪽 복부가 쥐어짜듯 아팠다.

밤새 잠을 설치고 다음날 아침.


집에서 5분 거리에 종합병원이 있어서

꿀순이에게 맘마를 주고,

남편에게 맡긴 후 집을 나섰다.


"병원에 금방 다녀올게."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이 5일이 될 줄은 몰랐다.


병원에만 가면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 아픈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연휴에도 병원은 꽉 차 있었다.

심지어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복부 통증이었기에 가장 먼저 '내과'를 찾았다.

"전날 밤 배가 몹시 아팠어요."

내 말에 의사는 배를 눌러보거나 살펴보지도 않고

대뜸 "속이 쓰립니까?" 물었다.


"아니오. 위는 괜찮은 것 같아요."

이 대답이 뭐가 그리 언짢았을까?

의사가 대뜸 신경질을 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위인지 아닌지는 네가 알 수 없는 거라고 나에게 다다다 쏟아내더니 초음파 검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불친절한 의사 탓에 기분마저 좋지 않은 상태로

길고 긴 검사를 받으려니 정말...

몸도 더 아픈 것 같았다.


검사 후, 다시 만난 건

그 '싸가지 의사'가 아닌

영화감독 박찬욱과 이름이 똑같은 외과 의사.


아까 내과 의사에게 당한 터라

눈을 가늘게 뜨고

"제대로 진료하지 않았다 봐라"

벼르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치는 말.


"급성담낭염입니다. 당장 수술하는 게 좋아요."


수술? 수술이라니? 왜죠?


침착, 침착하자.

마음을 가다듬고 의사에게 말했다.


"출산한 지 한 달 밖에 안됐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데 수술 꼭 해야 하나요?"


의사 선생님은 제법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지금은 그 정도 통증이지만 곧 통증이 아주 심해질 거예요. 담남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어요. 나중에 더 심하게 고통받고 수술하는 것보다는 지금 수술하는 게 좋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스쳐간 사람.

바로 친오빠였다.


몇 달 전에 친오빠도 담낭을 뗐는데

얼마나 아팠는지 데굴데굴 구를 수준이었다고,

여자 지인은 급성담낭염의 고통을

'아기 낳는 것보다 더 아팠다'라고 했단다.


세상에, 의사 말대로 그대로 방치했다가

언젠가 출산의 고통을 다시 느껴야 하는 셈이었다.

(제왕절개로 낳았지만, 통증은 겪었답니다. 다음에 풀어써보지요.)


수술하기로 결심하자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응급실에 누워 수술 차례를 기다렸고

그 사이 남편에게 연락해 입원에 필요한 준비물을 부탁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찌릿 찌릿찌릿. 드디어 올 게 왔다(ㅠㅠ)


이것은 젖이 꽉 찼다는 신호!!!

꿀순이의 식사 시간이란 뜻!


째깍째깍째깍.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빨리 꿀순이에게 젖을 먹이든가

유축을 해야 했다.

아니면 폭발하고 말 거였다!!!


남편에게 '비상사태'임을 알렸건만 꿀순이를 맡기고 와야 했기에 시간이 지체됐고 결국 나의 '젖력발전소'는 폭발하고 말았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는데 그만

겉이 젖을 정도로 모유가 새고 말았던 것이다.


친절한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임시방편으로 거즈로 막았지만

풀가동 중인 발전소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다급히 뛰어온 남편에게서 슈유 패드를 받아 교체했지만 뭔 소용이람?

국 그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은 간단했다.

배꼽 아래 작은 구멍을 뚫어

복강경으로 쓸개를 떼어내는 술에 가까운 수술이었다.


의사 선생님 말이, 일주일만 입원하면 금방 나을 거라 했다. 그러나 내 걱정은 딴 데 있었다.


바로.... 모유.


그리고 그 걱정은 바로 고통이 됐다. '젖몸살'이 시작된 것이다.


출산 후에도 겪지 않았던 그 몸살을 겪다니...

배는 아프지, 링거 신세인 몸은 불편하지

거기다 가슴은 터질 것처럼 뜨겁고 아프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입원실에 온 그날부터 부지런히 유축기로 모유를 빼냈다. 수술하는 그새에 돌처럼 굳은 가슴을 억지로 마사지해서 휴대용 유축기로 모유를 짜냈다.


