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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Feb 26. 2020

(14) 사이비 종교에 끌려갈 뻔한 ssul

기차여행 목적지가 신입 신도 교육장?

요즘 이단 '신천지'가 핫이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널리 널리 퍼뜨린 장본인들. 성경입맛에 맞게 해석해 본인을 하느님이라 말하는 할배를 추앙하는 사이비 종교 말이다.


잘못된 믿음으로 죄를 짓는 신천지보며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깨닫는다. 그리고, 20대 중반 어리숙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사이비 종교에 끌려갈 뻔했던 내 모습이...


때는 바야흐로 20대 초중반 무렵. 그때 나는 대학을 1년 간 휴학하고 모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내 꿈은 기자, 작가... 하여간 글 쓰는 사람이었고 "생생한 글을 위해서는 어떤 경험이든 몸소 겪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즉, 경험을 해야 깨닫는 인간이었던 것.


그게 모든 것의 발단일 줄이야...


당시 나는 에너지가 과다한 청춘이었다. 속은 그늘지고 곪았는데 겉으론 지나치게 씩씩한 사람.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받아야만 안심이 되었던, 그래서 사람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분별조차 못했던 천둥벌거숭이.(자기 고백은 이만하고 본론으로.)


#

어느 날, 방송국서 일을 하는데 어떤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는 내게 주말 동안 1박 2일로 함께 기차여행을 하자고 했다. 나는 지인을 제쳐두고 별 왕래 없는(실은 잘 모르는) 내게 여행을 권유한 언니가 몹시 고. 마. 웠. 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떤 언니'라고 하는 이유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큼 우린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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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처음 만난 건, 제주로 가는 여객선 안이었다.  '씨네키드'였던 나는 대학생이 되자 매년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며칠 동안 릴레이 영화를 보고, 밤엔 부산 바닷가에서 맥주 한잔 하는 낭만 때문에 거의 매년 부산을 찾았다(외가댁이 있는 곳이라 친근한 도시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고향 제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언니를 만났다. 당시 다인실에 묶고 있었는데 아저씨, 아줌마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기에 승무원에게 항의를 했더니 미안하다며 2실로 옮겨줬다. 내 뒤로 참하게 생긴 언니가 따라왔다.


행운을 나눠가진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우린 경계를 풀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분명) 내가 먼저 나의 이야기를 막 풀었으리라. 당시의 나는 사람 사이의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서 실없는 말을, 그것도 내 얘기를 막 내던는 사람.


나는 늘 그런 식으로 타인을 대했다. 상대의 긴장과 경계를 풀어 반드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사람 사이의 신뢰란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참 많은 말을 나눴지만 내가 언니에 대해 얻은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 언니가 나보다 나이가 많고, 부산에 살고 있으며, 화장품 외판원으로 일 한다는 것 말고는.


이후에 몇 번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애틋하게 나눌 게 없었기에 기억에서 서서시 잊히고 말았다.


#

몇 개월이 지났을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개굴아, 너 기차 한 번도 안 타봤다고 했지? 나랑 1박 2일로 기차여행하지 않을래? 숙소, 식사 비용은 내가 다 마련할게 너는 기차 삯만 내면 돼."


그 말을 듣고 의심부터 해야 했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여행이야?' 하고. 하지만 나는 일말의 의심마구 밟아버렸다.


안돼, 그러지 마. 실례야. 네가 얼마나 생각나고 좋았으면 그런 얘길 했겠니?


이런 생각에 이어, 여행을 권유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볼 거란 짐작을 하면서도 용기를 낸 언니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언니, 난 언니를 의심하는  사람들과 달라요 하고. (쓰다 보니 당시의 난 심각한 애정결핍형이었군요.)


그렇게 나는 너무 쉽게 꾐에 넘어가 버렸다.


#

며칠 뒤, 나는 배낭을 메고 한껏 멋을 부린 채 부산역에 서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낡은 봉고차 한대가 멈추더니 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웬 남자가 운전하고 있었고, 언니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뒷자리에 올라탔다.


"이 분은 내 선배야. 예쁜 동생이 온다기에 보고 싶다고 해서 소개해주러 왔어. 집에 가기 전에 좋은 다가서 바람 좀 쐬자. 선배가 데려다주신대."


그날은 언니네서 하루 묵고, 다음날 새벽 일찍 기차를 타기로 되어있었다.


"정말 인상 선하고 좋으시네요. 벡스코 새로 생겼는데 가볼까요? 차도 마시고."


남자가 말했다. 내 인상이 선하고 좋다고? 하아, 이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남자는 엄청난 달변가였다. 벡스코로 향하는 남자에게서 도에 대해, 조상에 대해, 우주의 창조 원리에 대해 들었다.


대번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내가 속았구나." 하는 촉이 왔다.


"이러쿵저러쿵해서 내일 00에서 신입 신도 교육이 열리는데 개굴 씨 같은 좋은 동생이 있다고 소개해준 데서 보러 왔어요."


헉. 뭐라고요? 그럼 기차여행 목적지가 신입 신도 교육장? 언니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 개굴아. 너 기차 한 번도 안 타봤다며... 그래서 여행겸 좋은 곳에 가자고 초대한 거야."


#

부글부글 화가 났지만 침착해야 했다. 나는 열심히 듣는척하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장 답이 왔다.


"헉. 너 그러다 큰일 나. 이따 차에서 내리면 당장 부산 이모한테 연락해."


