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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Feb 28. 2020

(15) 나도 자연분만을 꿈꿨다구욧

출산은 '복불복'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일

왼쪽->오른쪽, 왼->오 번갈아가며 보세요
나는 내가 당연히 자연분만을 할 줄 알았다.
만삭이 될 때까지 전혀~ 의심하지 않던 일이다.


마른 체질도, 작은 엉덩이도 아녔고 임신 기간 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 날아다닐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으니까. 많이 걷기도 했고(걷는 게 순산에 좋다나 뭐라나.) 남편과 유튜브를 보며 호흡 운동을 하기도 했다.


또, 친정엄마에게서 '자연분만'의 좋은 점을 하도 많이 들어 세뇌된 건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출산 시 나오는 성분이 아기에게 참 좋다더라, 자분이 아기 애착에도 좋고 엄마 건강 회복에도 좋다 등등.(친정엄마는 아이 넷을 자분으로 낳았다. 그러나 비밀이 있었으니... 글의 끝에 공개하겠다.)


자연분만 계획은 공포의 '내진'을 마치고 틀어졌다.


"속 골반이 작네요. 수술 언제 할까요?"


선생님의 말에 남편과 나 둘 다 졌다. 설명도 없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닌가요?(원래 쏘쿨한 분)


"네? 자연분만하면 안 될까요?"

내 말에 의사가 답했다.

"뭐... 고생할 자신 있으면 해 보세요."


고민해 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를 돌렸다.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병원에서 제왕절개를 권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당연하듯) 자연분만을 한 엄마들은 '다른 병원서 진료를 받아봐라. 무조건 자연분만이 좋다' 했고, 제왕절개를 한 엄마들은 '다 이유가 있다. 수술도 나쁘지 않다' 했다.

수술이 병원에 금전적인 이익이 되어 권하는 걸까? 의심이 되어 맘 카페에 문의 글을 올렸다. 모 병원 k선생님이 제왕절개를 권하는 데 믿을 수 있는 거냐고. 그러자 댓글들이 달렸다.


"요즘 수술해도 병원 돈 많이 못 벌어요."

"그 병원 자연분만 주의 병원이에요. 수술 권했다면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나는 1월 8일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다.



1월 4일 목요일. 남편과 저녁으로 청국장을 먹고 간식으로 자몽 통조림을 조금 먹고 여느 때처럼 거실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모, 동화 발간 지원사업에 제출할 서류 준비 중)


11시가 지나자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이전과는 다른 듯 같은 듯. 콕콕 찌르는듯한 통증.


"으~아파."

인상을 쓰며 서류 작업을 했다. 통증은 나아졌다가 괜찮아졌다가를 반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진통이었다.)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누웠다. 가만히 누워서였을까 통증이 더 심해졌다. 나는 그제야 진통 어플을 켰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출산 후기를 보고 앱을 알게 됐다. 경험자의 후기에는 "아프다고 응급실부터 가지 마라. 자궁문이 열리지 않으면 비싼 진료비만 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앱을 열고 통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주기를 체크해 어떤 단계인지 알려준다. 그 결과, 가진통이고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할 때니 바로 병원에 연락해보라는 메시지가 떴다.


마침 화장실에 갔더니 선홍색 피가 묻어났다. 이건 말로만 듣던 '이슬'? 병원에 전화했더니 뭐 하냐고 빨리 오란다. 새벽,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산한 거리를 달렸다. 5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진을 하더니 "자궁문이 20% 열렸는데 아기 머리는 둥둥 떠있다."라고 했다.



"좀 틀긴 하겠지만 자연분만해보실래요?"


간호사의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신기하게도 응급실 침대에 누우니 통증이 배가 됐다.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수술 들어가려면 마취를 해야 하는데 금식을 안 했기 때문에 6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또, 새벽에야 마취 선생님이 오세요."


네? 6시간이요? 또르르....



출산을 비유하는 수많은 표현 중, 개인적으로 '틀다'는 말이 가장 싫다.
소름 끼치고 무서워서 그렇다.


'틀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주리'. 조선시대, 고문법 중 하나다. 허벅지 사이에 긴 나무막대 두 개를 넣어 교차하며 쪼는 거다. 사전에서 '틀다'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방향이 꼬이게 돌리다'라는 뜻이 나온다.


나 역시 6시간 정도 '틀어본' 결과,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뭐랄까. 칼로 자궁을 막 긁고 도려내는 느낌? 신기하게도 진통이 딱 멈출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은 하나도 안 아프다. 그러나 곧 엄습하는 통증. 아마 주리를 튼다면 이랬을 것 같다.



출산 3대 굴욕이라 불리는 '내진' '관장' '제모'를 순서대로 했다.


개인적으로 통증 탓에 '내진'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제모'도 마, 맨 정신이 아니었기에 부끄러울 것 하나 없었다. 고통스러웠던 건 '관장'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속을 비워야 하기에 설사약을 먹고 시원하게 볼일을 봐야 한다.


