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꿀 Mar 12. 2020

(17) 갓난아기 키우며 글 쓰는 법

워킹맘 동화작가의 자기 고백

숫자가 다른 이유는 그려놓고 뒤늦게 올리기 때문이지요


주변을 둘러보면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글을 쓴다는 건 정말 멋있는 일이다(그만큼 힘이 들고).


길든 짧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본 사람은 안다. 쓰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그건 세상에 둘도 없는 대작을 썼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니다. 보통 '초고'는 쓰레기에 비유된다. 그 유명한 헤밍웨이도 말했단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대작가도 자신의 초벌 원고를 들고 고심에 빠졌단 뜻이다.


'이걸... 버려? 말어?'


하지만 절대 버려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대작인 작품은 없으니까(있다면... 너무나 부럽군요.) 묵혀 뒀다가 꺼내보면 그제야 객관화가 되고, 수정해야 할 게 보인다.


그런데도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이 달라진 거냐고? 그 변화는, 나만 눈치챌 정도의 아주 사소하고 내밀한 변화이므로 직접 겪어보길 바란다.


아마... 마라톤을 종주했을 때의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체력은 소진됐지만 마음의 근육은 탄탄해졌다는 깨달음 같은 것.


그분들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로서의 첫발을 축하합니다."


상을 받고, 등단을 하고, 책을 펴내는 건 두 번째 일이다. 이미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은 작가니까.(반대로 지금 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

내가 바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다. '동화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근 1년 넘게 새 작품을 못 썼으니까.


아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토록 오래 쉬었다는 걸 모를 거다. 작년 2019년에 책이 두권 나왔기 때문인데, 그 책들은 전부 2017~2018년에 완성해 출판사에 넘긴 것이다. (한 해를 써서 다음 해를 먹고사는 것.)


그동안 내가 펴낸 작품. 마지막 두권이 2019년에 출간됐다.


'작년에 못 썼으니 올해는 무엇으로 먹고살지?'


다행히 재작년에 부지런히 쓴 원고가 있어 올해 새 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1월에 인세 계약했다.)  그러나 2021년은 좀 걱정스럽다. 흑흑.


#

최근에 인세 계약한 작품을 쓴 건, 2018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꿀순이가 태어난 해의 일.


2년 전, 2018년 1월 5일.

첫째 꿀순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임신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출산하면 당분간은 글 못쓸 거야"라는 말이었다. 그 당분간이란, 대략 1~2년을 뜻다.


그래서 임신했을 때 이를 악물고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다작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땐 지역 출판지원센터에서 레지던스를 지원받았는데도 그랬다. (그래도 쓰긴 썼으니 이 얼마나 애썼냔 말이다)


당시의 레지던스 풍경. 이런 곳에서 다시 글쓸 기회가 올까?


#

오히려 '필사적'이 된 건, 꿀순이를 낳고 나서다. 그때의 나는 영영 글이란 걸 못쓰게 될까 봐 무척 두려운 상태였다.


어렴풋이 가진통을 느꼈을 때도 나는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동화를 쓰고 있었다면 멋진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모 지원사업에 낼 서류를 쓰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 첫날, 무통주사 빨로 노트에 육아일기를 썼다(그 일기는 조리원 입성과 함께 막을 내렸으니, 손목만 아낸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저처럼 하지 마세요오.


조리원에 들어가서는 못다 쓴 지원서류를 막바지 점검하고 있었다.


조리원에 나온 후, 꿀순이가 태어난 지 두 달만에 초등학교 강의를 나갔다. 이미 약속된 일정이었고, 출산 때문에 펑크내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엄마들이 나처럼 살고 있었다. 출산 한 달도 되지 않아 일터로 복귀한 엄마들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이거였다.


"아기를 낳는다고 모든 커리어가 끊어지지 않아요. 포기하지 마세요."


#

그러나 나는 이미 '과부하'였다. 모유수유도 진행 중이었고, 때가 되면 이유식도 직접 만들었고, 스토리텔링 외주 일과 라디오 패널 출연까지.


