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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Feb 20. 2020

(10) 코로나19와 엄마의 전화

정말 TK를 떠나야 하는 게 아닐까?

왼쪽-> 오른쪽, 왼쪽 -> 오른쪽 순으로 보세요.
딸! 너굴 서방이랑 같이 회사 휴가 내고 꿀순이 데려서 얼른 제주 와라. TV 보니 심각하더라. 더 악화되면 못 내려올 수도 있어.


어제(2.20) 회사에서 일하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구 지역에 코로나 바이러스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참이었다. 문제는 31번 환자가 신천지 신도라는 점이었다. 열이 나는데 검사도 받지 않고 두 차례나 예배에 참석하고,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했는데도 나일롱 환자로 온 천지를 누볐다는 31번. 결국 지인 5명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켰고, 31번 환자는 슈퍼 감염자가 됐다.


#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 아니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그제까지만 해도 그저 나와는 먼 일이라 여겼다.


어제는 평소와 달리 마스크를 쓰고 근무했지만, 동료들과 "혹시 우리 회사에 신천지 교인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


점심 무렵,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도 큰소리로 '푸하하' 웃었다. 제주에 내려와 원룸을 구해 지내라는 말이... 현실적이기보단, 좀 허무맹랑해서 귀엽게 느껴졌다.


"농담 아니라니까! 너 임산부잖아!"


엄마의 말에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 흔한 항생제도 먹을 수 없는 임신 8개월 차 임산부. 바로 나다. 정말 혹시라도 잘못되면 큰일인데... 에이, 그래도 설마 별일 있겠어? 다시 내 자리로 갔고, 업무에 집중했다.


#

저녁이 될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카톡 그룹 채팅방에서는 확진자 이동 경로와 의심환자 발생 현황 등 정보가 수시로 올라왔다.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도 있었지만 '가짜였으면' 싶은 진짜 뉴스도 많았다.


상황은 긴박히 돌아갔다. 반나절만에 내가 사는 경산과 옆 청도까지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떴다. 그래도 '설마' 쪽에 희망을 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 직원의 아빠가 확진자네 식당에 갔는데, 그 확진자에게서 계산을 했나 봐. 아빠는 자가격리 중이고 직원은 퇴근시켰어. 우리도 방역하고 퇴근할 거야."


응? 뭐라는 거야? 갑자기 어지러웠다. 아니, 이렇게 한 다리 건너 접촉자가 생기면 안 되는데?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란 뜻이다.


회사 관련부서에 보고했다. 거주 가족의 일이 아니기에 일단은 지켜보자고 했다. 나 역시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업무로 끊어내 버렸다.


퇴근하는데 문자가 왔다. 꿀순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휴원에 돌입했다.


코로나 19로 시교육청에서 시내 모든 어린이집의 강제 휴원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일부터 차량 운행이 중단되오니 학부모님들께서는 가정보육에 힘써주십시오.


맞벌이 부부 가정은 피치 못할 경우 등원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목요일은 아빠가, 금요일은 내가 꿀순이를 보기로 했다.


#

오늘(2.21)은 유독 회사 일이 바빠 뉴스를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은 더욱 악화돼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일 21시경) 코로나 확진자는 총 104명이고, 대구경북에만 21명이 발생했으며, 청도에서는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포항, 전주, 제주까지 확진자가 늘고 있다.


"너 왜 제주 안 오냐? 꿀순이만 데리고 빨리 내려오라니까. 나중에는 대구 사람들은 제주에 못 오게 막을 수가 있어. 엄마 애가 탄다, 애가 타."


엄마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이번 통화는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어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랐다는 '대구를 우한처럼 위험시로 분류하고 통제해달라'는 글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상황은 긴박해졌다. 우리 회사만 해도 대구에서 열리는 회의 자체가 취소되고, 대구라서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한다, 타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와 시험에서 대구 지역 사람들의 참가를 금했다는 뉴스도 보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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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너무너무 무섭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확진자가 속수무책으로 느는 걸 보며 이젠 걱정을 너머 공포가 느껴진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싶지만 감염 속도를 보면 자꾸 비관적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왜 계속 이곳에 머무는 걸까? 그건 여기가 내 삶이고 일터이기 때문이다.


철없던 시절, 뉴스로 일본의 지진 소식을 듣거나 장마철 상습 침수 지역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저 사람들은 이사 가지 않을까? 또 지진이 나고, 장마가 되면 또 잠길 텐데... 참 바보 같다.'


이젠 안다. 이런 생각을 한 내가 정말 바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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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보니 깨다. 밥벌이를 붙들고 생계를 이어가는 게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굳이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숱한 고비를 만나고 미끄러워 넘어지는 게 인생이다. 그렇기에 가장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느라, 지금껏 붙들어온 삶을 놓을 수는 없다.


나 역시 엄마 말처럼 당장 짐 싸서 친정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회사에 일은 쌓여 있고 당장 서울 출장은 잡혀 있다. 료들 역시 그런 마음으로 회사에 나오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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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만 영화 <부산행>이 떠오르는 걸까? 무거운 배를 껴안고 고속열차에 올랐던 배우 정유미의 모습이 거울 속 내 모습 위로 자꾸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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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하기 싫다. 제발, 부디, 지금보다 더 위험하고 무섭고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미약하다. 새삼 약한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수밖에...


*여러분,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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