자꾸만 남자가 백미러로 나를 살폈다. 감시의 눈길이었다. 나는 폰을 주머니에 넣고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문제는... 남자가 달변가였다는 거다. 예전에 나는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멍청하기에 저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걸까?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남자의 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지니고 있었고 어느 정도 수긍 가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사이렌이 울렸다.


'신입 교육 끌려가면 넌 끝이야. 세뇌당하고 말 거라고.'


벡스코에 도착했다. 맛있는 차를 사주겠다더니 날 끌고 간 곳은 자판기 앞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와 남자, 둘 다 차림이 남루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빨리 도망가거나 sos 전화를 걸어야 했다. 차마 이모에게는 연락할 수 없었다. 내가 부산에 온다는 걸 가족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모는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분명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말 거였다.


'장실'이라는 말을 꺼내자 남자의 눈빛이 달라졌다.(이런 건 잊히지 않는다.) 그러곤 언니에게 신호를 보냈다. 언니가 내 옆에 밀착하더니 화장실까지 따라와 문 앞에서 나를 감. 시. 했. 다. 오싹했다. 결국 전화는 포기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

자판기 커피 한잔을 마시고 그들의 감시를 받으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 도착한 곳은 어느 외진 마을 여인숙 앞이었다.(아직도 그곳이 어딘지 모른다)


언니가 남자더러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부모님이 여인숙 하시거든."


낡고 쾌쾌하고 어두운 곳. 여인숙의 인상이 그랬다.


언니가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줌마에게 날 소개했다.


"엄마, 내가 말한 개굴이에요."


내가 누군지 아줌마도 아는 눈치였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이 종교를 먼저 믿은 건 부모님이라 했다. 자신은 그런 부모님이 밉고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젠 너무나 감사하단 말까지 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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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방문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어둡고 좁고 퀴퀴한 방. 이불가지가 아무렇게나 깔려 있고 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누추한 방.


"잠깐 기다릴래? 아까 그 선배 좀 만나고 올게."


언니가 나가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길 탈출해야 한단 거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상 위에 놓인 노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일기장이었다. 나는 마치 사이비 종교의 실태를 취재하는 기자가 된 것처럼, 그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명감에 빠졌다.


일기장을 들췄다. 그 안에는 사이비 신도의 광적인 신앙고백이 가득했다. 제사를 지내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을 갇다바치는지, 자신이 얼마나 종교를 믿고 의지하는지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그날 알았다. 갈급한 자의 간절한 기도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지를.


나는 일기를 몇 편 읽고, 몸서리치며 그제야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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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나선 순간, 진짜 고비가 남아 있었다. 여긴 언니네 부모가 운영하는 여인숙이고, 엄마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카운터의 작은 창 아래를 기어서라도 어서 통과해야 했다. 뻔뻔하게 "저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려고요."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다 뒷덜미가 잡혀 감옥 같은 방에 감금될 것만 같았다. 무서운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는 기어서 그곳을 나갔다.


문밖을 나선 후에는 큰길을 향해 미친 듯 내달렸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 길가는 깜깜했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저 앞에 편의점 하나가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당시엔 모바일 인터넷 상황과 GPS 기술이 원활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청년은 막 버스가 끊겼고, 이곳이 부산에서도 외곽이라 시내로 나가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하는 수없이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그리곤 친구에게 전화해 하루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떠들었다. 친구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빨리 어른들 한터 연락해서 이모네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큰일을 만들기 싫어 다음날 제주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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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내가 향한 곳은 부산 남포동.


부산까지 왔는데 그냥 내려가기 억울하고 아쉬웠다. 어차피 그 언니는 이미 사이비 종교 교육장으로 가는 기차에 타 있을 터였다.


좌판과 매대가 빼곡히 늘어선 쇼핑거리를 구경하며 눈요기를 하던 그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낯익은 남녀가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언니와 선배라는 남자였다....


나는 곧장 뒤돌아서서 미친 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언니는 내가 부산에 오면 남포동을 찾는단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찾으러 아니, 잡으러 온 것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큰 건물 카페 귀퉁이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바로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계속 부산에 있다가는 뒷덜미를 붙잡힐 것 같았다. 끌려갈 것 같았다.


#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다. 사람을 덜컥 믿은 잘못이 우선이고, 탈출(?) 후에 바로 부산을 떠나지 않은 게 두 번째 잘못이다.


운 좋게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당시의 난 그 경험을 마치 훈장처럼 여겼다. 미래 작가이자 기자로서의 경험치를 올려준 귀한 경험. 나쁜 경험도 결국 작가에겐 자양분이 될 거라... 합리화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시간이 흘렀다. 열 살이나 더 먹은 나는 여전히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여는 편이다. (쉽게 안 변하더라)


그렇지만 이제는 갑작스러운 호의를 의심할 줄도 알고, 속내를 감출 줄도 안다. 세상이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을 백 프로 믿지도 않는다. 헛된 것에 미혹된 가엽고 어리석은 이들이 세상에 꽤 많단 것도 안다.


코로나 19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단 신천지의 정체를 접하며 젊을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미혹의 손길은 약하고 어린 마음을 틈 타 단숨에 기습한다.


코로나 확진을 통해 커밍아웃하게 된 신천지 신도들 중에는 공무원, 대학생, 교사 등 어엿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한가득이었다.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도 마음 한 구석엔 그늘과 약한 부분이 있을 거다. 헛된 구원을 향한 갈망이 결국 그 틈을 뒤집고 자리한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한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문득, 언니와 선배라는 남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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