"약 드시고 5분 참다가 들어가셔야 해요."


내 생에... 5분이 이토록 긴 줄 몰랐다. 약을 먹자마자 배가 아프며 뿌식뿌식 신호가 왔다.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3분 만에 화장실로 뛰어갔고 뿌지지치지찌치지지직, 한바탕 볼일을 보고 나왔다. 이윽고, 또 신호. 다시 뛰어가서 뿌지지찌치치지치칙. 정말 괄약근 조절이 안 된다는 게 이리도 힘들 줄이야.



한바탕 진을 뺀 후에는 통증이 배로 뛰어올랐다. 마침내 옆으로 등을 구부린 채 진통이 올 때마다 벽을 긁어댔다. 끼익끼익.


"으으으으으으."


내 모습을 사진에 담던 남편이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고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게 힘이 돼... 기는커녕, 거추장스럽고 마! 짜증 났다. 그래서 손을 쳐내고 말았다.(미안해. 이 순간,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야.)


의사 선생님이 제왕절개를 하자고 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이 이거였다.


"엄마라면 출산의 고통은 느껴봐야지!
무슨 자판기에서 캔커피 꺼내는 것도 아니고 수술이야?
진짜 이상하다."


이 말을 이토록 후회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러분, 병원에서 수술하라고 하면 그냥 하세요.

(14회에서 밝혔듯이 나는 경험주의자다. 맛을 봐야만 안다.)


과연 꿀순이는 효녀였는지 3일 일찍 세상에 나오며 엄마에게 출산 전후의 고통을 풀 패키지로 선사했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무통 주사가 들어갔다. 새우 포즈를 하고, 척추를 통해 주사를 넣는다. 진통이 심했음에도 주사 역시 꽤나 아팠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무통 천국'이라는 말은 가히 진리였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때, 당직이신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아니! 저분은 스타 홍?"


병원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의사가 내 앞으로 걸어오는 거 아닌가? '스타 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 일찍 남편에게 대리 싸인을 시켜놓고(이 병원은 당일 접수 진료가 원칙) 반나절 기다려야 겨우 진료를 볼 수 있다던 전설 속 그분!


기다리는 걸 싫어해 미용실도 잘 안 가는 나는, 가장 인기 없는 새내기 여자 선생님을 택했더랬다. 그런데 꿀순이 덕에 인기 스타 선생님께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꿀순아, 너는 정말 주도적인 아이구나. 태어날 날과 의사까지 택했으니...."


스타 홍 얼굴을 보니 그제야 안심이 됐다.



하반신 마취를 시작했다. 곧, 수술에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마취를 잘 받는 타입인 건지, 금식 기간이 부족하다 여겨 약을 많이 넣은 건지... 마취가 무진장 잘 됐다. 약발 지대로 받은 거다. 하반신뿐만 아니라 상반신까지 마취가 되고 말았으니까. 혀가 움직이지 않더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서때니, 수니 안셔져여 개차는 거가여?
(선생님 숨이 안 쉬어져요. 괜찮은 건가요)"


결국 인공호흡기를 쓰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몽사몽. 어떤 아기가 내 앞에 왔다가 사라진 것도 같고, 수술실 전등이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바탕 꿈을 꾸고 일어나니 봉합수술이 진행 중이었다.


"아기 나왔어요?"


내가 묻자, 선생님 왈.


"네! 태변을 조금 먹고 나왔지만 아주 건강합니다. 아까 아기 얼굴 보여줬는데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 꿈이 아니었구나.


선생님의 결정적 한 마디.


"근데 임신기간 동안 빵 많이 드셨죠?"


"네? 네...." (나는 빵순이)


그런데 왜 하필, 마취에게 깨어난 사람에게 저런 걸 묻는 걸까? 혹시 꿀순이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나온 걸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수술실서 나왔다. 내 다음에 스타 홍을 만나면 꼭 물어보리라...



남편이 내게 사진을 보여줬다.


"우리 아기야."


꿀순이의 첫 인생은.... 강부자 할머니였다. 그도 아니면 관측사 석조 미륵보살.


꿀순이 첫 인상

"누구 닮았어? 우리 아기 아니야." (부인해서 미안해)


세상에 나오느라 고군분투 한 아기의 얼굴이 예쁠 수는 없다. 양수에 퉁퉁 불은 얼굴은 꼭 '노인' 같았다. 그런데 그 사진을 지금 보면 참 예쁘다. 사랑스럽게 자란 꿀순이가 이미 내 앞에 있기에 그 시절의 꿀순이는 그저 '애벌레'에 불과했노라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젠 정말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예쁘다.



우스갯소리로 '제왕절개'는 (출산 고통) '후불제'라고 한다.