욕심이 많았다. 엄마로서의 경험, 작가로서 찾아온 기회...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돌이켜보니 쉬는 순간 일감과 벌이가 줄어드는 프리랜서였기에 '절박감'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나 자신을 혹사했다.


핏덩이 같은 갓난아기를 집에 데리고 온 후 눈물이 많아졌다. 첫날은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낮에 이토록 잘 자던 아이가 왜 안 자는지, 왜 젖은 안 먹는지, 혹시 아픈 건 아닌지, 이런 전쟁통에서 어찌 남편은 잘만 자는 건지... 뭘 어찌해야 하는지...무섭고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당분간은 글은커녕 아무것도 못했다. 무서웠다. 밤낮없이 꺽꺽 우는 아기가 도무지 이쁘지도 않고, 낯설었다.(그러나 곧 사랑스러워졌다) 모든 게 다 엉망이었다.


그럴 때마다 '마감'은 순간적인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마무리해야 할 단편동화가 있어서 도우미 아주머니께 꿀순이를 맡기고 겨우 마침표를 찍어 보내기도 했다.(마감이란 중요하다. 데드라인... 해석하자면 죽음의 선. 끔찍하지 않은가.)


(1) 모유 수유하며 책 읽기


꿀순이가 태어난 지 생후 3개월이 지나자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책이 눈에 들어왔다. 수유를 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이 수월했다. 작은 핸드폰을 수유쿠션 옆에 살짝 내려놓으면 됐으니까.


많이 읽지는 못 했지만, 읽으니 쓰고 싶단 욕구가 생겨났다.


(2) 새벽 3시까지 동화 쓰기


그래서 택한 게 모두가 잠든 새벽에 글을 쓰는 거였다. 다행히 꿀순이는 비교적 일찍이 통잠을 잤다. 난 곧바로 안방의 작은 책상에 노트북을 켜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매일 새벽 3시까지 글을 썼다.


어떤 날은 전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붙들고 있었다.


"아, 이게 말이야 방귀야?"


머리를 쥐 뜯을지언정 노트북을 닫지 않았다. 그날의 할당량을 채우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쓰다 보니 작품이 완성됐다.


빈틈이 많은 원고였지만 작가로서 살고 있다는 안도감.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이 훨씬 컸다.(그리고 그 원고는 계속 출판사에서 까이는 중입니다.... 흑흑)


모니터 불에 의지하여...


(3) 꿀순이 책상에 올려두고 글쓰기


마감이 급한 외주 일은 꿀순이를 튜브 의자에 앉혀서 책상 위에 고이 올려놓고 썼다.


당시 꿀순이는 인내심은 적었지만 말 못 하는 아기인 관계로 주먹 고기를 찹찹 먹으며 십여 분을 기다려주었다.(난 누구? 여긴 어디? 하는 표정으로.)


외주와 같은 목적이 분명한 글은 비교적 시간을 들인 만큼 공평하게 끝이 나는 법이다. 시간을 들인 만큼 글이 완성되고, 통장에 고료가 쌓인다.(창작도 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4) 마감 정해놓고 글쓰기


나에게 동기부여는 '공모전'이었다.


창작은 나와 싸우는 몹시도 외로운 작업이어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어떠한 피드백도 받을 수 없다.


이게 책이 될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저 쓰레기에 불과한지 완성하기 전엔 알 수 없다. 작가는 그저 막막함, 불안함과 싸우며 나아갈 뿐이다.


그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게 나에겐 목표였고, 마감이었다. '디데이'를 정해놓고 나 자신을 쪼아가며 글쓰기. 공모전은 내게 분명한 숫자로 명시된 데드라인이었다.


지지부진하던 작품도 공모전을 앞두고 있으면 미친 듯이 쭉쭉 나아갔다.(오기 같은 게 생겼으므로)


마감이 코앞인 탓에 꿀순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근처 카페에 가서, 놀이터에 가서 짬을 내 노트북을 펼치곤 했다.


