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가만 보자. 대학 졸업 후 지금껏 쉬지 않고 일했으니 아마도 10년 넘게 일했다. 소소한 알바 경험은 빼더라도, 대학시절 휴학을 하고 방송국 구성작가로 일했던 경험까지 넣는다면 꽤 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은 4대 보험을 근거로 하는 바, 그럼 올해 8년 차 정도가 되겠구나.
아아! 갑자기 중고등학교 시절 나를 스쳐간 '알바의 경험'이 생각난다.
코딱지만한 페이로 엄청나게 부려먹던 사장, 손을 주물럭 대던 변태 사장, 돈이 비는 것 같다며 의심하는 사장... 정말 많은 사장을 만났다.
특별히 날 힘들게 했던 별난 손님은 기억나지 않는데 왜 유달리 이상했던 사장들만 기억날까? (언젠가 이곳에서 SSUL을 풀리라)
직장생활을 하며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났다. (아마 나 역시 타인에게 '별난 인간군상' 중 한 명 이리라.)
본인이 필요한 순간 도움을 받아 놓고, 내가 필요한 순간 외면했던 동료... 는 약과였다.
다른 직원이랑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하고, 화가 나면 존댓말을 쓰던 선임.
"주말에 뭐했냐?"라고 묻길래 "근교에 놀러 갔다 왔다" 대답했더니 "그래서 그렇게 집중력이 떨어지지. 난 말이야, 주말엔 집에서 푹 쉬어. 그래야 다음주에 일할 에너지가 생기지." 라며 허구헌날 갈구던 워커홀릭 상사.
또, 금~토로 이어지는 1박 2일 워크숍에 갔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촌동생 병문안 때문에 토요일 일찍 들어가겠다고 보고하자 날 붙들더니 2시간 넘게 "라떼는 말이야~.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회사에 출근했어"라는 어조로 혼내던 상사(아까 그 상사다).
이 역시 이곳에 내 반드시 SSUL을 풀리라!!!
그중에 이번에는 내가 겪은 '피해야 할 직장인 동료 5'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개취 주의)
(1) 사람 봐가며 대하기
한 마디로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유형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생존 욕구'가 있기 때문에 회사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자에게 꼬리를 내릴 필요가 있... 다.
문제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다. 상대의 나이, 신체적 특징 등을 고려하지 않고 약자에게 강자로 군림하려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건 '동료'라는 거다. 이 사람을 밟고 자기가 돋보이고 말겠다는 그 심리. 그렇게 높아져서 대체 무엇을 얻지? 승진? 상사의 예쁨?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순진한 얼굴의 탈을 쓰고 뒤돌아서서 나와 둘이 있을 때 빈정대며 말하는 본새를 지닌 동료라면 제발 부디 피하라.
(2) 잡아떼기
허언증 혹은 리플리 증후군에 가까운, 자신을 속이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인간은 단순히 자신이 한 말을 까먹어서 기억 못 하는 게 아니다.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말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받아들이고, (상상력과 욕구를 가미해) 대화의 내용을 재배열한다. 그리고 소문을 낸다. 그것도 순진무구한 얼굴로.
이런 사람은 따로 불러다 경고 하거나 설득해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또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거나("누가 그랬어요? 말해주세요.") "진짜로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라며 우기기 때문이다.
여차저차 설득해서 화해를 했는데 뒤돌아서면 다시 또 이상하게 소문이 나있다. 동갑이라면 "걔가 그렇게 따졌어"라거나 손윗사람이라면 "날 또 괴롭혔어"라고.
정말 환장하는 건 하지도 않은 말이 내가 한 말로 소문났을 때다. 정말 그런 말을 들었다고 본인을 속이다 보니 진실처럼 말하고 다닌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인간이니 피하자.
(3) 적반 하장
교양 있는 척 옳은 말을 해대지만 거울은 보지 않는 '자기 객관화가 1도 안 되는 유형'.
사회생활이라는 게 필연적으로 사람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교양서만 보더라도 동료로서 갖춰야 할 '에티튜드'가 나열돼 있다.
워낙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보니 진상도 에티튜드를 빠삭히 꾀고 있다. 문제는 인문서의 문제 대상을 타자화 한다는 거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되므로 자신이 진상 짓을 한단 건 모르고 오히려 비법을 전수받고 앉아있다.
