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로 사이버 러버(?)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너굴군이 조금씩 특별해진 건 그가 내 글의 '1 호팬'을 자처하고 나서며부터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어라? 멀쩡하게 생겼네
어쩌면 광고 계정일지도 몰라
우리가 급속도로 친해진 건 '단톡' 덕분이었다.
"우와. 저는 비행기 한 번도 못 타봤는데 인증샷 남겨 주세요."
사연 많은 남자
호들갑스럽게 일상을 공유하기보단 진지함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쪽인, 그 흔한 정모에도 나오지 않는... 어쩐지 비밀이 많은 사람.
'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그날 제주에서 친오빠와 심하게 다퉜다.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요?
아뇨. 집 나왔어요.
이날 참으로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상냥하고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남자. 비록 문자였지만 온 마음으로 나에게 집중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꽤 말이 잘 통하네
이 남자, 전화 통화하잔 말을 안 하네
매일 밤 11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과 이렇게 오래, 꾸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그만큼 우린 할 말이 많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몸이 불편한 사람일지도 몰라.
어릴 때 화상을 입어서 상처가 있어요.
우리 만나요. 마침 출장이 있는데, 서울과 대구 중간지점인 전주 어때요?
생판 모르는 남자를 인터넷으로 알게 돼 실제로 만나려 하다니.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디데이. 용감하고도 무모한 나는 결국 전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약속시간 30분 전에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목도리로 얼굴을 거의 가리고 너구리 군을 기다렸다. 청년들이 오갈 때마다 빤히 쳐다봤다. 저 남자인가? 아님 저 남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아시다시피 '해피엔딩'이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눈길을 걸었다. 서로의 온기에 의지한 채 눈에 꽁꽁 언 손을 녹였다. 까무잡잡한 나와 달리 하얀 피부를 가진 너굴군. 그런데 피부의 감촉은 마치 나와 같았다. 아주 옛날 조물주가 우릴 만들 때, 같은 재료로 살을 빚었구나 하는 느낌. 지구 상의 또 다른 나를 전주에서 만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기로. 어차피 제주가 고향인 나에게 서울이든 대구든 사는 곳은 큰 의미가 없었다.
용기 있는 여자가 짝을 쟁취한다!
이듬해 10월 3일. 우리는 드디어 부부가 됐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을 했고, 꿀순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그리고 한 달 뒤엔 꿀꿀이가 태어난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나는 그런 내가 몹시 고맙고 사랑스럽다. 어떠한 모험도 하지 않고 조건에 맞는 짝이 나타나길 기다렸다면 너굴군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토록 온전히 마음으로 통하는 상대를 만날 수 없었을 거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용감하다. 나는 이런 내 삶에 몹시 만족한다. 누구의 삶도 아닌 오롯한 나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