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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Feb 22. 2020

(11) 코로나와 어린이집 휴원

남편과 번갈아가며 육아하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린이집이 강제 휴원에 돌입했다. 그것은,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게 시련이 닥쳤다는 뜻이다.


사실, 어린이집에서는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를 위해 신청자에 한해서 보육을 맡아준다 했지만 단서가 있었다.


"걱정스러운 때잖아요. 혹시 모르니 건강이 염려되긴 하지만 별 탈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저희가 책임질 수는 없어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쭈뼛. 그래, 책임감!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어야지. 그리고 만의 하나라는 게 있잖아...(이하 각설)


다행히 강제 휴원은 익주 월요일 까지기에 남편, 내가 번갈아가며 휴가를 내기로 했다.(부모가 되면 뻔뻔해진다. 회사엔 민폐 캐릭터가 된 지 오래다.)


아무렴... 우리가 집에서 꿀순이를 보는 게 제일 안전할 것 같았다.


#

목요일, 남편이 꿀순이랑 집에 있기로 한 날.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참 부끄럽게도 나는 운전을 못한다. 면허 자체가 없다.(그러니 이력서 '자격증' 칸이 얼마나 빈약하겠나.)


택시비가 13.000원 나왔다. 나름 선방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도 없고 불안하다는 기사 아저씨의 한탄에 박자를 맞췄다. 우리 시부모님만 해도 자영업자다 보니 코로나 영향을 많이 받는 듯했다. 예약 손님이 죄다 취소해 타격이 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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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퇴근해서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임산부라서 차마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가려면 심지어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야 했다.(운전해서 가면 코스가 짧고 수월하다)


택시비 9,000원. 또 선방했다.


집에 갔더니 남편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나는 말없이 남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다 안다"는 듯.


나의 육아 동지여, 말 안 해도 안다. 집에 하루 종일 있으려니 무기력하고, 좀 쑤시고, 우울하고... 그 와중에 끼니는 금방 찾아오고, 꿀순이는 울고 놀아달라 보챘지? 그런데 잠은 잘 자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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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금요일, 바통 터치.


출근하는 남편이 말했다.


"누워만 있지 마. 집안일하고 음악 틀고 캔들 피워놓고 그러니 좀 낫더라. 힘내."


진한 동료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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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순이는 역시나 평소 등원하는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신나게 놀았다. 좀만 더 늦잠을 자주면 좋으련만.


10시까지 누워 있으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나도 벌떡 일어났다. 꿀순이랑 소꿉놀이했다가 책으로 기차를 만들었다가 그림책을 읽어줬다가. 오로지 휴식 시간은 꿀순이가 뽀로로를 시청할 때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안 된다. 한시도 틈을 안 주고 내 몸을 덮치는 우울함. 안돼! 벗어나야 해!


일어서서 음악을 틀고, 설거지를 했다. 빨래를 돌리고 밥을 안치고 거실을 정리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들을 정리해 넣었다. 정돈이 될수록 깔끔해지는 마음.


한편에서 다시 부지런히 어지럽히는 꿀순이는 눈 감아 주자. 너도 집에서 얼마나 갑갑하겠니.


#

1시가 넘자 슬슬 졸음이 온다.


"이 시간이면 회사에선 오후 근무를 시작할 때군. 맡기고 온 동영상 썸네일은 잘 제작되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고 있을 때, 꿀순이가 내 옆에 왔다. 그리고 둘이 함께 풍요로운 낮잠에 빠져 들었다.(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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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면 왜 이렇게 하루가 길고도 짧을까. 꿀순이를 데리고 밖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 무진장 탈출하고 싶지만 그럴 때일수록 꿀순이를 들여다보고 부지런히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리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육아를 할 때면 깨닫는다. 내가 얼마나 외향적인 인간인 지를.


꿀순이가 태어났을 때, '전업작가'였기에 나 홀로 육아를 했다.(독박 육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도 집에만 있으려니 우울했다. 지금처럼 의사표현이 활발하지 않은 아기는 배고플 때는 울고, 나머지 때는 기어 다니거나 팔다리를 바동거리곤 했다.


그런 아기를 내버려 두고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으면 아기는 이내 잠이 들었다.


그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놀아주지도 않는 나 같은 엄마는 천하의 나쁜 엄마라 생각했다. 그 생각에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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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란 챙길 수도 없는, 그런 우울함의 연속인 나날이었다.


그때 택한 게 산책이다.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유모차에 꿀순이를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가끔씩 아니 거의 매일 시댁 가게에 가서 아기를 맡겼다.


잠시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글을 끼적이는 그 시간이 내 숨통을 트여줬다. 피폐한 정신이 햇볕을 받으니 뽀송뽀송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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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금, 산책마저 할 수 없다. 전염병은 현대사회에 최악의 재난이 아닐까 싶다.


에 하루만 갇혀있으면 안다. 내가 얼마나 햇볕과 바람을 필요로 하는 인간인지를. 사람과 굳이 만나지 않아도 길을 걷고 있는 타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옆 자리에서 새어 나오는 수다를 듣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게 인간이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

토요일인 오늘, 남편과 나 둘 다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그리고 정말 무진장 갈등하다 마스크를 쓰고, 꿀순이에게도 마스크를 씌우고 밖으로 나왔다.


미세먼지 어플을 켰더니 '아주 나쁨'이란다. 뭐, 이까짓 것! 남편과 얼굴을 마주하며 말했다.


"코로나 사태를 보니 미세먼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


#

제법 한산한 카페 구석자리에서 이 글을 쓴다. 이 시각, 언론에서는 대구 경북 지역의 코로나 확진자 소식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제주에서 엄마는 계속 전화해댄다.(안 받았다 미안) 이곳에서 얼른 도망치라고. 심리적으로 이미 대구 경북은 봉쇄 지역이다. 재난 도시다.


'엄마, 엄마도 나보다 더 젊은 그 나이에... 아빠 돌아가시고 우리 안 버렸잖아. 고향도 아닌 제주에 남아 우리 돌봤잖아. 나도 어쨌든 여기가 삶터니 살아나가야지.'


그저 조용히 마음으로 읊조고 말았다. 어쨌거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육아는 계속된다.(*)


p.s


제가 전화를 받지 않자 엄마가 남편 너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말이 오늘 아침 대구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편이 모두 운행 중단 되었다네요. 찾아보니 정말 그렇네요. 사실상 봉쇄되었습니다. 앞으로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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