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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Mar 03. 2020

(16) 재택근무, 살이 빠졌다

육아와 병행하느라 입맛이 뚝!

왼쪽-> 오른쪽, 왼->오 순서대로 보세요


코로나 19로 어린이집 강제 휴원이 다시 또 연장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긴급 보육'을 신청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때마침 회사에서 2주 간 '재택근무'에 돌입한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사는 곳은 TK(대구경북). 전국 확진자의 80~90% 몰려 있는 지역이다. 회사에서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긴박하게 결정을 내렸다. (더군다나 지금 나는 임산부인 탓에 재택근무의 혜택을 우선순위로 받게 됐다.)


"휴,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렇게 생의 첫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다음날부터는 남편의 회사도 재택근무에 돌입, 일주일 간 하루 종일 온 가족이 함께 있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오늘로서 딱 재택근무 일주일 째를 맞이했다.


재택근무의 소감을 말하자면...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뭔 말이냐고?)


지난 주말, 무심코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몸무게가 1~2킬로 줄. 어. 있. 었. 다!!!


"에이~ 얼마 안 줄었네!"  수 있지만, 나는 지금 임신 9개월 임산부다. 살이 빠질 타이밍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흠흠). 경험상 임신 초중기에 살이 찌지 않더라도 막달에는 곤란할 만큼 몸무게가 는다. 그런데 이렇게 줄었다는 건.......... 내가 고생했단 뜻이겠지요? 암만. (눈물 좀 닦고)


'재택근무' 2주 차를 달리고 있는 지금,  느낀 게 참 많다. 그냥 직장인이 아닌 '워킹맘'으로서, 집에서 아이를 함께 돌보며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느끼기에 '재택근무'의 장점과 단점은 똑같다. (하나씩 써보겠습니다.)


1. 출퇴근하지 않아도 된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출퇴근 시간에 드는 품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나의 경우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보통 7시 20분 정도에 일어난다.(자가용으로 출근하기에 가능한 것. 서울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났다.) 씻고, 화장하고, 옷 입고, 꿀순이 등원 준비시키고..... 아침에 해야 할 리스트를 '일어나 밥 먹기' 정도로 깔끔히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이득'인가.


재택근무의 현장

그러나 이 지점에서 의문을 가져보길 바란다. 도대체 '이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출퇴근 시간에 드는 품을 줄인 대신 나는 무엇을 얻었나? 돌이켜보니 하나도 없다.


그건 내가 게을러졌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 최대한 미적거리다가 9시가 되기 전 후닥닥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회사 그룹웨어 프로그램에 로그인!(출퇴근 기록 시간이 표시된다.)


아침은 꿀순이만 대충 차려주고 나는 먹지 않거나 이마저도 대충 빵, 바나나 같은 걸로 때운다.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기에 늘어난 티셔츠, 트레이닝 바지 같은 걸 입고 편안한 자세로 일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편하다는 건 전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출근을 한다는 건 사회 속으로 편입된단 거고, 최소한의 에티튜드를 갖추고 거리에 나선다는 걸 뜻한다. 깔끔히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 모양을 단장한다. 한마디로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최소한의 '가면'도 쓰고 있지 않기에 '직장인'으로서 태도 전환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집중이 어렵고, 한없이 늘어지는 게 아닐까. (육아맘이라면 다른 이유로 집중이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대안) '재택근무' 2주 차에 접어든 지금, 평소와 똑같은 시간대 혹은 적어도 출근 한 시간 전에 기상합니다. 그리고 집안 환기를 시켜놓고, 샤워를 합니다. 비록 출근 때처럼 옷을 차려입거나 화장을 하는 건 아니지만 머리를 단정히 묶고 자리에 앉습니다. 그룹웨어에 출근 30분 전에 접속합니다. 출근을 하는 마음으로 태도를 변화했더니 회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비로소 '준비'가 되었습니다.


2. 보고 싶지 않은 동료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


엄청난 장점처럼 보이겠지만 얼굴을 보지 않는 대신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됐다.


그게 아니라면 '까똑 까똑 까똑' 쉴세 없이 울리는 메신저 알람 소리를 지겹게 들어야 하거나.


'재택근무'를 하고 보니,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효율적인 것인지 알게 됐다. 용건이 있으면 바로 부탁하거나 의논하면 된다. 그러나 대면할 수 없는 지금,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전화 혹은 메신저, 메일로 구구절절 용건을 주고받아야 한다.


심지어 일의 내용이 말로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는 작업이라면? 오 마이 갓. 번거로움은 배가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어도 차라리 빨리 보고 싶어 진다. (이 아이러니함!)


3. 틈틈이 볼 일을 볼 수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주부로서, 육아맘으로서 '재택근무'의 장점으로 꼽았던 일이다. 회사에서 업무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하고 차도 마시듯, 집에서도 빨래를 돌린다거나 택배를 받는다거나 하는 작은 볼일들을 업무 중간중간 틈틈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재택근무를 해보니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이러한 '시시콜콜한 잡일' 때문에 '재택근무'가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전지적 주부 시점'에서 얘기해보겠다.


