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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Feb 03. 2020

[개꿀너꿀 라이프](5) 흔한 귤을 나눠 먹는다는 것

딱 자기 몫만큼만

왼쪽->오른쪽, 왼-> 오른! 번갈아가며 보세요

가끔 어이없는 일들을 저지른다. 서른 중반을 넘 어른이지만 나이가 찬다고 그만큼의 교양이나 생각이 생기는 게 아니다.


무심코 행했던 일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작은 변화와 실천이 무엇을 바꿔 놓을지 자각하면서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호들갑이냐고?


주말에 생긴 일을 통해 까닥하면 "리석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다 죽을 수 있겠구나" 깨달았.


우리는 어려서부터 '나눔'에 대해 배워왔다. 자원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부족한 이에게 나눠주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또, 내 필요 없는 것이 누군가에겐 값진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나눔'을 통해 '자원의 순환'을 하면 세상은 살기 좋아진다.


아아! 이런 기본적인 교양조차 난 묵살하고 살았도다!(도대체 왜 이러는겨)


지난주 우리 집에 귤 한 박스, 한라봉 한 박스가 왔다. 한라봉은 제주서 친정엄마가, 귤은 제주서 선배가 보내온 것.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이 과일을 즐겨먹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집에서 뭐를 잘 먹지 않는다. 게을러서 그렇다.


그런 탓에 음식들을 냉장고에 쟁여 뒀다가 버리는 게 일이다. 처음에는 몹시도 자괴감이 들더니 갈수록 대수롭지 않았다.


엄마가 제주에서 보내온 싱싱한 생선도 냉동실서 썩고 있다(엄마 미안). 시어머니가 챙겨주신 반찬도 곰팡이가 필 때까지 방치해둔 적이 많(죄송해요, 어무이).


도대체 왜! 결국 썩혀서 버리고 말 것을 기어코 쟁여두는 걸까?


그건 "언젠가 다 먹을 거니까"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속마음을 내밀히 들여다보... '남 주기 아까워!'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부끄럽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남줄 생각까지 마음이 안 닿은  아니었을까.


몇 달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퇴근 후 집에 갔다니 현관에 사과 두 박스가 놓여있었다. 알고 보니 회사 주말농장 동호회에서 보내준 것.


동호회 활동을 하며 사과나무 한 그루를 분양받았는데 거기서 나온 사과를 보내준 것... 이리라. 추측하는 이유는 수확 작업하는 날, 이런저런 일들로 빠졌기 때문이다.(원래는 남편, 꿀순이랑 함께 구슬땀 흘리며 사과 수확 체험을 하는 게 빅피처였는데... 또르르. 내가 이렇지 뭐;;)


사과를 보자 반가운 마음보다 난처한 생각이 들었다.


'장고 가득 찼는데 이걸 어째?'


그리하여 지혜를 발휘했으니, 박스째로 문 밖에 둔 것.(네, 사람은 이렇게 바보 같습니다.)


겨울이라 자연 냉장고 기능을 한다 믿었고 실제로 사과는 날이 지나도 싱싱했다. 문제는 2박스였다는 거다. 우리 세 식구에게 한 박스를 다 먹는 건 벅찬 일. 시댁에 가져다 드리려고 마음먹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치.


결국... 그 후의 사과의 운명은 생략키로 한다.(RIP)


이렇게 어리석은 패턴으로 살다 보니 무엇이 잘못되었단 자각조차 없었나 보다. 아니, 그냥 생각이란 걸 하기가 싫었을지도. 낮에 회사에서 지지고 볶다 집에 가면 넉다운. 꼼짝도 하기 싫었니까.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이번만큼은 귤을 박스에 둔 채로 썩게 만들기 싫었다. 그래서 냉장고에 쟁여둘 생각으로 소분하여 비닐팩에 담았다.


이것도 많이 발전한 셈. 평소엔 현관에 방치하고 말았으니.


날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윗집, 옆집이랑 나눠먹자."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했겠는가.


"귤은 너무 흔하잖아. 좋아하실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자 추측이었다. 시장, 슈퍼, 동네 구멍가게에도 흔히 파는 귤이었기에 이미 이웃집에 가득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남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쟁여뒀다가 똥이 되어버 사과... 생선... 등등이 떠올랐다. 아, 이젠 정신 차려야지 싶었다!


봉지에 한라봉과 귤을 담아 윗집, 옆집 문을 두드렸다.

"고향에서 온 건데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쑥스럽게 봉지를 내밀었더니 윗집 아줌마, 옆집 할머니 모두 좋아하셨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옆집 할머니는 내 배를 보더니 예정일이 언제냐고 묻고, 순산하라는 덕담도 해주셨다. 나도 덩달아 편찮으신 곳은 없는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를 여쭸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 주세요" 신신당부다. 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일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흔하디 흔한 귤을 나누는 게 왜 중요한 것인지를.


어릴 적빵 하나, 한 개 이웃과 꼭 나누곤 했다. 그게 인심이고 정이었다. 나도 시골에서 그렇게 컸기에 그런 정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철저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거기다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 이곳에 이사 왔던 날을 기억한다.


"여기에 사람이 살기는 할까?" 건물 외관만 보고, 건방지게 이런 생각을 했다.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집은 낡았지만 마음은 풍요롭고 따뜻한 분들이셨다.


지난 2년을 돌이 겨봤다. 오랜만에 아기를 본다며 꿀순이를 누구보다 이뻐해 주고, 꿀순이 첫 돌 때는 복채를 쥐어주던 이웃 아니던가.


윗집 아줌마는 매번 우리 집 계단까지 물청소를 해주신다. 옆집 할머니는 소소한 것들을 항상 챙겨주셨다.(어느 날은 캔맥주까지!) 문 앞에 사과박스가 오래 놓여있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하던 분들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이웃들의 양보와 부지런함으로 철없는 젊은 가족이 이 세상을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우린 너무나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게 적당한지, 너무 많거나 적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남으면 버리지 뭐' 이런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해서 그렇다.


"이런 물질적 풍요가 과연 얼마나 갈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거대담론 속에서만 식량, 자연파괴, 재난 같은 문제를  다룰 뿐 삶 속에서는 실천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못할 허영과 욕심 때문에 인간은 오늘도 작은 것의 소중함, 나눔의 가치, 이웃과의 공생 등을 잊고 사는 게 아닐까. 혼자서 맛있는 걸 다 먹어치우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입고 취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참! 가장 중요한 건 애초부터 먹지 못할 것, 책임지지 못할 것은 취하지 않는 것. 딱 자기에게 필요한 적정량의 자원만 쓰며 살아야겠다.(p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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