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꿀 Mar 20. 2020

(20) 동화작가에 대한 오해

결국 사람의 일

나는 동화작가다. 그렇지만 지나친 외도로 작가라기에 뭣한 수상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아무튼, '동화작가'로 살다 보니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오해를 받는 편이다.


어찌 보면 직업적 선입견일 수도 있고, 하나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동화작가처럼 생겼어요"


우선, 이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이건 오해의 범주에 따로 넣지 않았다. 전적으로 나에 대한 (외양적) 이미지, 상대 머릿속에 심긴 이미지에 의존하는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을 들었을 때의 내 기분도 그때 그때 다르다. 어떤 때는 기분이 좋고, 어떤 경우는 나빴는데 그건 상대의 제스처와 표현에 달려 있었다.


이를테면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 회사 여자 후배가 내 사진을 흘쩍 보더니 "진짜 동화작가처럼 생겼네요" 했다고 했을 땐 기분이 나빴다. 그건 이 여자 후배가 좀 무례한 사람이었기에 부정적 의미를 담아 한 말이라 내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잠깐! 문득, '동화작가처럼 생겼다'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무얼까? 의문이 든다. 엄마처럼 푸근한 느낌의 동그란 사람? 음, 애매하군요. 결국 이미지를 정한 것은 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반대로 기분이 좋았을 때는 상대가 환한 얼굴로 긍정적 기운을 뿜뿜 내뿜으며 말할 때였다. 나에 대한 상대의 호의가 느껴졌기에 좋았던 것이다.(어쩌면... 두 사람이 동화작가에 대해 떠올린 이미지는 비슷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아아, 글이란 건 놀랍군요. 쓰면서 깨닫고 있습니다.)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자주 들었던 '동화작가'에 대한 오해를 풀어 드립니다!


1. 아이들을 좋아한다?


동화작가는 동화를 쓰는 사람이다. 동화는 동심으로 쓴 이야기를 뜻하고, 동심은 아이들의 마음을 의미한다.


동화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동화 쓰기의 어려움이 여기서 발생한다. 바로, 동화를 쓰는 사람과 대상이 불일치한단 것.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를 어른이 쓴다는 이 아이러니. 그렇기에 동화 쓰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소설가들이 종종 동화에 도전했다가 포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편소설은 원고지 1000매 분량을 써야 하지만 장편동화는 원고지 300~500매 정도 분량이다. 분량으로만 치자면 상당히 '쉬운' 작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문장과 주제, 이야기에 동심을 녹여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야한다. 경험이 없다면 이 과정이 굉장히 낯설고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잠깐... 이거, 작법에 대한 이야기냐고요? 아.. 아닙니다. 잠시만요 흠흠)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 당연히 아이들을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오... 오해입니다만.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들이 어.려.웠.다.


내가 동화작가라 불리었을 때,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다. 미혼이었고, 아이들이라곤 조카와 몇 시간 노는 게 전부였다. 그저 동화가 재밌었기에 빠져 들었고,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발견했다. 주인공에게 어린 나의 모습을 투영했고 당분간은 유년기의 경험과 감정만으로도 글쓰기가 충분히 가능했다.


동화작가로 첫 강연을 나갔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요즘 아이들은 어떠한지 감이 오지 않고 그저 무서웠다. 울렁증이 일었다. 아이들이 날 바라보는 게 그저 어려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첫 강연을 하고 5년 여가 지난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즐겁다. 어떤 아이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강연과 글쓰기 지도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났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익숙해졌다.


어느덧 엄마가 됐고 그야말로 실전에 투입되면서 아이라는 존재의 실체를 온전히 느끼고 있다.


조금 위험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동화작가라고  아이들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결국 어린이도 인간 아닌가. 우리는 늘 인간관계에서 부대끼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곤란하다. 아이들이 끔찍이, 미칠정도로 싫거나 밉다면? 아마, 오래 동화작가로 살긴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동화작가는 끊임없이 아이들의 삶을 애정 있게 관찰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2. 바른생활을 한다?


아마 이런 오해를 하고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혹시 유년기에 '계몽 동화', '이솝우화'를 주로 읽고 자란 건 아닌가요?


누군가를 계몽하려면 그만큼의 자격이 갖춰져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은 거 알지요?)는 생각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동화작가도 죄성 많고 실수 잦은 피조물인지라 그냥저냥 자신의 생긴 꼴로 살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젊은 날부터 술도 좋아했고, 욕도 즐겨한다. 또, 새벽형 인간이라 밤늦게 뭘 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 집에 와서 바로 손발도 씻지 않고, 머리도 2~3일에 한 번씩 감는다. (여기서 그... 그만 해야겠군요)


3.  규칙 규범을 잘 지킨다?


이거 참... 멈출 수가 없겠군요.


저도 길거리에 쓰레기도 몰래 버리고, 분리수거도 대충 하고, 무단횡단도 하고 그리 삽니다. (어린이 독자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나요? 아니겠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동화작가도 사람이랍니다!



4. 마음이 아름답다?


동화작가는 항상 웃는 얼굴에 상냥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까칠한 마녀 할멈 같은 사람도 많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질, 성격을 갖고 있다. 다혈질이고 욱하는 사람이 쉽게 다정해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다들 어른에다 가장이다 보니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과 부대끼며 아등바등하다 보면 현타가 오고 슬픔, 좌절, 분노를 겪기 마련이다.


나 역시 동화작가로 살고 있지만 엄마, 직장인 등등의 역할이 있기에 그 속에서 다양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동화작가가 왜 그리 마음이 좁냐, 못됐냐 등등의 질문은 하지 말길 바란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흠흠.


5. 동식물을 잘 가꾼다?


아니오, 똥손입니다. 키우는 식물은 다 죽이고 동물은 집 마당에 키우던 메리라고 불리던 녀석들이 전부입니다.


(위에 나열한 오해들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정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분류해보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결국 작가도 사람이기에 결국 인간의 보편적 속성을 갖고 있다. 늘 시험에 빠지고 고뇌하고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그런 존재.


어떤 동화작가는 마음이 아름답고 바른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동식물을 가꾸는데 일가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동화작가여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본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화작가로서 나름대로 세워둔 원칙은 있다. 동화작가는 아이들과 약자, 세상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현재, 미래의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으니까.


혹시 아이들이 미워졌거나 어렵고 불편한가? 괜찮다. 당신이 동화를 쓰는 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므로. 아무리 미운 캐릭터도 생명을 불어넣어 인물을 만들고 오래 들여다보면 결국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테니까.(나도 그러했다)


만약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동화작가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 사람은 글 쓰는 스킬은 뛰어날지 몰라도 동화를 쓰는 사람으로는 절대  살지 못할 것이다. 내 장담하지요. (*)










매거진의 이전글 (19) 엄마는 어쩌다 문구 덕후가 됐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