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오, 왼->오'로 읽으세요. 분노했다가,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학하며 잠 못 이뤘다가...다음날 용기내어 문제를 직면하는 것. 그것이 직장인의 용기.
# 2년 간 '전업작가'로 생활하다 복직하게 되었을 때 몹시 설레고 기뻤다.
매일 어디론가 출근하고, 일을 해서 성과를 얻고, 동료들과 차 한잔 하며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복직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운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첫 돌 된 꿀순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느라 고군분투하는 것도, 글쓰기 강사 일을 정리하는 것도, 퉁퉁 불은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낙담하는 것도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했다. (이 단계에서 거부하면 사회에 나갈 수 없으므로.)
좋은 생각만 하려 애썼다. 직장에 다닌다는 건 통장에 매월 차곡차곡 월급이 들어온단 뜻이다. 매일 단련하며 성장할 수 있단 뜻이다. 어쩌면 훗날 꿀순이가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 2년의 경력단절을 겪고 다시 사회에 복귀한 내가 무척 대견했다.
첫 출근을 하며 다짐했다. 상사,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열심히 일하겠노라고.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모두와 서글서글하게 잘 지내겠노라고.
그러나 그 다짐은 곧 무너지고 말았다. 직장은 내게 친절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나는 기대치가 너무나 높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리고 모두와 잘 지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 대학 졸업 후 꾸준히 직장이라는 데를 다녔다. 사회생활이 만만찮다는 것도,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특히 돌이켜보면 사람 관계가 어려웠다. 대학에서처럼 털털하고 술잘 먹는다고 친구가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일은 당연히 열심히 해야 했고 옵션으로 눈치나 요령 같은 걸 갖추는 게 매우 중요했다.
사람들이 형성해놓은 공기 속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녹아내려가는 것, 그것이 늘 어려웠고 고민이었다.
# 많은 이들과 섞이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나의 색을 없애는 것이었다.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 노력했고, 불만이 있더라도 '네' 하고 참았다.
사회초년생인 나의 위치는 보통 '막내'였으므로, 이러한 태도는 효과가 좋았다.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됐고 상사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아도 됐으며, 그 인내의 과정을 통해 업무적인 팁이라던가 인간관계의 요령 같은 걸 배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과연 이게 옳았나? 싶을 때가 있다.
# 20대의 사회초년생 시절을 지나 회사에 복귀하니 나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었고, 애매한 경력자의 위치였다. 상사들이 대놓고 부리기엔 나이가 부담스러운, 동료들이 술 한잔 하러 가자 말하기엔 퇴근 후 시간 내기 힘든 애엄마. 환영받기 어려운 위치. 나로서는 처음 겪는 포지션이었기에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이때, 내가 택한 건 '묵묵히'였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애써 노력하지 않았지만 좋은 동료들이 주변에 서너 명 생겼다. 그것으로 족했고, 든든했다.
하. 지. 만 늘 그렇듯 회사 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여기서 안심하면 저기서 다른 일이, 저기서 안심하면 여기서 일이 생기는 법이다.
#
뭐니 뭐니 해도 직장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평생 타인으로 살아오던 개체가 직장, 팀이라는 이유로 하루 8시간씩(혹은 이상) 같은 공간에 머물며 협력해야 한다.
매우 다른 개체가 만났으니 부딪힐 수밖에. 오고 가는 언어 속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오해가 미움을 만들어낸다. 어쩔 수 없는 다툼도 있지만 간혹 상처주기 위한 시비와 다툼도 있다. 이런 다툼에서는 좀처럼 이기기 힘들다. 둘 다 패배하고 만다.
#
나는 사람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은 없다고, 환경이 그를 그리 만들었고 진실한 대화를 나눠보면 선한 구석이 있다고 말이다. 그 생각이란 얼마나 순진했던가.
요즘 나는 나쁜 사람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나빴다가 좋아지기도,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므로.
분명 나쁜 사람은 있다. 악한 마음으로 상대를 해하는 것. 그 작업을 통해 스스로 돋보이고 싶은 건지 아니면 쾌감을 느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나쁜 사람을 바꾸기란 쉽지 않단 거다. 무한한 사랑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교화한단 건 얼마나 큰 교만이고 오만인가. 상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혹시나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지 점검부터 해야 할 것이다.
#
중요한 건 매일 싸우는 거다. 시기하고 시비 걸고 험담하라는 게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그것,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매일, 날마다 작은 싸움을 해나가야 한단 뜻이다.
나를 훼손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돌멩이 던지듯 무례하게 상처 주는 말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보통은 직장생활서 이런 일을 겪었을 때 뒤에서 험담하거나 자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그건 그 문제를 직면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에게 왜 그래요?"라고 묻는 게 두려워서 넘겨짚고, 미워하고, 욕하고, 회피한다. 그 순간을 후련하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인간은 같은 문제에서 넘어지지 않던가. A를 피했더니 A+가 다가오는 식으로 또 같은 문제를 만날 수밖에 없다.
#
나로서 잘 살기 위해서는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그 사람은 당신이 상처 받은 줄 (아마도) 모른다.
가서 이야기해라. 왜 나에게 그랬냐고, 그때 내 마음이 이랬다고. 내가 쥐고 있던 고통의 공을 상대에게 넘기는 것이다. 공을 쥐어야만 둥글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이 있으니 부디 친절히 쥐어줘라.
#
막상 문제와 대면하고 나면 눈덩이처럼 크게 보였던 문제는 티끌처럼 가볍고 작은 게 된다. 내 마음이 홀가분하다면? 잘 마무리한 거다.
만약 내가 상대에게 준 상처도 있단 걸 알게 되어 되레 마음이 무거워졌다면? 이것도 좋은 일이다. 적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일은 모면했으니까.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싸운다.
#
오늘도 소신껏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직장인들, 그대들을 힘껏 껴안아주고 싶다.
거대담론을 논하기 전에 행동으로 가슴으로 내 앞의 작은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