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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an 30. 2020

[개꿀너꿀 라이프](4) 1년 동안 동화를 못쓴 이유

유튜버가 되었다(응?)

왼쪽-> 오른쪽, 왼쪽->오른쪽 번갈아가며 보세요
1년 동안 집필을 못했다.(이래 놓고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겁니꽈!)


작년 중순부터 안부를 묻는 문우들과 지인들에게 엄살 피우듯 대했다.


"나 올해 들어 한편도 못썼어요."

위로받고 싶은 마음 반, 격려받고 싶은 마음 반이었을 거다.


아니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1년 내내 단 한편도 못쓸 줄은 예상치 못했다.


2013년에서 2014년 넘어가는 사이에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작가가 되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생 초보 작가에게 청탁하거나 선뜻 "출간하자" 제안하는 곳이 있을 리가.(은근 기대를 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계속 쓰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높은 산도 오르다 보면 봉우리가 나타나고 긴 터널도 걸어가다 보면 통로와 닿듯이 희망을 품고 계속 썼다. 그것도 직장에 다니면서 말이다.


운 좋게도 수상작품이 수상집 형태로 출간되며 매해 한 권씩 내 이름이 들어간 책도 출간됐다. 2015년에는 드디어 내 이름 석자가 찍힌 단행본이 출간됐다(#유령과함께한일주일).역시 직장에 다니며 맺은 결실이다.


그런데! 왜!  작년에는 작품을 한편도 못쓴 것일까? 이 질문에 반드시 스스로 답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엔 영화 대사 같아 좀 오글거리는군요. 에헴. 다시...! 그래야만 새 다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여러 가지 이유들이 떠올랐다.


(1) 직장인이다.

건 절대 핑계가 되지 않는다. 대학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놓지 않았고, 졸업 후엔 쉬지 않고 일하던 나 아닌가(비록 메뚜기는 많이 뛰었지만).


습작 시절에도, 작가가 되어서도 늘 일을 쉬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이유가 아니다.


(2) 엄마가 됐다.

꿀순이를 임신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거다.


"너 이제 당분간 글 못쓴다?"

하도 듣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꿀순이를 낳고 이를 악물고 썼다. 2편에서  썼듯, 너무 오버한 게 탈이지만 글이란 건 여유가 있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극한 상황에서의 간절함이 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3) 게을러서

가장 답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렇게 정리하기엔 석연찮다. 또, '워킹맘' 더러 게으르다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닙니꽈?


그럼 왜 못쓴 것이냐....! 곰곰이 생각한 결과 답을 찾게 됐다.


"바로 '유튜버'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맞다. 작년 1월 재입사한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그동안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


2년 전에 이 곳에서 파견직(계약직)으로 일하며  내가 맡은 일은 '글'. 보도자료, 기관장 인사말 등을 비롯한 기관 전반의 글 작업을 했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착의 일환으로 나 역시 대상자가 되며 시험, 면접을 거쳐 입사했다. 그런데... 부서 배치 첫날, 나더러 사진 촬영영상 제작을 하란다. 심지어 월급은 폭삭 삭감했다.


"신이시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지금은 적응해서 이해한다. 납득한다.

그러나 그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심적으로 사기꾼에게 된통 당한 것 같았다.


퇴근해서 매일 울고, 일하다 화장실에서 울고 그랬다.(이 이야기는 내 또다시 다루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관두거나 일하거나 둘 중 하나. 글쓰기 지도 교사, 라디오 방송국 패널 등 많은 것을 정리하고 온 곳이었기에 쉬 관둘 수가 없었다. 또,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새 업무에 문외한 나를 위해 교육의 기회를 줬고 일대일 교육 등을 통해 사진 촬영 기술, 동영상 촬영 및 프리미어 편집 기술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글을 못 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맡은 일이 아주 새로운 '창작 활동'이었던 거다.


'오두막'이라 불리는 DSLR 카메라를 들고 출장을 다닌 것도 모자라 7월부터는 매주 1~2편씩 동영상을 촬영&제작해 회사 유튜브에 올렸으니 말 다했다.


체력도, 마음도 온전히 소진된 탓에 퇴근 후에 쓰러져 자고 주말에는 끙끙 앓곤 했다.


유튜버를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크리에이터", 창작자란 뜻이다. 작품 집필에 쓰던 에너지를 전혀 새로운 일, 그것도 영상 제작이라는 창작의 영역에 썼으니 다른 생각은 1도 안 날 수밖에.


"지금 내가 뭐 하는 걸까?" 현타오고, "왜 내게만 시련이!" 엄살도 피워봤지만 시간은 모든 걸 해결했다. 낯선 업무지만 반복했더니 익숙해졌고, 조금씩 여유도 찾게 됐다.


그렇지만 꼬박 1년 동안은 작품 생각도 안 날 만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뭐한 거냐?"스스로 꾸짖다가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다. 비록 집필은 쉬었지만 그 대신 영상을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창작을 놓지 않았던 셈이다.


그래, 나는 크리에이터다.


2020년이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회사에서 영상을 만들고, 둘째 임신으로 육아휴직에 돌입해야 하지만 올해는 반드시 새 작품을 쓰려고 한다.


동안 창작의 근육을 만들고 마음수련도 꾸준히 해왔다. 그렇기에 비록 내 위치는 작년과 변함없지만 분그때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나를 믿고 다시 나아갈 것이다.


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멈추지도 마라.


오늘도 나는 '워킹맘 작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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