"드륵 드륵 드륵 드륵"

유축기에서 나는 소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믹서기보다는 드릴에 가까운, 아무튼 소음 덩어리이다.


당시 나는 4인실 병실에 머물렀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간호사실에서

유축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전혀 넓은 곳이 아니었고

간호사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었기에

아무 때나 찾아가 볼일을 볼 수 없었다.


젖력발전소는 24시간 풀가동하고 있었으므로 밤에도 꼭 유축해야 했다.


결국 내가 찾은 곳은 화장실.


2018년 2월 중순

모병원 입원실 여자화장실 안에서는

새벽마다 드륵드륵드륵 이상한 소리가 들렸으니..

꼭 괴물이 숨 쉬거나 이를 가는 소리 같겠지만

실은 개꿀이가 젖을 짜는 소리였다.


유축기를 콘센트에 꽂고 변기에 앉아

링거 줄을 피해 젖을 짜내는 꼴이라니...

얼마나 처량하고 아프고 서럽던지 눈물이 났다.


더 슬픈 건, 이 귀한 모유를 변기에 버려야 한단 것. 각종 항생제가 들어가 있는 젖이라 반드시 버려야만 했다.


"아까운 것... 피 같은 것...우리 꿀순이 밥..."


이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수밖에.

모유가 펑펑 샘솟는데도

꿀순이는 분유를 먹어야 하고

어미는 화장실 구석에서 유축해

부지런히 변기에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니.


건강한 게 최고다. 아무리 사소한 수술이어도 아픈 건 아픈 거고 그만큼 맘도 몸도 고생하기 마련이니까...


이틀 정도 지났을까.

가슴이 불구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에도 열이 났다.

'젖몸살' 올 것이 온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병실에서 커튼을 치고

가슴을 계속 마사지했다.

어찌나 아프던지 또다시 눈물바람.


그렇게 입원 3~4일이 지났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외출을 했다.


몸이 많이 회복되었으니 항생제를 먹지 않아도 된다며, 모유가 가능하단 거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가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모유수유.


꿀순이를 품에 안고 가슴을 물렸더니

다행히 쪽쪽 잘 먹는다.


출산 한 달만에 수술로 강제 단유를 하고, 후

다시는 모유가 나오지 않거나

아니면 꿀순이가 거부할까 몹시도 걱정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건 내 건강이었는데 왜 그렇게 자식 생각 먼저 했나 모르겠다. 분유를 먹어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데 말이다.


이건 필시,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힌 '모유수유=모성애' 공식을 고민 없이 받아들인 결과다.


출산 후 입원실에서도, 조리원에서도

모유양 때문에 일희일비하던 엄마가 나였다.


자연분만에 '실패'한 엄마라는 생각에 모유수유만큼은 꼭 성공하고 싶었다.


게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이라 여겼다.

그래서 조리원에서조차 푹 쉬지 않고

새벽마다 울리는 수유 콜에 성실히 출석한 것이겠지.


큰 맘먹고 사놓은 산후 보약은 먹다 팽개쳐놓고

꿀순이에게 모유는 꼬박꼬박 주려던 나.

어찌 이토록 자기 돌보기에 인색한 걸까?


곰곰이 돌이켜보니

어렸을 적부터 내몸 돌보는 데 소홀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 몸뚱아리 정도는

희생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그게 첩첩이 쌓여 결국 탈이  꼴이다.

(이런 이야기도 풀어낼 날이 오리라)


물론, '급성담낭염'은 유전적 영향일 수도 있.

그렇지만 출산의 영향도 크다.

실제로 출산으로 급격히 살이 쪘다가 빠지는 엄마들이 자주 걸리는 질환이라 한다.


직작에 아기 돌보는 것의 10분의 3만큼만 내 몸 돌보기에 투자했다면 좋았을 텐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가 우선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걸 아는 이상,

지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꿀꿀이가 태어났을 땐

좀 더 현명한 엄마가 되어보려한다.


자신을 좀더 챙기는 엄마.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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