자연 출산한 엄마들이 좌욕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말고는 (대부분) 거뜬히 자리에서 일어나 활보한다면, 제왕 절개한 엄마들은 소변줄을 꼽고 종일 누워 있어야 한다. 걷기 운동을 해야 회된다고 하여 일어나지만 배를 가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된다. 걷기조차도 수술 후, 만 하루~이틀 이상이 넘어야만 가능하고, 이전에는 소변줄에 의지한 채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


출산 후 오로(몸속의 찌꺼기들이 나오는 것)가 배출되는데 누워서 그걸 감당하다 보니 패드(기저귀)를 차야하고, 그것을 보호자가 계속 갈아줘야 한다. 또, 매일 수술 부위를 소독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던 건 출산 전 맛봤던 '진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끔한 맛을 이미 본 후여서 '이까짓 것'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무통주사 빨' 역시 한 몫한다. 링거 아래로 버튼이 하나 달려 있는데 아플 때마다 누르면 마약성 진통제가 나온다. 단, 정해진 양이 있기에 빨리 쓰면 그만큼 진짜 아플 때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아꼈다가는 똥 된다. 그러니 적절한 때에 눌러서 쓰도록 하자.



신생아실 면회 시간에 맞춰 아기를 보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동식 링거대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걷는 나를 누군가가 안쓰럽게 보고 있다. 힐끔 쳐다보니 나처럼 입원복을 입고 있는 엄마와 지인.


"너는 왜 저거 안 해?"

지인이 속삭인다.(다 들리거든요?)


그러자 그 엄마가 대답한다.


"응, 저 서람은 제왕절개라서 그래."

당당한 저 목소리! '자연분만'한 자의 여유랄까? 처음엔 기분이 나빠 뒤통수를 째려줬는데 나중엔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일부러 제왕절개 한 거 아니에요. 저도 자연분만을 꿈꿨다고요!



자연분만 엄마들보다 평균 3~4일 더 병원에 입원했다가 조리원에 갔다.
조리원에 갔더니 또 다른 미션이 있었다. 바로 '수유'.


조리원 원장님의 마법 같은 마사지를 받은 후 '퐁퐁' 유선이 뚫렸다. 모르긴 해도 '지상 유전'을 발견한 사람은 이런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메마른 땅 위로 기름이 퐁퐁 샘솟는 풍경, 그것은 유선이 뚫린 산모의 모습과도 같다.


'젖력 발전소'가 작동하자 이후로 내 몸은 기승전 '젖'을 위해 존재했다. 새벽이고 뭐고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수유 콜', 때가 차면 불어 오르는 , '드륵드륵' 쉴 새 없이 돌려야 하는 유축기. 밥, 간식, 유축, 수유. 밥, 간식, 수유. 출산 이후의 무한 루트.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는 엄마에게 그다지 중대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솔직히 출산만큼 '복불복'인 게 있을까 싶다.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가 있어도 (나처럼) 몸이 안 돼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모든 게 맞아떨어졌는데도 아기가 탯줄을 목 감는 등 응급상황이 발생해 긴급 수술에 들어갈 수도 있다. 누군가는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진통 끝에 자연분만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신이 아닌 한, 출산 과정을 택할 수 없으므로 그저 마음 편히 병원의 지시에 따르자. 엄마도 아기도 안전한 게 최우선이니까. 그리고 그저 운명에 맡기자. 출산 후에 누군가는 훗배앓이, 젖몸살 등으로 죽을 만큼 고통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저 무난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내가 후자였다. 그러나 둘째는 어떨지... 무섭)


과거 엄마들은 '자연분만'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 그래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계속 '틀어야만' 했다. 조선시대를 그린 TV 드라마 속 출산 장면을 기억하는가. 산모는 입에 천 뭉치 같은 걸 물고 천장에 달아놓은 기다란 줄을 잡고 힘을 준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안 하면 속 골반 작은 엄마가 머리 큰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거다.


아기를 낳고 엄마에게 어떻게 넷이나 낳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죽다 살았다"라고 말했다. 체형이 유전이라면 엄마 역시도 작은 골반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아기 낳을 때 너무 힘들었다며 하루 넘게 고생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가여운 우리 엄마.)


반면, 나무 막대기처럼 야리야리한 몸에 작은 체구를 지닌 시어머니는 단번에 아기를 낳았다고 하니 역시 출산과 체형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자만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그저 운명에 맡기도록 하자.


너무나 다른 각자의 삶만큼이나 임신, 출산의 과정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일은 아주 사적인 동시에 경이롭고 위대한 일이다. (*)


(덧)

-처음으로 노트북을 통해 글을 썼는데 불편하군요. 글의 분위기도 괜히 진지해지는 것 같고 어색합니다 흑흑. 그냥 다음부턴 기존대로 폰으로 써야겠습니다.

-또 TMI, 가볍게 썼던 글이 이토록 길어지는군요.

- 4월에 둘째를 출산하는데 그때는 어떤 기분일지 무척 떨리고 무섭군요. 다시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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