상대를 머리 꼭대기까지 열 받게 해 놓고 상대방이 화를 내면 그 앞에서 "감정 조절 좀 하시죠. 대화가 안 되겠네요." 하며 교양서에 나열될 법한 에티튜드를 충고처럼 날리며 자리를 뜬다. 불타는 고구마 같은 지 얼굴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빈정대는 말투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가 안 되겠네요." 하며 자기 자리로 가놓고 5분도 안 되어서 다시 찾아와 "밖에서 나 좀 봐요"하는 건 무슨 심리인가. (너에게 지고 싶지 않아. 내가 버릇을 고쳐줄게!하는 심리)
이런 인간이랑은 절대 둘이서 얘기하지 말라. 인간 유형에 관한 인문서적을 보며 "흠, 역시 내가 제일 멀쩡해" 할 인간이니까.
원래 자기 객관화란 어렵다. 그래도 아니 10%는 자기에게도 원인이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4) 유치 찬란 똥 빤스
이 유형에는 보통 사회초년생들이 많다. 누군가의 험담, 자신의 고민, 비밀 등을 막 이야기해놓고 찾아와서 대뜸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제가 사람 잘 못 믿어서 그러는데 비밀 지켜주셔야 해요. 아셨죠?"
초등학생 때나 하던 짓이다.
문제는 이런 말을 여러 명에게 한단 거다. 그래 놓고 소문이 나면 찾아와서 "지난번에 비밀이라고 한 거, 소문냈죠?" 이런다. 자기가 범인이면서.
참 할 일없나 보다. 만약 나이 든 사람이 이러고 다니다면? 그냥 어딘가 모자란 거다.
(5) 피해자 코스프레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나아가 상대를 '가해자' 만드는 유형이다.
이를테면 동료가 바쁠 때 "내가 대신해줄게요." 하며 일을 가져가 놓고 다른 사람에겐 힘들다고, 나한테 일을 던졌다고, 쟤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말한다.
이 유형은 동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 욕구가 너무 강하다 보니 어떻게든 모든 일을 다 해야만 한다. 동료가 칭찬받거나 돋보이면 잠도 안 온다. 어떻게든 저 일을 가져와서 내가 돋보여야 한다. 당연히 상사 말도 잘 듣는 유형이다.
그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유능한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문제는 지지리 능력도 없단 거다. 애초에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여뒀기에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발악 수준으로 노력하지만, 이상하게 성과는 좋지 않고 몸은 고되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원인을 찾다 보니 원래 이 일을 해야 했던 동료 아무개가 떠오른다. "정말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그 사람을 가해자 만든다.
여기까지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반성한다. 누군가에게 나도 이 중 한 명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미안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부분 좋은 사람들과 일했다. 이중 한 가지 유형을 만났다 쳐도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 기대 이겨낼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주변에 모든 유형을 다 합한 X맨이 존재한단 거다.
개인적으로 경험해봐서 아는데... 와, 정말 파워가 막강하다. 이길 수 없다.
데려가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2번 유형의 사례처럼 '나만 나쁜 년'이 되어 있다. 계속 받아주고 우쭈쭈 하다 보면 3번 유형의 사례처럼 '적반 하장'으로 나온다.
심지어 어느 시골에서나 볼 법한, '점순이' 같은 이름이 어울리는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걔가 착한 줄 안다.
'언젠가 밝혀질 거야' 생각하며 세월을 견디지만 여기에 1번의 깐족거림과 '이간질'이 더해지면 사람 정말 환장한다.
얼마나 자기애가 부족하고 가진 게 없으면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걸까?
아마 모르긴 해도, 그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남과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왔을 거다. 가면을 쓰고 자신을 속여야만 살 수 있는 인생. 진심으로 가엽고 안 됐다. 그렇지만 그뿐이다. 우리가 걔의 부모는 아니지 않은가.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
헤세의 작품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 투쟁한다."
제발, 남의 알을 깨부수지 말고 본인 알이나 깨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안 그래면............ 마흔, 쉰, 예순...이 되어서 지독히 고독한 삶을 살 거다. 내 장담한다.(저주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