# 심심한 꿀순이

일에 집중하려고 할 찰나, 꿀순이가 뛰어와 졸라댄다.

"엄마, 띰띰해! 띰띰해!"


놀면서도 꿀순이는 심심하단다. 아마 '놀이의 질'이 달라 그럴 것이다. 어린이집에 등원했다면 다채로운 프로그램 속에서 에너지를 무진장 불태울 시간인데, 집에서는 기껏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기' '독서' '뽀로로 시청' '소꿉놀이'다. 이 중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싱크대에서 그릇을 꺼내 쌓는다


일을 해야 하는 엄마는 책을 읽어주는 '척' 했다가 바로 또 책상 맡으로 도망치기 바쁘다.


혼자서 온 집안을 어지럽히며 놀아보지만 그럼에도 꿀순이의 에너지는 '가득'이다. 그렇다 보니 점심이 되어도 낮잠을 자지 않는다. 심지어 하루에 똥은 두 번 싸고, 쉬야도 여러 번 한다. 우유를 바닥에 쏟아 첨벙첨벙 한 날에는 옷을 새로 갈아입혀야 한다. 아아! 이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제대로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건 애교쥬


# 화가가 된 꿀순이

모처럼 꿀순이가 조용해 업무에 집중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핵폭탄급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케치북 외엔 낙서하지 않던 꿀순이가 크레파스로 벽에 그림을 그 거다! 급한 마음에 전지를 사다 거실 바닥에 큼직하게 붙였다.


그 위에서 낙서를 하던 꿀순이가 자꾸만 어딘가 숨어 '킥킥' 거린다. 달려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몰래 숨어 낙서하고 있다.......  가슴이 철컹. 과거, 포부도 당당했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얀 벽지에 로망이 있던 나는 이 집에 이사하며,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얀색 벽지로 도배를 했더랬다.


"뭐, 아이가 낙서하면 그때 다시 도배하면 되죠 뭐."


이런 쿨한 말을 던(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 네 똥 굵다...). 그러나 아이와 살면서 '다시 도배'하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한 10년 뒤에나 도배할 수 있을까? 그래, 이럴 땐 마음을 비워야 한다.


렇지만 꿀순이에게 '규칙'은 알려줘야 할 것 같다. 아무 곳이나 낙서하는 걸 집에서 '허용'했다가 밖에서도 이렇게 가리지 않고 낙서할까 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엄하게 혼내고 대안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우리는 번거롭고 힘들지만 계속 반복해서 가르쳐야 습관이 돼."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재택근무' 일주일이 지난 지금, 꿀순이의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캔버스도 방문, 책상다리, 책꽂이, 침실 벽으로 진화했다. 혹시 우리 꿀순이가 화가의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식으로 현실을 합리화하다가도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에너지가 너무 많이 남아돌아 이런 '기행'을 부리는 게 아닐까?... 현명한 부모가 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4. 식비를 아낄 수 있다


회사에서 식사를 하려면 '돈'을 써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구내식당 식비가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래도 가끔씩 동료들과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럴 때 7,000~8,000원 쓰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재택근무를 하면 평소에 먹던 밥을 먹으면 되니 '식비'를 아낄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 혹시 있나요?


언뜻 보면 가능할 법한 일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쌀독이 '화수분'이 아닌 이상 쌀이 무섭게 떨어진다. 냉장고 속 식재료는 어떻고? 사다가 채워놓으면 또 떨어진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내가 만든 '집밥' 따위 먹기 싫어진다. 셰프의 피가 없는 이상, 맛도 없을 뿐더러 요리하기도 지겨운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입맛이 뚝뚝 떨어진다. 솔직히 에너지를 소모해야 채우지, 집안에 갇혀 있다보니 배도 고프지 않다. 결국 꿀순이만 차려주고 본의 아니게 나는 '1일 1식'을 하게 된다.


그럼 더 식비가 줄겠네?라고 생각하겠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배달 음식'이다. 커피도 먹어줘야 하고, 디저트도 생각나고....... 결국 배민 딜리버리를 이용해 이런저런 간식을 주문한다. 그렇게 야금야금 돈을 쓰다 보면 평소 한 끼 식비의 두세 배를 쓰게 된단 말씀. 자괴감은 덤이요, 낭비는 기본이로다.




결국은 태도의 문제


'재택근무'를 통해 내가 느낀 건 이거다. 결국은 태도의 문제라는 것.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마음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이 시간을 통해 느낀 게 있다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라는 공간에 나가 일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사회적인 안전망 속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결국 '재택근무'도 일이다. 다른 변수로 일에 집중할 수 없다면 '야근'이라도 해야 한다. 낮 동안 아이 때문에 일을 못했다면 저녁에 하는 수밖에. (흑흑)


그래도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집에 갇혀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말고는 코로나 19를 피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이때, 그나마 나는 '재택근무'라는 배려를 받았다.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임산부임에도 회사에 출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또, 이 시간에도 의료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인 엄마들이 있다.(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일도, 육아도 100% 완벽하게 끝낼 수는 없지만 '양립'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가정에서 안전하게,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아이가 그려놓은 낙서를 지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또,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도 감사한 것 투성이다.


오늘도 난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출근하고 퇴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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