(오늘 그 놀이터에 세살이 된 꿀순이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새삼 내가 참 독했구나 깨달았다)


아아, 나는 독했군요


그해, 두 편의 장편동화를 새로 썼고 한 편의 작품을 탈고했다.


그렇게 완성한 글을 공모전 네 군데에 던졌다.(총 네 편을 네 곳에 냈단 뜻)


그 결과, 하나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고 두 편은 본선에 올랐다가 아깝게 떨어졌다. 그리고, 한 편은 상을 받았다.(그렇게 출간된 게 <오합지졸 초능력단 1>이다.)


#

급하게 쓴 글은 설익는 법이다.


작품을 쓰는 중간중간, 도저히 납 되지 않는, 풀리지 않는 대목이 있었지만 충분히 고민하기에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런 작품은 동티가 나기 마련이다. 쉽게 넘어간 만큼 두배로 힘을 들여 고쳐야 좋은 작품이 되는 법이니까.(아니면 폴더에 찍 박아 두거나)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작품이 갖고 있는 그 '문제'들과 싸우고 있다.


제대로 수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의심을 가득 품고 고쳤는데 의외로 그게 최선일 경우도 있다.


결국 내가 완성한 작품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다시 또 막막함과 싸우며 고치고 고민하는 수밖에.


그러니 좋은 작품을 완성했는지 여부보다 중요 건 '일단 완성하는 것'이다. 졸작이어도 마무리된 원고는 생명력을 갖고 있기에 탈고를 통해 어떻게든 정돈이 된다.


적어도 출판사에 투고할 무기 한 편은 가진 셈이다. 물론 수없이 반려되어 원고도 나도 너덜너덜해지지만 재밌게도 이 원고가 어디서 인정받을지 모른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의 일화처럼...넘 거대한 예시인가요?)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한들 그게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희망에 기대어, 어느 작가의 성공스토리에 기대어, 때때로 겪는 운수 좋은 일들에 기대어 쓰고 또 쓰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의 일이 아닐까.


#

처음에 이 글을 시작하며, 작가를 꿈꾸는 엄마들에게 '글쓰기의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쓰고 보니 나의 일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다.


세상에 '정도'와 '정답'은 없다는 것. 특히, 글쓰기가 그렇다.


저마다 가치관과 살아온 방식, 경험이 다르기에 같은 글감이어도 모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발상은 비슷할지라도).


아무리 대작가의 노하우라 해도, 그 성공담이 내겐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분명한 건, 글이란 건 반드시 써야만 완성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엇도 되지 않는다.


작가에게 헛된 시간이란 없다. 모든 경험이 소중하다.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내몰지 않길 바란다.


아이는 모유 대신 분유를 먹어도 씩씩하게 자라고, 두뇌 역시 무럭무럭 큰다.(나도 혼합으로 먹였다)


또, 현실의 벽에 갇혀 글을 쓰다 내던졌다 한들, 당신이 그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글은 죽은 게 아니다. 부디 마음에서는 놓지 마라. 1년이 2년이 걸려도 좋다. 다시 글을 꺼내어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라. 그리고 아무것도 못하는 그 시간을 더 멋진 작품을 쓰기 위한 축적의 시간이라 여겨라.*


(덧) 쓰고 나니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둘째를 낳습니다. 출산 전에 출판사에 원고를 넘겨야 하지만 죽음의 선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도무지 한 글자도 못쓰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어린이집 휴원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요.


어쩌다 보니 출산과 작품의 디데이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이 글을 쓰며 다짐합니다. 반드시 새 장편동화를 쓴 후에, 출산을 하고 말 거라고요. 그 후기를 반드시 이 공간을 통해 남기겠습니다. 어느 날 브런치가 조용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연재는 진행됩니다. 이곳은 저에게 숨통이자 힐링 공간이거든요. - 육아 동지이자 작가인 당신들에게! 건투를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재택근무, 살이 빠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