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꿀순이가 길을 잘 닦은 덕이라니요?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임신 32주 4일 차가 됐다. 출산까지 딱 59일 남았다.
또, 변하는 몸에 너그러워진 덕에 톡 튀어나온 배꼽도 귀엽게 보인다. 배꼽아, 더 많이 귀여워해 줄게.
"아이고, 행복 끝. 고생 시작이네. 아들이 얼마나 별난데... 에너지가 장난 아니야 각오해."
"아들 키우는 게 수월했어. 딸보다 덜 예민하거든. 또 한 번씩 얼마나 심쿵한지 몰라."
아니, 어쩜 이렇게 반응이 다르단 말인가?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별보다는 그저 아이들의 기질이 저마다 다른 걸로.
열이면 열! 모두 잘 됐다고 칭찬을 하는데도 곱씹어 보니 남아선호 사상이 짙은 너무나 이상하고 기괴한 말들이었다.
(1) "첫째가 복덩이네"
처음에 꿀순이가 태어났을 때 온 가족이 다 꿀순이더러 "복덩이~복덩이~"했다. 존재만으로도 축복이었으니까.
(2) "고렇지! 시집갔으면 아들 하나는 낳아줘야지!"
남동생의 탄생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살았다며 본인은 아들 딸 차별하지 않겠노라 당당히 외쳤던 모친의 말이다.(실제로 엄마는 성별로 차별하지 않았다)
"그래, 딸이 좋아. 엄마 챙기는 것도 딸밖에 없다."
그런 엄마는 살기 위해 가부장적인 삶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았다. 60~80년대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만 봐도 알 것이다. 여성들의 존재는 오빠나 남동생을 '뒷바라지하고', 시집가서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줘야 하고', 어르신들을 '수발해야 하는' 존재였다는 걸.
(3) "이제 또 아들 낳지 않아도 되니 잘 됐네."
솔직히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꿀순이를 정말 예뻐하시던 분이었고, 딸인걸 알았을 때도 무척 기뻐하던 분이셨으니까.
"좋겠다 개굴아. 엄마는 아들만 둘이라서 딸을 낳고 싶었어" 하던 어머니의 말씀은... 실은 아들 부심이었던 겐가. 흠흠.
(4) "첫째가 길을 잘 닦아놨네."
네? 꿀순이는 아직 청소할 줄 모릅니다만...
나에게도 남동생이 있다. 만약 나의 탄생이 남동생의 길을 터준 존재로만 인식되었다면 몹시 서러웠을 것 같다.
임신을 축하해준 수많은 말들의 온기를 기억한다. 그 말들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묻어 있었다. 관습화 된 언어만으로 진심을 왜곡할 생각은 없다. 중요한 건 이들이 축하하기 위해 한 말이란 것이니까.
나는 아이들이 성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고유한 존재로서 인정받으며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부터가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언어를 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