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육체노동하며 글만 쓰고 싶다'는 바람에 대해
나는 동화작가이자 워킹맘이다. 이것이 서른 일곱 살, 나의 정체성이다.
시상식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버스에서 "엄마, 나 시인이 될래요"했을 때 엄마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마도 격려를 해주신 것 같다.
가끔 친구랑 쪽지를 주고 받았는데, 쪽지 말미에 친구는 늘 '한사애: 한국 영화 사랑은 애국입니다'라는 글을 적어놓곤 했다.
그때 깨달았다. 빨리 빨리 아이템을 발굴해 빨리 빨리 기사를 써 올리는 게 나에겐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래도 어찌어찌 수료했고, 나는 기자가 아닌 홍보마케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렴풋 마음 속에서 '기자'라는 꿈을 지워버린 것 같다.
당시에는 웃어 넘겼지만 오래 오래 '동화작가'란 단어가 마음에 남은 것은, 나를 등떠미는 질책의 언어들 속에서 나를 인정하는 빛나는 단어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다녔던 직장은 달랐지만 하는 일의 범주는 비슷했다. 바로 '글'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 홍보마케터, 기자 사이를 오갔으니 '글쓰기' '작문실력'은 필수였고, 보도자료나 기사 같은 글을 거의 매일 쓰면서 알게 모르게 '글쓰기의 근육'을 다져 나갔다.
동화는 어른인 내가 '어린애들이나 읽는 유치한 책이겠지' 하고 넘길만한 텍스트가 전혀 아니었다. 동화를 통해 어린시절의 나를 마주했다. 아프고 상처 받는 내가 서 있었다. 나는 어린 개꿀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동화를 한 편, 한 편 지을 때마다 유년기의 상처가 아물며 조금씩 건강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작가가 되고 싶은데, 회사 관두고 글만 쓸까 봐요(글 쓸 시간이 없거든요).'
오늘을 살아나가는 건 숭고한 일이다. 밥벌이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인간으로 버티고 살 수 있는 힘이 된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놓지 말고 쥐고 있기를 권하고 싶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 그러면 된다.
놓지 않고 쓴다는 것. 지금 글을 쓰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다.
"당신은 운이 좋네요."
"당신도 운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